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이 눈치가 없었다.
아빠는 하루에도 3번씩 마약을 삼키면서 힘든 고통을 견뎠다.
마약보다 더 지독하고 고통스러운 통증 앞에서 아빠도 가족도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견뎌내거나 지켜보거나 기도하는 일이 전부였다.
머리 통이 터질 듯 아파서 눈알이 튀어나오고,
기침만 해도 피가 입 밖으로 쏟아져 나오는 그 고통 누가 짐작이나 할 수 있을까.
아빠의 통증을 아무도 짐작도 할 수 없었다.
짐작할 수 없기에 괜찮냐는 말도, 괜찮아질 거라는 말도 할 수 없었다.
말로 형용할 수 없는 고통을 감당하고 있는 아빠에게 엄마가 말했다.
“나도 지금 허리가 너무 아파서 아무것도 할 수 없어. 새벽부터 나가서 일하고 돌아와 아빠 간병하는 일이 힘들어”
엄마는 평생 신경통과 허리디스크를 안고 살아왔다.
엄마의 일상이 얼마나 힘들었는지는 수십 년간 먹은 약봉투와 다녀간 병원비만 보아도 알 수 있는 일이었다.
그렇지만 엄마의 허리통증 또한 얼마나 불편하고 아픈지 그 고통을 짐작할 수는 없었다.
나는 아빠의 암투병도 엄마의 고질병도 온전히 알 수 없었다.
어느 날, 내 마음에 불편함이 스몄다. 가족들 모두 아빠의 남은 시간보다 자신의 고통에 더 힘겨워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누가 더 아픈지, 누구의 일상이 더 무너졌는지 우위를 가리기라도 하듯 온 가족이 표정으로 행동으로 내가 더 힘들다고 말하고 있는 것 같았다.
‘지금 하는 일이 너무 안 풀려서 죽겠어’
‘내 마음이 무너져 아픈 상황이라 옆에 있는 사람의 고통을 돌볼 수 없어’
우리들의 고통은 지나가는 것이지만, 아빠의 고통은 조만간 끝이 날 텐데 그때까지 조금만 참아 줄 수는 없었을까?
힘든 인생, 고난의 연속 가운데 우리의 일상은 늘 그렇듯 통증 한두 개쯤 않고 살아가지 않나?
삶이 끝이 보이는 고통 속에 있는 사람 앞에서만큼은 우리의 고통을 내려놓을 마음의 여유가 왜 없었을까?
아빠가 암투병을 하는 동안 느꼈을 외로움과 서운함을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아린다.
자식이 잘 살고 있고 모두가 평안한 가운데 천청병력 같은 암선고를 받은 게 아니라
온 가족이 너도 나도 힘든 상황이었다.
각자의 터널 속 그 어딘가를 걷던 중 듣게 된 아빠의 시한부 소식에 망연자실할 수밖에 없었다.
아픈 엄마와 사업이 망한 자식, 취업이 안 돼 힘든 자식, 사기를 당해 돈을 잃은 자식들 사이에서 아빠는 웃으며 남은 생을 즐기지 못했다.
우리보다 더 아픈 아빠를 먼저 챙기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내가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게 더욱 무력하게 만들었다.
날 선 종이에 손가락만 베어도 물에 닿아 쓰릴까 신경 쓰이고, 안 쓰던 허리를 움직였다고 파스 한 장 붙이며 고통을 없애려는 게 인간 아니던가.
아무리 작고 작은 아픔도 당사자에겐 일상을 마비시킬 수 있는 통증일 수 있지만 때로는 나의 고통보다 타인의 고통에 더 마음 쓸 줄 아는 지혜가 필요할 거 같다.
마약으로도 견뎌내지 못한 아빠의 통증도 끝이 났듯, 바람 불면 사라질 우리의 통증도 언젠가 끝은 있는 법.
타인의 힘듦과 고통도 돌아보며 나의 통증을 이겨내며 살아가라는 아빠의 메시지를 가슴에 새겨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