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미국 여행이 내게 준 선물, LA에서 발견한 나다움

1장. 여행, 그리고 도전 #1

by 꿈꾸는 하다

동생아, 기억하니? 머리말에서 누나가 왜 이 긴 편지를 쓰기 시작했는지 이야기했던 거. 너에게 말을 걸고 싶어서, 그리고 멀리 떨어져 지내는 동안 내가 이곳에서 겪고 배우며 느낀 것들을 너와 나누고 싶어서라고 말이야. 어쩌면 서툴렀던 과거의 누나 역할 대신, 이제라도 네 삶의 작은 등불 하나 밝혀주고 싶은 마음인지도 모르겠다. 오늘은 그 첫 번째 이야기로, 누나가 이곳 미국 땅에서 처음으로 '여행'이라는 걸 제대로 마주하고, 또 나 자신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었던 경험을 들려줄까 해. 유학 생활은 내게 교실 밖에서도 참 많은 것을 가르쳐 주었는데, 그중에서도 여행과 친구 관계는 특히나 큰 배움을 안겨주었단다. 친구 이야기는 때론 마음이 아팠지만, 여행을 통해 얻은 감동과 성장은 정말 예상치 못한 선물 같았거든.


| 여행, 내겐 너무 낯설었던 단어


너도 잘 알겠지만, 예전의 나는 여행을 그다지 즐기는 편이 아니었지. 여행에 큰 흥미가 없던 누나 모습, 너도 기억할 거야. 온 가족이 일본 여행 가자고 했을 때도, 시간이 없던 것도 아닌데 나만 안 갔었잖아. 그때 누나가 좀 유별나 보였을지도 모르겠다. 다들 설레는 가족 여행을 나만 시큰둥해했으니 말이야. 하지만 그때의 나는 왜 시간과 돈을 들여 굳이 낯선 곳에서의 불편함을 감수해야 하는지 잘 이해하지 못했어. 솔직히 말하면, 빠듯했던 주머니 사정도 마음에 걸렸고, 여행 자체의 즐거움보다는 낯선 사람들과 부대끼며 서툰 소통을 해야 하는 과정이 더 부담스럽게 느껴졌거든. 이름만 들어도 설레는 파리나 베네치아에 갔을 때조차, 돌이켜보면 마냥 행복했던 기억보다는 아쉬움이 더 크게 남았던 걸 보면, '여행은 역시 내 취향이 아니야'라고 스스로 단정 지었던 것 같아. (너는 그때 내 속도 모르고 같이 안 간다고 투덜댔을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 낯선 환경이 건넨 여행의 초대장


그랬던 내가 여행의 즐거움을 조금씩 알아가기 시작한 건, 참 아이러니하게도 이곳 샌프란시스코에서 유학생이 된 후였어. 오기 전엔 '유학생' 하면 왠지 24시간 책상 앞에 앉아 공부에만 매진하는 진지한 모습을 상상했는데, 막상 와보니 생각보다 학생들은 젊고 활기찼고, 무엇보다 이곳 캘리포니아의 눈부신 날씨와 끝없이 펼쳐진 드넓은 자연, 샌프란시스코 특유의 자유로운 분위기가 나를 자꾸만 교실 밖으로 이끌었어. '아, 이 좋은 곳들을 직접 보고 경험하지 않으면 너무 아깝겠다' 싶은 마음이 절로 들었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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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함께 어울렸던 대만 친구들은 여행에 정말 열심이었어. 학기가 시작하기도 전에 벌써 요세미티, 레이크 타호, LA, 라스베이거스 같은 명소들을 경쟁하듯 다녀왔더라고. 그 친구들에게 여행은 마치 우리 대학생들이 삼삼오오 모여 맛집을 찾아다니듯, 함께 추억을 쌓고 서로의 경험을 나누는 아주 자연스러운 소통 방식이자 놀이 문화였지. 실제로 나중에 대만에 갔을 때, 어린 친구들이 졸업 가운을 입고 친구들과 함께 여행하며 사진 찍는 모습을 정말 많이 봤어. 함께 좋은 것을 보고 느끼며 웃고 떠드는 그 건강하고 행복한 에너지가 참 보기 좋고 부럽더라. 그 친구들 보면서, 너도 한국에서 친구들이랑 저렇게 즐겁게 여행 다니고 있을까, 문득 궁금해지기도 했어.


