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김우빈도 비인두암이었는데 치료받고 방송 복귀도 하고 그러잖아~ 요즘은 의술이 좋아져서 아버님도 치료받으면 괜찮아질 거야. 너무 걱정하지 마 “
두 달 전 들었던 남편의 위로가 무색할 만큼 아빠의 몸은 암덩어리로 채워져 갔다. 코 구멍 깊은 곳에 있는 암은 목덜미와 간, 폐로 퍼져나갔다. 아빠의 암은 수술을 할 수 없는 위치에 있었다. 콧 깊은 곳에 있었고, 뇌와 가까운 곳에 자리 잡고 있어서 방사선치료도, 수술도 어렵다고 했다. 오직 항암주사 밖에 없었다. 항암주사를 맞은 지 두 달이 되었지만 검사 결과를 알지 못했다. 항암 효과가 있는지, 더 이상 전이가 안 됐는지 시원하게 말해주지 않는 의료진에 답답한 마음이 솟구쳤다. 부산에 있는 대학병원에서 받았던 진료 기록들을 모두 요청했다. 우리 가족은 병원 이전을 결정했다.
아빠는 숨을 쉬는 것이 편하지 않았지만 마지막 희망을 붙잡는 마음으로 서울을 오가며 치료받는 것에 동의했다. 아빠가 서울 상급병원에서 첫 항암치료를 받던 날을 생생히 기억한다. 2시간 남짓 항암주사를 맞고 씩씩하게 걸어가던 아빠. 주사 효과가 있는 것 같다며 숨 쉬는 게 좀 편해졌다고 아이처럼 좋아하던 아빠. 기차역에서 헤어질 때 포옹하며 잘 가라고 인사했던 그 모습이 잊히지 않는다. 3주 뒤 다시 2차 항암치료를 받기로 하고 아빠는 부산으로 내려갔다. 가벼운 마음으로 내려가셔서 나 또한 안심하며 지냈다.
담당 교수가 말하길, 부산병원에서 사용한 항암주사보다 더 효과가 있는 항암주사제를 사용할 거라고 했는데 그게 아빠를 더 힘들게 했다. 너무 강력한 항암주사였다. 3주간 아빠는 죽을 고비를 여러 번 넘겼다. 조금 숨구멍이 틔이는 듯했으나, 코는 다시 막혔고 입으로 숨을 쉴 수밖에 없었다. 혓바늘이 벗겨지고 죽 한 스푼 삼시는 것도 힘들게 됐다. 밤새 통증에 시달리느라 잠을 잘 수가 없었고 기력이 점점 떨어져 갔다. 아빠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직감한 듯했다.
“아들아. 목욕탕에 같이 가자. 아빠 등 좀 밀어다오”
젊고 건강할 때 아들과 목욕탕 한번 다녀온 적 없었는데, 아빠는 마지막을 직감한 듯 동생에게 목욕탕에 가자고 했다. 독한 항암주사를 맞으며 사투를 벌이는 동안 통증이 가중되었을 뿐 항암 부작용은 없었는데 아빠는 목욕탕에서 목놓아 울었다. 머리카락이 한 움큼 두 움큼씩 머리칼을 쓰다듬을 때마다 빠졌다. 손에 쥔 머리카락을 한동안 놓지 못했다. 목욕탕에 들어갈 때 63세 중년의 모습이 남아 있었지만 나올 땐 10년은 더 늙어진 모습이었다. 신생아 배넷머리 빠지듯 아빠의 머리카락도 매일 조금씩 빠졌고, 두피가 훤히 보일만큼 그 속도도 빨랐다. 그뿐만 아니었다. 3주 뒤 2차 항암을 하기 위해 서울에 다시 올라왔을 땐, 갑자기 휘청거리더니 넘어질 뻔했다. 다리에 힘이 빠져서 걷는 것조차 쉽지 않아 보였다.
양쪽 목으로 암이 퍼져서 식도, 성대들을 짓누르는 탓에 말하는 것도 힘들어했다. 아빠 힘으로 할 수 있는 것들이 점점 소멸되어 가고 있었다. 남동생과 엄마 없이는 앉았다 일어나는 것도, 먹는 것도, 화장실 가는 것도 할 수 없게 되었다. 암세포를 사멸시키고 전이를 막을 수 있는 항암주사를 맞고 싶었을 뿐이었다. 아빠와의 이별을 좀 더 늦추고 싶어서 찾아간 서울 상급병원이었다. 항암 주사 한번 맞았을 뿐인데 역풍을 정면으로 맞은 아빠가 너무 안되고 불쌍해서 미칠 지경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