“저녁에 고추장 된장찌개랑 오뎅 볶아줄까?”
“응 좋지~”
“오늘은 간단히 비빔면 해 먹을까?”
“응 좋지~”
아빠는 가리는 거 없이 엄마가 해주는 음식은 다 잘 먹었다. 반찬투정, 식단투정, 맛 투정 한 번도 없었다. 먹는 것도 좋아했다. 엄마가 장을 같이 보러 가자고 하면 농수산물 시장까지 따라나서 식재료를 양손에 가득 들고 따라다녔다. 아빠는 오뎅반찬이랑 면 요리를 좋아했고 팥도넛랑 빵을 간식으로 자주 찾았다. 이것저것 잘 먹어서 그랬는지 잔병치레 한번 없었던 아빠가 어느 날 갑자기 암에 걸렸는데, 하필이면 암덩어리가 목을 짓누르는 바람에 식도가 좁아져 물 한 모금 마시는 것도 힘들어했다. 아빠가 아프고 난 후로 엄마와 동생은 집에서 밥 먹는 게 눈치 보였다. 27평 남짓 작은 공간에서 식사준비를 하면 맛있는 냄새가 온 집을 덮어 아빠를 더 괴롭게 만들었다.
“괜찮아. 나 신경 쓰지 말고 편하게 밥 먹어”
아빠는 못 먹어도 괜찮다고 했지만, 아빠를 두고 맛있는 밥을 먹는 가족의 마음은 편하지가 않았다. 볶고, 삶고, 지지는 요리 대신 간단한 밑반찬류를 사 와서 대충 허기를 때웠고 아빠가 낮잠을 잘 때는 교대로 나가 식당에서 밥을 먹고 들어오곤 했다. 밥을 편하게 못 먹는 가족도 힘들고, 가족이 먹는 걸 볼 수밖에 없는 아빠에게도 힘든 시간이었다.
아빠를 보려고 주말에 친정으로 향했다. 집에 도착할 시간에 맞춰 엄마는 여느 때처럼 나를 위한 밥을 하고 있었다. 집에 도착하니 맛있는 냄새가 진동을 했다.
“어 딸 왔나? 고생했다 어서 밥 먹으라”
‘요즘은 편하게 기차 타고 오고, 오며 가는 길에 맛있는 거 알아서 잘 사 먹는데… 왜 차렸어…‘ 목 끝까지 차올랐던 말을 삼켰다. 딸 밥 굶을까 봐 한 끼 거하게 차린 엄마의 마음이 느껴졌다. 하지만 아빠는 먹지도 못하는데 혼자 밥을 먹으려니 영 마음이 편치 않았다.
“아빠… 괜찮아?..”
“어 아빠는 괘안타. 자식 먹는 것만 봐도 배부르다”
안 괜찮으면서, 자기도 배 고프면서….
아빠는 먹고 싶은 음식이 있으면 엄마에게 부탁을 했다. 배도 너무 고프고 아빠 마음 같아선 천천히 먹으면 몇 숟가락 들 수 있을 것 같았다. 엄마는 매번 아빠가 먹고 싶다는 음식은 사 오거나 만들어 내밀었다. 하지만 아빠에겐 그림의 떡이었다. 마음과 달리 음식이 혓바닥에 닿으면 아파서 입안으로 넣지를 못했다. 항암 부작용으로 혀가 다 까지고 헐어서 죽과 물만 겨우 넘겼다. 어느 날은 나지막이 말했다.
“ 붕어빵 먹고 싶네”
3월 초. 붕어빵 리어카는 거리에서 찾아볼 수 없었다.
그 후로 아빠가 마지막 항암주사를 맞기 위해 서울로 올라왔다. 그날따라 대기시간도 길었고, 아빠의 진료일정이 변경되면서 늦은 시간까지 점심을 먹지 못하고 아빠 곁을 지키게 됐다. 아빠와 동생은 오후 5시 기차로 부산에 내려갈 예정이었다. 배고파할 아들과 딸이 걱정되었는지 아빠는 기차역 근처 식당에 가서 밥을 먹자고 했다.
“먹고 싶은 거 다 시켜. 아빠가 사줄게”
“청국장 두 개랑 감자전도 먹자~ ”
철이 없어도 너무 없었다. 아빠보단 허기가 우선이었다. 우리가 맛있게 잘 먹는 걸 보니 아빠는 행복하다고 했다. 그땐 그 말을 그냥 믿었다. 아빠 앞에서 우리는 남김없이 복스럽게 먹었다. 아빠가 사주는 마지막 외식임을 직감했기 때문이다. 나는 아빠의 상태가 양호할 때나, 힘들어질 때나, 악회 되었을 때나 아빠 앞에서 내 배를 채웠다. 먹지 못하는 사람 앞에서 먹었다….
아빠가 돌아가시고 장례식장에 붕어빵을 올려놓았다.
‘아빠 맛있게 먹어… 미안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