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에게 말을 걸고 싶어서

머리말

by 꿈꾸는 하다

내가 이 글들을 처음 쓰기로 마음먹었던 건, 아주 단순하게도 너에게 말을 걸고 싶어서였어. 하나뿐인 형제인데, 타국에 나와 있다 보니 안부조차 묻기 어려워지더구나. 아니, 어쩌면 네가 대학 때문에 집을 떠난 후부터, 혹은 그보다 더 이전부터 우리는 서로에게 다정한 말 한마디 건네는 걸 어색해했던 건지도 모르겠다. 한국에선 가끔 얼굴이라도 마주하니 그럭저럭 괜찮다고 생각했는데, 이곳 샌프란시스코에서 정신없이 공부하던 어느 날 문득 깨달았어. 내가 먼저 말을 걸지 않으면, 네가 내 삶에 더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말이야. 그때의 서늘함이란.


어른이 된 다른 형제들은 이 과정을 어떻게 받아들였을까. 한 사람이 독립적인 개체가 되어 자신만의 세상을 만드는 건 당연한 성장이지만, 나는 좀 씁쓸했단다. 오늘 처음 본 사람이 점심으로 뭘 먹었는지도 알게 되는 이곳에서, 정작 가장 아끼는 동생인 너는 의식적으로 떠올리지 않으면 내 생각의 저편으로 사라져 버린다는 사실이 말이야. 스쳐 갈 사람들에게 주는 관심의 작은 조각만큼도 너에게는 건네지 못하는 내가 과연 누나 역할을 제대로 하고 있는 걸까? 성인이 된 동생의 삶을 존중하고 믿어주는 누나일까, 아니면 그냥 무관심한 누나일까? 여러 번 스스로에게 물으며 혼란스러워했지.


돌아보면, 우리 나이 차이가 크지 않아서 네게 제대로 된 누나 노릇을 해주지 못한 것 같아 속상했던 순간들이 많았어. 네게 부모님의 사랑이 필요했을 때 나 역시 사랑이 절실했고, 네가 사회에 첫발을 내딛고 힘겹게 적응하던 때에도 나 역시 몇 걸음 앞에서 넘어지지 않으려 허둥대고 있었으니까. 이제 너는 나나 부모님의 도움 없이도 굳건히 설 수 있는 강한 사람이 되어 정말 자랑스럽지만, 내 마음속엔 그때의 아쉬움이 여전히 남아있어. 네가 너만의 가정을 꾸리고 더 큰 어른으로 성장하기 전에, 누나로서 줄 수 있는 마음을 온전히 전해주고 싶었단다. 그래서 매일 조금씩, 너를 생각하는 시간을 내어 아주 긴 편지를 쓰기 시작한 거야.


어릴 때부터 말보다는 글자가 편했던 내게 편지 쓰기는 가장 쉽고 진중한 소통 방식이었어. 게다가 네가 속마음을 쉽게 내비치지 않는다는 걸 알기에, 내 이야기라도 주저리주저리 늘어놓다 보면, 완벽한 대화는 아닐지라도 네가 들어주지 않을까 하는 기대로 즐겁게 써 내려갔지.


막상 글을 쓰기 시작하니 너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가 너무 많더라. '왜 이 많은 이야기를 그동안 못 했을까' 싶을 정도로. 삼십 년 넘게 살았어도 미국에는 여전히 새로운 것들 투성이였고, 그 경험 하나하나를 너와 나누고 싶었어. 사실 나 혼자 미국에 온 것이 내내 미안했거든. 처음에는 내가 받을 자격이 있다고 생각했어. 내게는 안 된다던 것들이, 네가 고집부리면 당연하게 허락되는 걸 보면서 억울했으니까. 나도 한번쯤은 끈질기게 원해서 가장 좋은 것들을 누려보고 싶었지. 그런데 기대 없이 던진 돌이 너무 큰 행운을 가져다주었어. 이곳에서의 삶은 정말 좋았단다. 물론 힘든 순간도 많았지만, 매일 성장하고 살아있음을 느끼는 감사한 날들이었어. 그래서 문득문득 생각했지. 똑똑한 네가 이곳에 왔다면 얼마나 더 멋진 시너지를 만들어냈을까, 하고. 그런 상상을 하면 마음 한편이 시리기도 했어. 그래서 이 글을 통해 내 경험과 배움을 나눈다면, 이미 한국에서 나름의 길을 잘 걷고 있는 네게 생각의 폭을 넓혀주는 작은 선물이 되지 않을까 하는 바람을 담아 적었단다.


