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장. 여행, 그리고 도전 #3
사랑하는 동생아,
이번에는 누나가 아주 큰 용기를 내어 처음으로 홀로 떠났던 여행 이야기를 자세히 들려줄까 해. 기억 저편에 아련하게 남아있는 2016년 가을, 목적지는 보스턴이었고, 누나에게는 모든 것이 처음이었던, 짧지만 아주 길게 느껴졌던 여정이었지. 솔직히 고백하자면, 동생아, 이 여행의 시작은 결코 동화처럼 낭만적이지만은 않았어. 한번 상상해 봐. 늘 친구들이 짜놓은 계획에 익숙하게 몸을 싣고, 누군가가 이끄는 대로 졸졸 따라다니기만 했던 누나가 처음으로 항공권 예매부터 숙소 예약, 낯선 도시에서의 동선까지, 그 모든 것을 오롯이 혼자 결정하고 책임져야 했으니 말이야. 새로운 도시에 대한 설렘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그보다는 '과연 내가 이 모든 것을 잘 해낼 수 있을까?' 하는 막연한 두려움과 낯선 환경에 홀로 내던져질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훨씬 더 크게 마음을 짓눌렀던 것 같아.
게다가 너에게 이런 이야기까지 하는 것이 조금 부끄럽기도 하지만, 우리가 속마음까지 나눌 수 있는 우애 좋은 남매니까 솔직히 털어놓자면, 보스턴으로 떠나기 약 한 달 전쯤 남자친구와 헤어져서 마음이 많이 힘들고 우울했던 시기였어. 안 그래도 혼자 여행을 떠나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가 '혹시 외롭지 않을까?' 하는 걱정인데, 이미 외로운 상태의 나를 더 외로움이 극대화될 수 있는 환경 속으로 밀어 넣은 셈이었지. 그러니 그 여행이 시작부터 마냥 즐거울 수만은 없었겠지? 설상가상으로 보스턴에 도착하자마자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몸까지 말썽이라니… 정말이지, 내가 짊어질 수 있는 모든 종류의 우울함과 걱정은 다 싸들고 떠난 기분이었달까.
하지만 참 신기하게도, 역설적이게도, 누나는 이 서툴고 외로웠던 여행을 통해 정말 많은 위로와 사랑을 받는 경험을 했어. 혼자였기에 비로소 내가 진정 가고 싶은 곳을 가고, 내가 먹고 싶은 것을 거리낌 없이 먹으며, 나 자신의 감정과 욕구를 세심하게 들여다보고 다독여줄 수 있었지. 또 시차까지 다른 먼 곳에 외톨이처럼 떨어진 내가 외롭거나 불안하지 않도록, 정말 많은 친구들이 기꺼이 자신의 시간을 쪼개어 문자와 전화로 끊임없이 함께 해 주었단다. 거기에 더해, 마치 우주가 준비한 선물처럼 ‘여행자의 행운’이라 불릴 만한 특별한 만남까지 경험했으니, 이만하면 꽤 근사한 여행 아니었을까? 그래서 다시 샌프란시스코로 돌아왔을 땐, 떠날 때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마음이 단단해져서 더 이상 사소한 일에 쉽게 흔들리지 않는 나를 발견할 수 있었어.
어쩌면 누군가에게는 아주 어설프고 특별히 재미있지도 않은 여행 이야기일 수도 있겠지만, 소심하고 늘 수동적이었던 나의 여행 역사에 중요한 마침표 하나를 찍고, 스스로 계획하고 책임지는 새로운 장을 열게 된 첫 ‘나 홀로 여행’이었기에, 이 보스턴 여행 이야기를 너와 꼭 나누고 싶었단다. 누나의 이런 부족하고 흔들렸던 모습, 그리고 그것을 하나씩 극복해 나갔던 작은 과정들이, 혹시라도 네가 미래에 어떤 새로운 도전을 망설이는 순간이 온다면, 작은 용기나 따뜻한 위로가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으로 말이야. (결국 중요한 건 우리가 같은 배에서 같은 유전자를 나눠 가졌다는 사실 아닐까? 이런 누나도 해냈는데, 너라고 못할 리 없잖니?)
