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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reamHunter Apr 13. 2024

파라마타 연가戀歌

다시 Parramatta로..

원했던 대학에서 입학 거절을 당하고 Parramatta에서 대학 생활을 시작해야 했습니다. 시작이 이러하니 원주민어로 뱀장어라는 징그러운 이름처럼 파라마타라는 도시는 절대 내게 아름다울 수가 없었습니다.


맘에 들지 않는 학교였다지만 첫 학기 공부는 너무 어려워 두 배로 죽을 맛이고, 없는 살림에 시작한 유학 생활이니 돈도 시간도 풍족하지 않아 이곳에서 20대 유학생활은 잿빛으로만 남아있습니다. 하지만 호주에서 쫓겨나지 않으려고 발버둥 치다 보니 슬슬 파라마타 삶에 적응이 되고 뿌리를 내리게 됩니다.


여기도 사람 사는 곳이니 불안한 기억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태어나서 처음 여친을 사귀게 된 곳도 파라마타였고,

첫 키스도, 지금은 주차장으로 변해 사라진, 파라마타 캠퍼스 언덕이었죠.

공부하는 요령도 알게 되고, 여자들에게 거절당할 때마다 글을 쓰며 성숙해졌습니다.


한국 사람이랑 말하는 것이 그리워 파라마타 동산 교회도 등록하고 쓸쓸한 밤에 어쩌다 옆 집에서 한국 유학생들이 모여 하하 호호 떠드는 소리만 들려도 가슴이 뛰고 한 걸음에 달려가 나도 같이 어울리고 싶다고, 현관 문을 열어 줄 수 있냐고 모르는 사람에게 미친 소리를 할 정도로 피폐해졌습니다.   


이런 삶이 극도로 치닿는 순간에는 혼자 있는 방에서 벽이 내게 몰려와 숨이 막히는 환상도 경험하게 됩니다. 나는 나대로 죽을 맛인데 같이 살던 황제 형은 알바하던 술집에서 호주 애들에게 괴롭힘을 당하자 어느 날부터는 자신이 호주 비밀요원이라며 이상한 소리를 하기 시작하며 내 유학생활에 태클로 들어옵니다.


의료 보험도 없고 현금도 부족한 유학생들은 의사를 만나거나 증상을 진단받을 수 있는 기회가 없으니 그냥 의지로 모든 고통을 돌파해 내야 합니다. 강한 정신력 말고는 기댈 것도 없고 그 어떤 도움도 사치입니다.


파라마타, 2013


겨우 졸업을 하고 파라마타를 떠나던 날 후련함은 지금도 잊을 수가 없습니다. 내 다시는 여기에 돌아올 일이 없다고 다짐했지만 회사 일로 대학원을 다녀야 했고 조건이 맞는 곳을 찾다가 다시 파라마타에 돌아와 Master를 합니다. 그리고 과정 중간에 내가 원하던 요건을 맞추자마자 바로 중단하고 파라마타를 또 떠납니다.


내 다시는 여기 돌아오나 봐라.


그때는 내가 가난했기에 이런 결핍에 시달린다 생각했지만 이제는 그때 원하던 것을 모두 채웠다지만 결핍은 마음속에 그대로인 것은 다른 이유라는 것을 정신분석을 공부하면서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정신분석에 관심을 주는 연장에서 심리학이나 상담학을 알아보게 됩니다.


단순하게 몇 가지에만 집중해서 살지만 그 일상을 그대로 유지하려는 지금 내 까다로운 조건에 맞을 학교나 과정을 찾지 못해 거의 잊고 지내다 길에서 만난 인연에게 우연히 답을 듣게 됩니다. 그분이 다니는 학교는 스스로를 변화해서 일개 학생인 내가 원하는 것을 제공해주려 합니다.


이쯤 되니 파라마타는 내게 교육 도시라는 이미지를 넘어갑니다. 무신론자이며 운명 타령도 혐오하는 저에게도 각별한 감정이 피어오릅니다. 파라마타라는 내게 첫사랑 같은 아련함이지만 냉정한 사람이랑은 다르게 언제고 다시 돌아와도 또 웃으며 받아주는 여인 같습니다.


이제는 모르는 새로운 건물이 즐비하고 내가 아끼던 골목은 다 변했어도, 파라마타 길 곳곳에는 아직도 날 아는 돌멩이 하나쯤은 꼭 놓여있고, 오늘 처음 보는 이 백인들도 실은 20년 전에 보았던 그 사람이거나 그 사람이 아끼는 가족이라고 생각됩니다. 이런 행복감으로 또 글을 쓸 힘을 얻습니다.


지난 시간 파라마타는 군대에서 행군을 하며 보아야 했던 풍경처럼 고통을 동반한 오르가즘이었다면, 지금 파라마타는 내가 선택해서 걸어가는 산책처럼  끝없이 부드러운 키스입니다.




공부 이야기로 마무리하겠습니다. 이재갑 교수님께서도 지금 제 선택이 나쁘지 않은 것이라고 조언 주시네요.


"정신분석은 '적응증'이 있습니다. 지능이 있어야 하고 내성능력이 있어야 하고 등등. 아 돈도 꽤 있어야 하지요? 그러면 지능이 평균이거나 높은 지능이지만 내성능력이 없건, 바쁘거나, 다 있는데 돈이 없는 사람은 어떻게 할까요? (다른 조건은 충족되나) 적응문제만 있으면 CBT를, 다 있는데 언어 표현능력이 없으면 명상을, 어린아이는 행동수정이 도움이 됩니다."


계획한 것처럼 상담학 기초 과정을 마치고 최소한으로 자격을 갖추는 것이 첫 번째 목표이고 나아가 이곳에서도 Master를 끝내는 것이 최종 목적지입니다.


그럼 누굴 상당하려고? 


그건 딱히 고려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정신분석처럼 오랜 시간이 걸리거나 적응 조건을 만족시키지 못하는 사람이면 어떨까 생각합니다. 마치 20년 전에 드림 군같은 이가 있다면 어느 정도 제가 도움이 될까요? 적어도 파라마타에 사는 사람이라면 가능하겠습니다. 무료라도 제가 도움을 주게 된다면 20년 전 그 친구도 고마워할 것 같습니다.   




처음이란 거리를 지금 난 이 순간 걷고 있다.
-김태원, '풍경 (SCENERY)'



https://youtu.be/vGZJCw-0G1M?si=An252KWDVc11i3V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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