하지만 생각과 경험을 글로 조리 있게 엮는 건 쉽지 않더라. 마음먹은 지 1년이 훌쩍 넘도록 계속 고쳐 쓰고 있어. 지난 3년간 내가 너무 빠르게 변했기 때문이야. 어제의 생각과 오늘의 생각이 전혀 다를 정도로 급격히 성장했거든. 한국에서는 나도 충분히 어른이라고 생각했는데, 미국에 온 첫날부터 마치 갓난아이가 된 것처럼 삶을 다시 배우는 기분이었어. 이런 변화를 예상치 못했기에, 어떤 생각이 진짜 내 생각인지, 너에게 무엇을 전해야 할지 오랫동안 혼란스러웠지. 3년이 지난 지금 어렴풋이 짐작건대, 영화 '컨택트(Arrival)'처럼 새로운 언어(영어와 프로그래밍 언어)를 배우고 다른 방식으로 생각하게 되면서 이전에는 보지 못했던 것들을 깨닫게 된 것 같아. 이건 정말 놀라운 경험이었고, 그때부터는 단순히 너에게 말을 거는 수다를 넘어, 내가 세상을 어떻게 바라보게 되었는지, 이 새로운 사고방식에 대해 쓰기 시작했어. 여전히 성장 중이라 지금의 생각들이 완벽하다고 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옳은 방향으로 가고 있고 이전보다 더 큰 생각을 하게 되었다고는 자신해. 때로는 이 깨달음을 나눠야 한다는 사명감으로 글을 써 내려가기도 했단다.


처음엔 끝이 있을까 싶었던 글쓰기가 어느새 100장이 넘는 기록으로 쌓이고, 이제 마무리해도 좋겠다는 마음이 드는 걸 보니 신기하기도 하고, 이 과정 자체가 또 하나의 성장이었구나 싶어.


하지만 이 모든 글자를 통해 내가 너에게 진정으로 하고 싶었던 말은 아주 간단해. 널 정말 많이 아끼고 사랑한다는 것. 이 마음만큼은 글을 쓰기 시작한 처음부터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변하지 않았어. 내 삶의 좋은 것들을 통째로 너에게 선물하고 싶은 마음이었지. 항상 몇 걸음 앞서 걸어가는 내 삶의 기록들이, 훗날 네 인생에 어려운 문제가 닥쳤을 때 작은 참고자료가 될 수 있다면, 속마음을 잘 드러내지 않는 네가 이 글을 통해 스스로 문제를 해결할 작은 실마리라도 얻을 수 있다면 좋겠어. 그리고 이 글들이 언젠가 책이 되어 네 곁에 있다면, 20대의 나처럼 힘이 되어주지 못했던 누나가 아니라, 말없이 든든한 힘이 되어주는 누나 같은 존재가 되지 않을까, 그런 기대를 품고 글을 완성해가고 있단다.


그래서 앞으로 우리가 어디에 있든, 나는 항상 너를 생각하며, 네게 무엇을 줄 수 있을지 고민하며, 끊임없이 너에게 사랑한다고 말을 걸 거야. 이 글들이 언제나 네 가장 가까운 곳에서 누나 대신 너와 함께 해주면 좋겠다.

사랑한다, 동생.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