그때 왜 하필 보스턴에 가게 되었냐면, 마침 MIT에서 열리는 학술 견학 프로그램에 참여할 좋은 기회가 생겼거든. (네가 알고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학업에 있어서 누나의 오랜 꿈 중 하나가 바로 MIT 미디어 랩에서 공부하는 것이었어. 그래서 미국에 오기 전부터 마음속으로 가장 가보고 싶었던 곳 중 하나가 바로 MIT 캠퍼스였지.) 그런데 이 프로그램이 공교롭게도 학기 중에 진행되는 바람에, 선뜻 함께 갈 만한 친구를 찾기가 쉽지 않았어. 물론 좀 더 적극적으로 물어보고 찾아봤다면 누군가는 있었을지도 모르겠지만, 솔직히 말하면 그때의 나는 새로운 관계를 만들거나 먼저 다가가는 것에 꽤나 서툴렀던 것 같아. 곁에는 분명 좋은 친구들이 있었지만, 늘 누군가에게 보이지 않게 의지하던 오랜 습관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혹시나 거절당할까 봐 두려웠던 걸까. "나랑 같이 보스턴 가지 않을래?" 하고 편하게 묻는 그 간단한 말조차 입 밖으로 꺼내기가 왜 그리 어려웠는지 모르겠어.
결국 혼자 가기로 마음먹고 나니, 이제는 여행 계획이라는 더 큰 산이 기다리고 있었지. 정말이지, 내 인생에서 처음으로 오롯이 나 혼자만의 여행을 계획해보려니 그야말로 막막해서 어디서부터 손대야 할지 알 수 없었어. 며칠 동안 머무는 것이 적당할지, 그 시간 동안 무엇을 보고 경험해야 할지, 심지어 안전하면서도 예산에 맞는 숙소는 어떻게 찾아야 하는지까지, 모든 것이 낯설고 어렵게만 느껴졌지. 여행 책자를 뒤적이고 인터넷 검색을 해봐도 정보의 홍수 속에서 오히려 길을 잃는 기분이었달까. 결국 그때의 나는 아주 단순하고 조금은 무모한 결론을 내렸어. '이왕 비싼 비행기 값을 들였으니, 물리적으로 가능한 최대한 오래 머물면서 최대한 많이 보고 오는 게 무조건 이득이다!' 하는 생각. 그래서 학생 신분으로 시간을 낼 수 있는 최대한의 기간, 주말을 포함해서 꼬박 3박 4일을 채우는 일정으로 계획을 세웠지. 심지어 비행기표조차 최대한 일찍 도착해서 최대한 늦게 떠나는, 그야말로 꽉 찬 스케줄로 골랐어. 하지만 그때는 미처 몰랐지. 그렇게 의욕만 앞서 무작정 늘려놓은 그 긴 시간을 혼자서 어떻게 의미 있게 채워야 할지, 때로는 그 텅 빈 시간의 막막함이 아무 계획이 없는 것보다 더 큰 짐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말이야.
그렇게 서툰 계획과 복잡한 마음을 안고 도착한 보스턴의 첫인상은 아직도 생생해. 어둠이 내린 로건 공항에 내려 예약해 둔 에어비앤비 숙소를 찾아 우버에 몸을 실었을 때의 그 막막함과 서먹함. 낯선 운전기사와의 어색한 침묵 속에서 창밖으로 스쳐 지나가는 생경한 도시의 불빛들을 멍하니 바라보며, 내가 정말 이곳에 혼자 왔다는 사실을 실감했지. 숙소 문을 열고 들어선 작은 방 안에는 생각보다 깔끔하고 아늑한 공간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지만, 왠지 모르게 마음 한구석이 텅 빈 듯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어. 캐리어를 풀고 침대에 걸터앉아 잠시 창밖을 바라보는데, '이제 여기서 뭘 해야 하지? 이 많은 시간을 어떻게 보내야 하지?' 하는 생각과 함께 덜컥 겁이 나기도 했지. 낯선 도시의 불빛은 아름다웠지만, 그만큼 외로움도 크게 느껴졌어. 혼자 떠나온 여행의 첫날 밤은 그렇게 설렘보다는 낯섦과 불안함, 그리고 약간의 후회마저 뒤섞인 감정으로 채워졌던 것 같아.
