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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reamHunter Apr 12. 2024

오지랖으로 사는 삶

또 쓸데없는 일을 벌이려는 그대에게


정신분석에 관련한 책을 읽고 있습니다. 혼자 하려니 너무 힘들어서 비슷한 사람들을 모아가며 그 안에서 도움도 받고 귀인들도 보게 됩니다. 그 길에서 만난 사람들 중에는 정신분석가나 심리학자, 교수님, 정신과 의사 쎔 등도 계시기에 배움도 받고 도움도 요청하면서 이제는 단순 취미 이상이 되었지요. 더구나 이재갑 교수님 추천으로 책까지 출간하는 기적을 얻고 보니 스치는 인연이라도 소중하다는 것을 매일 느끼고 있습니다.


파라마타, 2024


정신분석에 관련한 글을 읽는다는 것은 분명 고상한 취미이고 즐거움도 크지만 프로이트라는 정신과 의사 선생님께서 만드신 학문이기에 아무래도 저같은 일반인이 재미 삼아 인문학으로 접근하기에는 장벽이 너무 높긴 합니다. 그러니 가끔 참여하는 세미나나 홀로 책을 읽는 것만으로는 배움이 쌓여가는 느낌보다는 맥락 없이 책을 읽고 너무 어려운 부분은 내키는 대로 해석하고 넘기기에 잘못된 방향으로 흐르는 것 같습니다.


그러니 제도권에서 공부를 하는 것에 관심을 둡니다. 언어 구조로 이루어진 우리 무의식을 탐구하는 학문인지라 제2 국어인 영어로는 무의식을 진지하고 깊게 탐구하는 것에 한계가 있을 것 같아 한국에 있는 교육기관을 먼저 찾아보았습니다.


방송통신대학이나 기타 사설 기관에 문의를 해보니 우선 정신분석이라는 과목이 많지 않을뿐더러 있다고 해도 실습 등 문제가 있어서 비대면만으로는 진행하기 어렵다는 것이 학교 측이나 제가 내린 결론입니다.


결국 호주에서 찾아야겠습니다. 5천만이 사는 한국에서도 그럴지니 12만 정도 교민이 사는 이곳은 더욱 열악합니다. 호주 심리학회에서 인정하는 대학 혹은 전문학교 과정을 살펴보니 요구하는 공부량이나 커리큘럼 구성이 자칫 정신분석에 대한 호기심이 없어질 것 같은 분량에 난이도였고 무엇보다 정신분석이랑 다르게 심리학을 연구하는 사람들을 위한 과목이었습니다.


이렇게 저렇게 알아보다 얻은 것은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였습니다.


학비 부담이 없을 것;

학위보다는 바로 사용 가능한 자격증;

현장 실습이나 임상 경험을 줄 수 있는 과정;

학교가 멀지 않을 것;

직장 생활 그리고 저녁 투잡이랑 병행 가능할 학업량.


코비드 이후로 온라인 모임이나 줌 세미나는 지긋지긋해서 이제는 캠퍼스에서 사람들을 만나 다시 20년 전 대학생 때 기분을 느껴보고 싶은 마음도 솟았습니다.




호주 교민들이 고국 정치에 관심이 많은 것은 향수병 때문일 것입니다. 그 어느 때 보다 뜨거웠던 총선이니 저도 참전하여 정치 토론방에서 열을 올리던 중에 이곳에서 심리학을 공부한다는 분을 만나게 됩니다. 너무 반가워서 이런저런 궁금한 것을 묻다가 마침 사무실 근처에 오실 일이 있다고 하여 직접 만나 뵙고 제가 찾던 위에 요구 사항에 맞는 학교를 하나 추천받습니다.


자세히 보니 심리 상담학이라서 심리학은 아니지만 과정에 심리학이 들어가 있는 것은 맞고 무엇보다 실습 경험을 많이 주는 학교이니 홀로 책을 읽는 인강이랑은 완전히 다를 거라는 말씀에 혹해서 학교 측에 연락하고 오늘 급하게 방문을 하게 됩니다.