| 예상치 못한 제안, 그리고 어색했던 출발


그렇게 새로운 환경에 조금씩 적응해가던 봄방학 무렵, LA 여행 그룹 채팅방에 은밀히 초대를 받았어. 유학 와서 처음으로 마음을 터놓기 시작했던 외국인 친구, 맨디가 불쑥 자기 친구들의 여행 모임에 나를 초대한 거였지. 나와 다른 미국 친구 한 명을 빼고는 전부 대만 친구들이었고, 대부분은 오리엔테이션 때 스치듯 인사만 나눈, 아직은 서먹한 사이였어. 총 7명이 커다란 밴을 빌려 며칠 동안 LA를 여행한다는, 듣기만 해도 뭔가 청춘 영화의 한 장면 같은, 설레면서도 조금은 막막한 계획이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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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말하면, 동생아, 그때 누나는 여행보다 공부가 더 하고 싶었단다. (믿기 어렵겠지만, 사실이야.) 오랜만에 다시 시작한 공부가 어찌나 재미있고 절실하게 느껴졌는지 몰라. 그런데 또 한편으로는, 누가 어디 다녀왔다는 소식만 들으며 부러워하던 차에 찾아온 기회라 무척 기쁘기도 했어. 그들만의 여행에 유일한 한국인으로 초대받았다는 사실도 왠지 모르게 특별하게 느껴졌고 말이야. 이게 말로만 듣던 유학생 라이프인가 싶어 설레기도 하고, 나를 챙겨주는 친구 마음이 고맙기도 하고… 마음이 참 복잡했지. LA에 대해 아는 것도 거의 없는데 괜찮을까, 하는 걱정도 스멀스멀 올라왔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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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다가 결정적으로, 여행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우리 사이에는 여행에 대한 기대치가 다르다는 걸 확인하게 되었어. 여행 떠나기 전날 밤, 기숙사 로비에 다 같이 모여 마지막으로 계획을 점검하는데, 나에게 가보고 싶은 곳이 있냐고 묻기에 망설임 없이 대답했지. USC나 UCLA 같은 명문대 캠퍼스를 꼭 한번 보고 싶다고. 막 미국 유학을 시작한 내게는 그런 세계적인 대학의 분위기를 직접 느껴보는 것 자체가 너무나 흥미로운 탐험처럼 느껴졌거든. (지금 생각하면 참 엉뚱했지. 여행 가서 남의 학교 구경이라니. 너라면 '누나답다'고 웃어주려나?) 그런데 그 순간, 공기가 싸늘하게 식는 게 느껴졌어. 친구들이 미묘한 표정으로 내가 알아들을 수 없는 중국어로 속닥이기 시작하는데, 이상하게도 그 의미가 너무나 명확하게 와닿는 거야. '이미 유학까지 와 있는데, LA까지 가서 굳이 남의 학교 구경을 가야 해?' 하는 듯한, 약간은 황당하다는 듯한 그 느낌. 악의가 있어서라기보다는, 정말 순수하게 이해가 안 된다는 표정이었지. 그때 깨달았어. 아, 우리가 생각하는 '여행의 즐거움'이 서로 다르구나. 여행의 즐거움은 결국 같은 곳을 바라보고 같은 감정을 공유하는 데서 시작되는 건데, 출발부터 이렇게 삐걱대는구나 싶었지. 이때의 경험이 누나가 너에게 '함께하는 것'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보게 된 중요한 계기가 되었어.


| ‘괜찮아’라고 애써 말했던 진짜 이유


하지만 나는 결국, 그들과 함께 얼떨결에 첫 미국 여행길에 올랐어. '괜찮을 거야, 이것도 좋은 경험이 될 거야'라고 스스로를 수차례 다독이며, 내 마음보다는 그 상황에 나를 맞추려고 애썼지. 아마 너는 궁금할 거야. 왜 마음이 온전히 동하지도 않았는데, 심지어 시작부터 어긋남을 느꼈는데도 그 여행에 굳이 함께했냐고 말이야. 그때 내가 나 자신에게 속삭였던 그 ‘괜찮아’라는 다독임 뒤에는, 지금 돌이켜보면 참 어리고 서툴렀던 여러 복잡한 감정들이 숨어 있었단다. 누나가 왜 그랬는지, 그 속마음을 너에게는 솔직하게 다 보여주고 싶어. 혹시 너도 살면서 비슷한 선택의 기로에 설 때, 누나의 조금은 바보 같았던(하지만 덕분에 정말 많이 배웠던!) 경험이 작은 힌트라도 될 수 있을까 해서 말이야.