하지만 그렇다고 마냥 방 안에만 틀어박혀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지. 다음 날 아침, 여전히 조금은 무거운 마음이었지만, 용기를 내어 숙소를 나섰어. 무엇을 해야 할지 명확한 계획은 여전히 없었지만, 일단 밖으로 나가보기로 한 거야. 그래서 누나는 그냥 무작정 걷기 시작했어. 고풍스러운 벽돌 건물들이 늘어선 비컨 힐의 아름다운 골목길부터, 젊음의 활기가 넘치는 하버드 스퀘어, 퀸시 마켓의 시끌벅적한 푸드 코트, 그리고 찰스 강변을 따라 유유히 이어지는 한적한 산책로까지. 낯선 보스턴의 거리를 마치 이곳에 오랫동안 살았던 사람처럼, 특별한 목적지 없이 발길 닿는 대로 하염없이 걸었지.
걷고 또 걸으면서, 비로소 내 주변과 내 안의 소리에 귀 기울일 수 있게 되었어. 다행히 보스턴은 샌프란시스코처럼 언덕이 많거나 아주 큰 도시는 아니라서 걷기에 참 좋았어. 게다가 마침 완연한 가을이라, 도시 전체가 따스한 햇살 아래 눈부신 붉은빛과 황금빛으로 아름답게 물들어 있었지. 이곳 캘리포니아에서는 좀처럼 보기 힘든 풍경이거든. 고풍스러운 벽돌 건물들과 거리 양옆으로 늘어선 단풍나무들이 어우러져 가을바람에 부드럽게 흔들리는 모습은 정말이지 낭만적이었어. 마치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옛 학자들이 거닐던 오래된 도시의 한복판을 걷는 듯한 기분이 들었지. (나중에 너 휴가 받으면 누나가 꼭 보스턴도 데리고 가줄게. 분명히 너도 그 고즈넉하고 아름다운 가을 풍경을 좋아하게 될 거야.)
그렇게 아름다운 거리를 혼자 걷다 보니, 자연스럽게 이런저런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어. 특히 나와 내가 맺고 있는 다양한 관계들에 대해 정말 많은 생각을 하게 되더라. 왜 나는 어떤 사람 앞에서는 편안함을 느끼고, 또 어떤 사람 앞에서는 불편함을 느낄까? 분명 좋은 사람이고 나에게 잘해주는 걸 아는데도 왠지 모르게 다가가기 어렵고 불편한 사람이 있는가 하면, 때로는 상대방이 나에게 큰 관심이 없는 것 같은데도 이상하게 마음이 편하고 끌리는 사람도 있잖아. 마치 몸에 좋은 건 알지만 이상하게 장바구니에 손이 잘 안 가는 채소와, 건강에 좋지 않다는 걸 알면서도 자꾸만 찾게 되는 라면처럼 말이야. 살면서 서로에게 똑같이 좋아하는 마음과 깊은 편안함을 동시에 느낄 수 있는 사람을 만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렵고 소중한 행운인지, 그때 새삼 깨달았던 것 같아. 어쩌면 너무 많은 시간이 주어졌기에, 이런 평소에는 접어두었던 생각들을 실컷 할 수 있었던 건지도 모르겠어.
물론, 해가 지고 어둠이 내리면, 낮 동안 애써 눌러두었던 외로움이 불쑥 고개를 들기도 했지. 그럴 때면 나도 모르게 스마트폰을 집어 들고 샌프란시스코에 있는 친구들에게 구조 신호를 보내곤 했어. 사실 처음에는 그저 내 투정을 들어줄 사람이 필요했던 것 같아. "나 지금 너무 외로워", "혼자 있으니 무서워" 같은 어린아이 같은 하소연을 늘어놓았지. 그런데 정말 눈물 나게 고맙게도, 바쁜 와중에도 많은 친구들이 기꺼이 시간을 내어 미국 동쪽 끝, 낯선 도시에 홀로 떨어진 내 이야기를 진심으로 들어주고 따뜻하게 응원해주었어. 밤늦게까지 문자와 전화로, 마치 그 시절에는 없었지만 요즘의 AI 챗봇처럼, 끝도 없이 이어지는 나의 시시콜콜한 이야기와 감정 기복을 다 받아주었지. "힘내라!", "너는 혼자서도 잘 해낼 수 있다!"며 용기를 북돋아 주기도 하고, 심지어 어떤 친구는 전혀 예상치 못했던 자신의 가장 힘들었던 경험을 솔직하게 털어놓으며 깊은 공감과 진심 어린 위로를 건네기도 했어.