호주는 심리학회 APS랑 상담학회 ACA가 따로 있는데요. 여기는 상담학으로 psychotherapist를 교육하는 학교였습니다. 매미 쎔 말씀으로 이쪽은 해결책이나 전략을 구상하는 치료기법이니 자유연상 기법을 중요시하는 정신분석이랑 전혀 다른 테크닉이라고 귀띔을 해주십니다.


즉, 정신분석에 관심이 있어서 상담학을 시작한다면 정반대 길을 택하는 것일 수도 있는데요. 우선 현장에서 상담을 하는 기법도 매우 흥미가 있기에 저는 괜찮을 것 같습니다.


https://www.theaca.net.au/becoming-a-member.php



급하게 약속을 정하고 학교에 가서 도서관을 구경하고 지인 찬스로 청강 수업도 듣게 됩니다. 가는 길도 멀지 않고 학교 분위기도 너무 좋아서 이런 분위기면 뭐든 공부하겠다는 의욕이 마구 생겼습니다. 청강을 마치고 교수님이랑 인사도 나누고 한국어 학부 학장님 면담까지 하게 됩니다.


위에 제 서사를 다른 방식으로 근사하게 정리해서 말씀드리니 매우 좋아하시고 마침 다음 학기부터 상담학 일정에 '정신분석'이 과목으로 하나 개설 된다고 하셨고 수업 일정도 저를 고려해 유연하게 맞춰주신다 하시니 내가 그토록 찾던 기회가 이렇게 열리는가 듣고도 믿기 힘든 지경이었습니다.


저도 한때는 학교에 남아서 회계학을 가르치는 길도 생각했으나 그보다는 현장으로 나가고 싶어서 멈추고 CPA 공인 회계사 시험으로 방향을 틀었다는 이야기를 하자,


"드림 회계사가 그런 꿈이 있다면 우리 학교도 Business faculty가 있으니 기회가 되면 여기서 강의도 하면 좋겠어요. 학교 재정 문제에 대해서 내가 자문도 구할게요."


이렇게 무척이나 저를 좋게 보시기에, 신앙이나 가족사 등 더 깊은 이야기를 꺼내 나누다 끝으로 등록을 하겠다고 구두로 입학 서약을 하고 왔습니다. 5월 초부터 다음 학기 시작이니 우선은 정신분석이 포함된 과목부터 등록하려고 합니다.


지난 달에도 고객이 운영하는 학교에서 회계 강의를 하루 부탁받았는데 매주 금요일에 회사를 뺄 방법이 없어서 고사하고 말았는데요. 이렇게 또 제안을 받게 되니 역시 사람에대한 호기심이랑 거기서 나오는 뜨거운 오지랖이 주는 즐거움이 인생에 크다고 확인했습니다.


아무리 학비가 저렴하다고 해도 혼자서는 결정할 수 없으니 가족들이랑 더 상의해 보고 돈을 융통해서 진행하려합니다. 뜻이 있으니 길이 있겠지요. 유도부가 어서 성장해 그곳에서 나오는 사례비로 이 학비를 충당하면 얼마나 좋을까...


갑자기 유도장 운영을 말하니 늦은 나이에 처음 유도를 시작할 때 옆에서 날 조롱하던 천변호사 조언이 생각납니다. "니 그러다 어디 크게 부러져야 정신차리겠노~" 그때도 웃고 넘겼고 작년에 십자인대 파열로 전신마취를 하면서도 전혀 후회는 느끼지 못했습니다. 반대로 이제 천변을 만나면 묻고 싶습니다.


그토록 자신을 아끼고 살아서 자네는 지난 10년 행복했는가?
그래, 아낀 결과 무엇을 이루셨나?



새로운 오지랖 시작..



녹슬어 못쓰게 되는 칼이 되기보다는

차라리 닳아서 없어지는 칼이 되리라.

- 故 방지일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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