첫째는, 새로운 관계에 대한 조심스러움과 잘 지내고 싶은 마음이 너무 컸기 때문이었지. 맨디는 입학식 날 우연히 옆자리에 앉게 된 후, 나이도 비슷하고 성격도 유순해 보여서 ‘아, 이 친구와는 정말 좋은 친구가 될 수 있겠다, 어쩌면 운명일지도 몰라!’ 하고 혼자 속으로 큰 기대를 품었던 친구야. 그래서 그 친구와 제대로 된 우정을 쌓기도 전에, 먼저 ‘단짝’이라는 틀을 만들어 그 관계를 지켜내고 싶다는 조급한 마음이 앞섰던 거지. 진짜 우정은 시간을 두고 서로를 알아가며 자연스럽게 신뢰를 쌓아가는 건데, 그때 나는 어쩌면 혼자가 될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두려움 때문에 그 과정을 온전히 기다릴 마음의 여유가 부족했나 봐. 그래서 맨디의 제안을 ‘나를 특별히 생각해 주는 배려’라고 혼자 확대 해석했고, 그 고마운 마음을 거절하면 혹시라도 관계가 어색해질까 봐 덜컥 겁이 났던 거야. 정작 나는 공부에 집중하고 싶다는 솔직한 마음은 꺼내놓지도 못하면서 말이지. 친구의 제안은 무조건 밝게 수락해야 좋은 친구인 거라고, 그렇게 믿었던 것 같아. 친구가 내 솔직한 마음을 이해해주지 못할 거라고 미리 단정 짓는, 지금 돌이켜보면 꽤나 일방적이고 불균형한 관계의 논리를 나 혼자 갖고 있었던 거지. 참 어리석었지. 너는 누나가 이러는 거 보면 답답하다고 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때 누나는 그게 최선이라고 생각했어.


둘째는, 오랫동안 내 안에 익숙하게 자리 잡았던 ‘친구라면, 혹은 같은 그룹이라면 함께해야 한다’는 생각 때문이었어. 모두 함께 가는데 나만 빠지면 왠지 뒤처지는 것 같고, 혹시 이 그룹에서 소외되는 건 아닐까 하는 불안감. 미국에 와서 이전과는 다른, 좀 더 주체적인 삶을 살겠다고 다짐했지만, 삼십 년 넘게 공동체 중심의 한국 문화 속에서 살아온 습관은 생각보다 깊이 내 몸과 마음에 배어 있었던 거야. 한국에서는 가끔 그런 분위기를 답답해했으면서도, 막상 낯선 환경에 홀로 놓이니 그 익숙했던 틀 안에서 안정감을 찾으려 했던 모순적인 모습이었지. 그래서 잘 알지도 못하는 친구들과 함께 여행을 간다는 사실 자체에 안도하며, ‘그래, 나도 이제 잘 적응하고 있구나’ 하고 스스로를 위로했는지도 몰라. 여행 계획에서 느껴졌던 불편함이나 어색함은 ‘관계란 원래 어느 정도 맞춰가는 거지’라며 애써 외면하면서 말이야. 이 경험은 내 안에 깊이 뿌리 박힌 문화적 습관과, 그것이 내 선택에 미치는 영향을 처음으로 자각하게 해 준 중요한 계기가 되었어. 우리가 자라온 환경이 때론 이렇게 나 자신보다 남의 시선이나 관계의 틀을 더 중요하게 여기게 만들기도 하더라. 너는 부디 앞으로 살아갈 날들 속에서, 너 자신의 목소리에 더 귀 기울이고 너만의 중심을 단단히 잡아갈 수 있기를 바라면서 이 이야기를 하는 거야.


| '나다운 여행'의 기준을 조금씩 세우다


결국 그렇게 기대 반, 걱정 반으로 시작된 여행에서 나는 예상했던 대로 온전한 만족감을 누리기는 어려웠어. LA까지 가서 스키를 타고 종일 놀이공원에서 시간을 보내는 건, 우리 가족 여행 스타일 알잖아? 아름다운 자연을 보면서 맛있는 거 먹고 도란도란 이야기 나누며 푹 쉬는 거. 그것과는 정말이지 거리가 먼, 젊음의 에너지가 넘치다 못해 혼을 쏙 빼놓는 경험이었지. (지금 생각해도 아찔해. 그 후로 다시는 롤러코스터를 타지 않았어. 그 때 졸업했으니까, 하하.) 너는 어쩌면 이런 활기찬 여행을 더 좋아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들더라. 그리고 LA에 가면 꼭 가보고 싶었던 코리아타운 방문은 바쁜 일정 속에 결국 빠지게 되었고, 다 같이 모여 식사할 때면 한 번쯤은 맛있는 한국 음식을 소개해 주고 싶었는데 늘 중국 음식점만 찾아가는 것도 솔직히 조금은 아쉬웠어.