바로 그때 비로소 깨달았어. 내가 물리적으로는 보스턴이라는 낯선 도시에 혼자 덩그러니 놓여 있었지만, 나는 결코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보이지 않는 끈으로 단단히 연결된, 나를 진심으로 아끼고 지지해주는 얼마나 좋은 친구들이 내 곁에 있는지를 말이야. 그들의 따뜻한 목소리를 듣는 것만으로도, 그들의 변함없는 존재를 느끼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큰 힘과 위안이 되는지를 새삼 깨달았지. 낯선 곳에서 길을 잃고 불안에 떨고 있는 나를 위해 기꺼이 자신의 귀한 시간과 마음을 내어준 친구들 덕분에, 나는 세상 어디에 있든 혼자가 아니라는 깊은 안정감을 느낄 수 있었고, 그동안 어쩌면 당연하게만 여겼던 '인연'이라는 것의 무게와 감사함을 온몸으로 느꼈던, 정말이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순간이었어.
그렇게 낯선 도시의 거리를 걷고, 깊은 생각에 잠기고, 멀리 있는 친구들과 마음을 나누는 동안, 누나는 분명 조금씩 변화하고 있었던 것 같아. 처음 나를 사로잡았던 두려움은 어느새 낯선 곳에 대한 호기심으로 바뀌었고, 외로움이 잠식했던 자리에는 고독을 즐기는 여유가 조금씩 싹트고 있었지. 일상이라는 익숙한 궤도에서 잠시 벗어나 온전히 나 자신에게 집중하는 시간이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값지고 중요하다는 것을, 그리고 혼자만의 시간이 결코 '외로운' 시간이 아니라 나 자신과 더 깊이 만나고 내면의 소리에 귀 기울이는 '소중한' 기회라는 것을 온몸으로 배우고 있었던 거야.
그리고 신기하게도, 그렇게 혼자만의 시간에 깊이 잠겨 있던 여행에서, 아버지가 예전에 툭 던지듯 말씀하셨던 '여행자에게는 늘 예기치 않은 행운이 따른다'는 말처럼, 정말이지 한 편의 영화 같은 우연한 만남이 찾아오기도 했어. 이것이야말로 미리 계획하지 않았기에 더욱 특별했고, 혼자 하는 여행이었기에 온전히 내 것이 될 수 있었던 예측 불가능한 즐거움이었지.
보스턴의 유명한 프리덤 트레일을 따라 혼자 터벅터벅 걷고 있는데, 이상하게도 가는 곳마다 계속 눈이 마주치는 동양인 남자가 있는 거야. 처음에는 그냥 스쳐 지나가는 우연이겠거니 했는데, 장소를 옮겨도 자꾸 시선이 마주치니 슬슬 신경이 쓰이기 시작했지. 속으로 '어? 저 사람이랑 뭔가 인연이라도 되려나?' 하는 장난스러운 생각을 하던 찰나, 정말 신기하게도 그 사람이 먼저 내게 다가와서 조금은 어색하지만, 친근한 미소로 말을 걸어오는 거야. "혹시… 혼자 여행 오셨어요?" 하고.
더 놀라웠던 건,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그 역시 바로 다음 날 나와 같은 MIT 견학 프로그램에 참여하기 위해, 그것도 내가 살고 있는 샌프란시스코에서 혼자 보스턴으로 온 사람이었다는 거지! 낯선 타지에서, 같은 목적을 가지고, 같은 도시에서 온 사람을 만났다는 사실에 우리는 금세 오랜 친구라도 만난 것처럼 신이 나서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어. 어색함은 눈 녹듯 사라지고, 우리는 자연스럽게 그날 오후를 함께 보내게 되었지. 함께 보스턴 커먼의 푸른 잔디밭을 거닐고, 뉴버리 스트리트의 예쁜 가게들을 구경하고, 그 친구가 미리 알아놓았다는 맛집을 찾아가 맛있는 저녁 식사까지 함께 하게 되었단다.
대화를 나누면서 알게 된 그는 버클리 대학원에서 석사 학위를 받고 실리콘밸리의 좋은 회사에 바로 취직한, 그야말로 많은 유학생들이 꿈꾸는 길을 이미 성공적으로 걷고 있는 사람이었어. 이제 막 유학 생활을 시작하며 미래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을 안고 있던 누나에게는 그 자체로 참 멋지고 대단해 보이는 사람이었지. 하지만 내게 무엇보다 기뻤던 건, 그의 화려한 스펙이나 외적인 조건들이 아니었어. 바로, 나와 같은 꿈, 같은 방향을 바라보고 있다는 사실, 그리고 그것에 대해 깊이 공감하고 소통할 수 있는 사람을 만났다는 사실 그 자체였지.