하지만, 그랬기 때문에 평소의 나라면 절대 해보지 못했을 아주 새롭고 특별한 경험들을 잔뜩 할 수 있었던 것도 사실이야. 그 친구들 덕분에 난생처음 스노우보드라는 걸 타봤는데, 몇 번을 넘어지고 구르면서도 결국 혼자서 내려왔을 때의 그 성취감이란! 또, 보기만 해도 아찔해서 평생 탈 일 없을 거라 생각했던 롤러코스터에 몸을 싣고 목이 터져라 소리를 지르기도 했지. 평소 겁 많던 누나가 평생 용기 내지 못했을 법한 것들을, 그 여행에서 그 친구들과 함께였기에 시도해 볼 수 있었어. 마치 밀린 경험치를 한꺼번에 채우는 기분이었달까. 두려움의 한계를 넘어섰을 때 느껴지는 그 짜릿함은 정말이지 잊을 수가 없어. 또 처음으로 마작이라는 놀이도 배워보고, 매일같이 처음 보는 신기한 음식들을 맛보기도 했지. 다행히 친구들이 내 입맛을 배려해서 너무 낯설지 않은 음식들을 잘 골라준 덕분에, 걱정과 달리 맛있게 식사를 즐길 수 있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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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모든 새롭고 신나는 경험들 속에서 내 마음을 가장 크게 움직이고 행복하게 했던 순간은, 아이러니하게도 여행의 마지막 날, 돌아오는 길에 잠시 들렀던 실리콘밸리의 구글 캠퍼스였어. 온전히 ‘내가’ 원해서 가자고 했던 곳이었지. 나와 함께했던 친구들은 대부분 예술 분야 전공이어서, 솔직히 나만큼 이 세계 IT 기술의 중심지에 큰 관심이 없었을 거야. 그런데도 피곤했을 텐데 나를 위해 기꺼이 시간을 내주었지. 이미 퇴근 시간이 지나 캠퍼스는 텅 비어 있었고, 건물 불도 대부분 꺼져 있었어. 그런데도 영상으로만 보던 그 알록달록한 구글 자전거들이 자전거 주차장에 즐비하게 늘어서 있는 것만 봐도 그렇게 심장이 두근거리는 거야! (너도 내가 IT 기기나 새로운 기술 이야기 나오면 눈 반짝이는 거 알지?) 잔디밭에 덩그러니 놓인 안드로이드 로봇 조형물을 발견했을 땐, 마치 어린아이가 디즈니랜드에서 미키마우스를 처음 만난 것처럼 소리를 지르며 좋아했어. 아마 거기서 찍은 사진이 며칠 동안 LA에서 찍은 사진들을 합친 것보다 더 많을지도 몰라. 그때의 기쁨은 뭐랄까, 시끌벅적한 즐거움과는 다른, 아주 조용하지만 깊은 만족감, 드디어 ‘내’가 진정으로 원하고 보고 싶었던 것을 만난 느낌이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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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보고 싶은 것을 보는 여행, 그리고 너


나의 조금은 서툴렀던 첫 미국 여행은, 결국 ‘나에게 맞는 선택’을 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몸소 깨닫게 해주었어. 예전에 방영했던 '꽃보다 할배' 베를린 편 기억나니? 거기서 이서진 씨가 민박집 아들이 추천하는 요즘 뜨는 명소 대신, 할배들에게 더 의미 있을 법한 통일 이전 독일의 흔적을 찾아다니면서 ‘우리가 보고 싶은 여행을 해야 한다’고 말하는 장면이 있었는데, 그때는 그 말이 크게 와닿지 않았거든. 그런데 이번 LA 여행을 겪고 나니 그 말의 의미를 비로소 알겠더라. 엘에이에서 경험한 새롭고 낯선 것들은 분명 내게 신선한 자극을 주었지만, 마치 질소만 잔뜩 들어있는 과자 봉지처럼, 내 마음 깊은 곳까지 가득 채워주지는 못했어. 하지만 바로 그 경험 덕분에, 나는 어떤 순간에 진심으로 감동하고, 어떤 방식의 여행이 내게 깊은 만족감을 주는지 훨씬 선명하게 알게 되었지. 어떤 속도로 걸을 때 편안한지, 어떤 풍경 앞에서 마음이 설레는지, 그리고 어떤 사람들과 함께할 때 진정으로 나 자신으로 있을 수 있는지 말이야. 남들이 좋다는 것, 혹은 익숙하다는 것을 따라가는 게 아니라, 내 마음이 설레고 내 가슴을 뛰게 하는 것을 선택하는 용기. 너의 삶에서도 그런 선택의 순간들이 분명 있을 텐데, 그때 이 누나의 경험이 너에게 작은 등불 하나 밝혀줄 수 있다면 좋겠다.