동생아, 너에게는 아직 자세히 이야기한 적 없지만, 누나가 지금 당장은 게임 만드는 법을 배우고 있는 것처럼 보여도, 사실 내 마음 깊은 곳의 진정한 목표와 열정은 조금 다른 곳에 있었거든. 세상에서 가장 빠르게 신기술이 개발되고 변화하는 이곳 실리콘밸리에서 최신 기술 동향을 피부로 느끼고 배우며, 그것을 바탕으로 내 머릿속에만 존재하던 이런저런 아이디어들을 현실 세상에 구현해낼 방법을 찾는 것. 게임 프로그래밍을 배우면서 내가 즐거웠던 진짜 이유도, 단순히 어릴 때부터 좋아하던 게임을 직접 만들 수 있게 되었다는 성취감보다는, 게임 산업이야말로 인공지능, 가상현실, 데이터 분석 등 다양한 첨단 기술이 가장 먼저 접목되고 폭발적으로 발전하는 분야이기 때문이었어.
이런, 평소 누구에게도 속 시원히 털어놓지 못했던 나의 진짜 속마음과 조금은 거창하게 들릴 수도 있는 꿈들을, 이 친구는 마치 내 마음속에 들어왔다 나간 것처럼 신기할 정도로 정확하게 이해하고 깊이 공감해주는 거야. "맞아요,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그 기술이 앞으로 세상을 이렇게 바꿀 수 있을 것 같아요." 와 같은 대화가 오고 갈 때면, 정말 오랜만에 느껴보는 지적인 희열과 짜릿한 흥분감에 가슴이 벅차오르는 것을 느꼈단다. 바로 그 순간, 세상 돌아가는 일에 치여 잠시 잊고 있었던, 내가 진정으로 갈망하던 대화의 짜릿함을 다시금 떠올렸어. 지금은 게임 회사 사람들과 만나면 주로 게임 이야기(무슨 게임을 했는지, 플레이가 어떤지, 아이템은 뭘 얻었는지 등등)를 나누게 되고, 나도 이제 그 분위기에 익숙해졌지만, 사실 내가 정말 가슴 뛰는 순간은 이런 거였어. 만약 친구들과 밥을 먹는데 누군가 "최근에 이런 기술이 개발된 거 알아? 그래서 내가 이런 장비를 샀는데…" 하면 옆에서 "어, 그거 내가 만들었어! 어떤 기술 구현하는 게 정말 힘들었지." 하고, 또 다른 쪽에선 "그게 벌써 개발됐다고? 어느 판타지 영화에서나 상상했던 건데 현실이 되다니!" 하며 감탄하는, 그런 대화가 오간다면 나는 아마 터져버릴 듯한 즐거움을 느낄 거야. 그 친구와의 대화가 바로 그런 종류의 희열을 느끼게 해주었지. 그렇게 오랜 시간 동안 어떤 가식이나 계산 없이, 서로의 생각과 꿈에 대해 진지하면서도 즐겁게 대화 나눌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누나에게는 정말 오랜만이었고, 그 자체로 이 여행이 준 가장 큰 선물 중 하나처럼 느껴졌어.
그는 내가 마음에 들었던 것 같았어. 자신의 MIT 친구를 통해 건물 내부도 구경시켜 주더니, 헤어지기 아쉬웠던 듯, 저녁에 그의 친구들을 만나는 자리에 같이 가지 않겠냐고 제안해주었단다. 처음엔 거절했어. 중국인 남자들만 모인 자리에서 아무리 맛있는 것을 먹어도 편치 않을 것 같았거든. 그리고 어느 공원에서 헤어졌는데, 몇 발걸음도 떼기 전에 외로움이 기다리고 있더라. 그래서 멀리 가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으로 다시 헤어졌던 장소에 찾아갔는데, 신기하게도 그도 돌아오고 있었어. 내가 맡겼던 물건을 돌려주러 오는 거였어. 나는 정말 폐가 되지 않는다면 내가 함께 해도 괜찮냐고 물었고, 그는 매우 기쁘게 “Sure!”하고 말했어.
나는 보스턴에서 유명하다는 중국 식당에서 푸짐한 식사를 대접 받았단다. 그의 친구들은 이미 MIT, Harvard에서 석, 박사를 공부하고 있는 수재들이었어. 그들은 나를 위해 영어로 대화를 하기도 하고, 중국어로 대화하기도 했는데, 어느 것을 사용하는 데에도 불편함이 없었어. 나는 한국에서 천재들만 다닐 거라 여기던 세계 최고 대학의 연구원들과 식사를 하고 있는 것이 얼떨떨 했단다. 그러나 실제 만나 본 그들은, 그저 똑같은 사람이었어. 그들도 빠듯한 결혼 생활을 토로하고, 빡빡한 학업으로 인해 시간이 부족함을 이야기 했어. 한 가지 다른 점이 있었다면, 그것에 대해 크게 불평하거나, 좌절감을 보이는 게 아니라, 모든 것이 그들의 선택이기에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것 같았다. 솔직히 그들은 나보다 10살은 어린 친구들이었어. 그런데도 차분하고 진중한 태도를 갖춘 것이 어떤 구설수에도 휘말리지 않을 어른의 내공을 이미 가진 듯 보였어.
옛말에 그 사람에 대해서 알려면 그의 친구들을 만나보라는 말이 있잖아? 그 날 만난 그의 친구들을 통해 알게 된 그는, 아이 키우며 논문 쓸 시간이 없다고 토로하는 열 댓명의 친구들을 모이게 하는 힘이 있는 사람이었어. 그리고 몇 년 뒤면 유명 대학 교수나, 대기업의 연구원들이 이 사람 곁에 있을 거란 게 뻔히 그려지더구나. 말로만 듣던 화려한 인맥을 가진 사내를 눈 앞에서 보고 있자니, 이게 꿈인지 생시인지 구분이 가지 않을 정도였다. 그런데도 그들의 옷차림은 수수하고, 언변도 조곤조곤했지. 그래서 나의 유학 생활과 다르게 검소하고, 자립적인 유학 생활을 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단다.
그들은 나와 일면식이 있는 것이 아닌데도, 궁금한 것이 있으면 언제든 연락하라며 연락처도 선뜻 알려주었지. 그 때는 그들이 베푼 종류의 호의를 처음 받아봐서 그 가치를 알지 못했으나, 이제사 깨닫는 것은 친구의 지인을 친구를 통해 필터 없이 신뢰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최선의 선의였다는 사실이다.
돌아보면, 나의 첫 홀로 여행이었던 보스턴에서의 시간은 마냥 햇살처럼 밝고 즐겁기만 했던 것은 아니야. 분명 낯선 환경에 대한 두려움도 있었고, 혼자라는 사실에서 오는 깊은 외로움에 사무치기도 했지. 서툰 계획 때문에 귀한 시간을 허비하기도 했고, 예상치 못한 감정의 파도에 허우적거리며 힘들어하기도 했어. 하지만 그 모든 서툴고 불안했던 시간들을 하나씩 통과하면서, 누나는 분명 그보다 훨씬 더 크고 중요한 무언가를 얻었단다. 그것은 바로 '혼자서도 괜찮다'는 작은 용기, 그리고 '나는 스스로 해낼 수 있다'는 내면의 단단함이었어.
잠시 일상이라는 익숙한 공간과 관계에서 벗어나, 오롯이 나 자신과 깊이 마주하는 시간이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소중하고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았지. 늘 누군가와 함께 있을 때는 미처 들여다보지 못했던 내 마음의 소리에 귀 기울일 수 있었고,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어떤 것에 기쁨과 설렘을 느끼는지 더 선명하게 알게 되었어. 또한, 힘들고 외로운 순간, 멀리서나마 변함없이 나를 지지하고 응원해주는 친구들이 있다는 사실에 새삼 깊이 감사하게 되었고, 그동안 당연하게 여겼던 관계의 소중함을 다시 한번 마음속에 깊이 새길 수 있었지. 그리고 혼자였기에 가능했던 예상치 못한 만남과 대화 속에서 세상을 보는 시야를 넓히고 새로운 지적 자극을 얻는 즐거움도 알게 되었어.