여행이 끝나고, 함께했던 친구들과는 자연스럽게 연락이 뜸해졌어. 내가 단짝이라 생각하며 나름 마음을 쓰고 도와주기도 했지만, 관계라는 것이 한쪽의 노력만으로는 이어지기 어렵다는 걸 담담하게 배우게 되었지. 진짜 좋은 인연은 억지로 애쓰거나 의무감으로 유지되는 게 아니라, 서로의 결이 자연스럽게 맞을 때 편안하게 흘러가는 거니까. 어쩌면 이 여행은 내게 맞지 않는 상황이나 관계 앞에서 솔직해지는 법, 그리고 때로는 '아니오'라고 말하는 것 또한 나 자신과 관계를 위한 용기 있는 선택이 될 수 있음을 알려준, 정말 값지고 중요한 첫 수업이었던 셈이야.


| 너는 어떤 여행을 좋아하니, 나의 소중한 동생아


이렇게 한바탕 좌충우돌하며 나의 여행 취향이라는 걸 어렴풋이나마 알아가던 그 시간들 속에, 이상하게 자꾸만 네 생각이 많이 났어. 그동안 내가 알고 있던 너의 모습, 네가 좋아한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어쩌면 진짜 너의 모습이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거든. 우리 어렸을 때는 아무래도 부모님의 방식이나 주변의 기대에 맞춰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에 더 익숙했잖아. 그러다 보니 나도 모르게 '너는 이럴 것이다'라고 단정 지었던 부분들이 있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더라.


그래서 새삼스레 너에 대해 많은 것들이 궁금해졌어, 동생아. 너는 요즘 어떤 여행을 좋아하니? 마음 맞는 친구들과 훌쩍 떠날 때 주로 어디로 향해? 초록빛 가득한 산을 좋아하니, 아니면 탁 트인 바다를 보며 생각에 잠기는 걸 더 좋아하니? 여행에서 네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뭐야? 숨겨진 맛집을 찾아다니는 즐거움? 아니면 유명한 명소 앞에서 멋진 사진을 남기는 것? 그것도 아니면 그냥 좋은 사람들과 함께하는 그 시간 자체? 누나는 정말이지, 너에게 궁금한 게 아주 많아졌어.


네가 언젠가 이곳 미국에 온다면, 누나가 그동안 봐왔던 멋진 곳들을 너에게 꼭 보여주고 싶어. 하지만 그보다 더, 네가 좋아하는 것들만 쏙쏙 골라서, 네가 이곳에서의 모든 여행 순간순간을 온전히 행복하게 느꼈으면 좋겠어. 네 가슴 깊숙한 곳에서부터 짜릿한 희열이 올라오는 그런 경험을 꼭 한번 느끼게 해주고 싶거든. 그래서 네 이야기가 더 듣고 싶어. 네가 무엇을 좋아하고, 어떤 것에 마음이 움직이는지 알아야 누나가 너를 위한 최고의 여행을 준비해 줄 수 있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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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시간이 흘러 너와 나에게 각자의 가정이 생기고, 어쩌면 지금처럼 이렇게 바다 건너 멀리 살게 된다면, 우리가 함께 여행할 수 있는 시간은 점점 더 줄어들지도 모르겠지. 생각만 해도 조금 서운해지네. 그러니까 우리, 앞으로 함께할 수 있는 모든 여행의 기회들을 더 소중히 여기기로 하자. 일부러라도 시간을 내서 더 자주 만나고, 더 많은 곳을 함께 보고 느끼며, 오래오래 기억될 행복한 추억들을 차곡차곡 쌓아가자. 그것이 누나가 지금 너에게, 그리고 미래의 우리에게 주고 싶은 가장 큰 선물이니까.


사랑한다, 내 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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