샌프란시스코로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창밖을 바라보며, 나는 떠날 때와는 분명 다른 사람이 되어 있음을 느꼈어. 며칠간의 짧은 여행이었지만, 그 시간 동안 겪었던 모든 경험과 감정, 생각들이 아름다운 단풍처럼 내 안에 차곡차곡 쌓여 나를 조금 더 성숙하고 단단하게 만들어준 기분이었지. 보스턴의 낯선 거리 위에서 느꼈던 막막함과 외로움은 어느새 내 안의 숨겨진 용기를 확인하는 계기가 되었고, 혼자 보냈던 고독한 시간들은 나 자신을 더 깊이 이해하고 사랑하게 되는 성찰의 기회가 되었으며, 친구들의 따뜻한 위로와 응원, 그리고 예상치 못한 만남과 그들의 호의는 인간관계의 소중함과 세상을 보는 시야를 넓혀주었어. 돌아왔을 땐, 여행을 떠나기 전 나를 괴롭혔던 복잡했던 생각들과 불안했던 마음이 한결 명료하게 정리되어 있었고, 다시 나의 일상으로 돌아가 이전보다 더 씩씩하게 중심을 잡고 살아갈 힘과 용기를 얻은 기분이었단다.
동생아, 누나가 이 길고 긴 여행 이야기를 너에게 들려준 진짜 이유를 이제 이야기할게. 이 모든 경험을 통해 누나가 배운 것처럼, 네가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얻게 될 많은 깨달음과 성장의 기회들을 응원하고 싶어서야.
그래서 언젠가 너에게도 시간과 마음의 여유가 생긴다면, 꼭 한번 홀로 여행을 떠나보라고 진심으로 권하고 싶어. 꼭 아주 멀리 가거나 거창한 계획을 세울 필요는 없어. 그저 익숙한 환경에서 잠시 벗어나, 오롯이 너 자신에게 집중하고 너의 발걸음이 이끄는 대로 따라가 볼 수 있는 시간을 가져보는 거야. 처음에는 어색하고 두려울지도 모르지만, 그 작은 두려움을 넘어 한 걸음 내딛는 순간, 분명 네가 미처 알지 못했던 네 안의 또 다른 멋진 너를 발견하게 될 거고, 세상을 바라보는 새로운 눈을 뜨게 될 거라고 누나는 확신해. 혼자만의 여행이 주는 그 특별하고도 오묘한 매력을, 너도 언젠가는 꼭 한번 경험해볼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라.
그리고 누나는 네가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내가 보스턴에서 외로움에 몸부림칠 때 멀리서나마 기꺼이 내 이야기에 귀 기울여주고 응원해주었던 친구들, 그리고 예상치 못하게 만나 따뜻한 호의를 베풀어주었던 사람들 덕분에 혼자가 아니라는 깊은 안정감을 느꼈던 것처럼, 세상 어느 곳에 있든, 어떤 시간을 보내고 있든, 힘들거나 외로울 때 혹은 기쁜 소식을 나누고 싶을 때 망설임 없이 기댈 수 있는 좋은 인연들이 네 곁에 항상 가득했으면 좋겠어. 그런 따뜻한 연결들이 너의 삶을 더욱 풍요롭게 만들어 줄 거라고 믿기 때문이야.
잊지 마, 동생아. 바다 건너 이곳에 있는 누나도 너의 그런 든든한 인연 중 하나라는 사실을. 네가 어디에 있든, 몇 시이든, 누나는 항상 네 편이고 너의 이야기를 들을 준비가 되어 있다는 걸.
또 한 가지, 기억나니? 누나가 보스턴에서 만난 친구와 기술과 미래에 대해 이야기하며 느꼈던 그 짜릿한 희열 말이야. 네가 정말로 가슴 뛰며 즐거워하는 관심사에 대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신나게 이야기할 수 있고, 네 이야기에 진심으로 귀 기울여 공감해주고, 때로는 네 상상력과 지식을 저 광활한 우주만큼이나 팽창시켜 주는 듯한 그런 멋진 동료이자 친구들이 네 곁에 많았으면 좋겠어. 그런 사람들과 함께라면 네가 하는 일이 더욱 즐거울 거고, 매일을 살아가는 너의 삶 자체가 반짝이는 기쁨으로 가득할 테니까. 누나는 네가 그렇게 즐겁게 일하고, 매일매일 살아가는 삶 속에서 행복을 느끼기를 진심으로 응원해.
너와도 언젠가 이런, 각자의 여행에서 얻은 깨달음과 서로의 관심사, 그리고 마음속 깊은 꿈에 대해 밤새도록 이야기 나누며 함께 웃고 설렐 수 있는 날이 오기를 기대하며, 오늘은 이만 줄일게. 못다 한 이야기는 다음에 또 편지로 전하도록 할게.
늘 너를 응원하는 마음을 가득 담아,
누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