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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reamHunter Jun 27. 2024

출간한 후에

먼 목표

드디어 출간을 마쳤고요. 아래처럼 브런치 책방에도 입점하였습니다. 응원해 주신 작가 & 독자님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만일 당신이 사랑하면 고통받을 것이고, 사랑하지 않으면 아플 것이다.” (brunch.co.kr)


꼬꼬면도 개인 레서피에서 출발..

출간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단계는 아무래도 교정이었습니다. 작가라고 하지만 맞춤법이나 띄어쓰기도 잘 모르고 표준어가 아닌 비속어들이 정글 속 넝쿨처럼 얽혀있는, 발음나는 대로 써갈긴 글이다 보니 제 무의식은 어느 정도 반영 되었다해도 종이책으로, 더구나 대학 교제를 주로 다루는 출판사에서 발간하기에는, 제가 보아도 문제가 많았습니다.


이것은 머리로 이해하는 부분이고 제가 드림 회계사에게 감정 전이되어 욕하고 울고 섹스하는 모습들이 검열 아닌 검열로 잘려나가고 완곡하게 깎이는 모습을 보는 것은 마치 무의식에서 끌어올린 뻘뻘뛰는 욕망을 끓는 물에 익히고 다져서 의식이라는 요리로 만드는 일이라 전혀 유쾌하지 않았습니다.


이걸 다 빼면 이 글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출판하는 것이 맞나? 


하지만 개인 레서피가 아무리 맛있고 훌륭하다 한들 더 많은 고객에게 서빙되기 위해서는 대량 생산 과정을 거쳐야 하며 그 와중에 살릴 수 없는 특이성이 있고 포기해야 하는 맛도 있다는 것은 라면뿐 아니라 글도 마찬가지라는 것을 배웠습니다. 편집 부장님께서도 책은 브런치보다 재미있을 수 없다는 점을 누구보다 명확하게 말씀하셨고요.


오타 많고 근거 없는 펌 사진 따위로 마구 도배되어 가끔 읽는 분들이 눈살을 찡그릴 표현도 있지만 그런 날것이 주는 신선함은 브런치에서만 가능하며 대량 생산 공정을 마치고 저작권 확인을 거쳐 규격이 일정한 캔 속으로 들어가야 하는 출판 과정은 달랐습니다. 종이책 독자님들에게 그 날것을 드리지 못한다는 것을 받아들이고 다음에는 종이라는 감옥 안에서도 흥미를 더하고 나아가 그 한계를 뛰어 넘고 그 담장을 오히려 이용해서 재미를 주는 글을 쓰는 것으로 먼 목표도 잡아 봅니다.


이것은 비단 저 혼자 겪는 새로운 고민은 아닙니다. 유명했던 만화가 영상물로 바뀌면서 개판 아사리판 나는 과정이 흔하다는 것은 주변에서 자주 봅니다. 조롱하려는 것이 아니고 진심으로 안타깝기에 이렇게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제가 이 걱정을 하는 이유는 <날 사랑한> 시리즈나 <살인자> 시리즈를 영상으로 만들고 싶기 때문입니다. 글을 쓰면서 제가 상상했던 것을 독자님들께 더욱 생생하게 보여드리고 싶은 마음이 글을 쓸 때 큰 동력이 되기도 했고요.


브런치를 씀은 나를 위함이고, 출간한다는 것은 독자를 위함이다.
-이선경, 박영스토리


그렇다면 글을 시나리오로 바꾸는 일은 브런치를 종이책으로 변환하는 수준보다 수 십배 힘든 일이되겠습니다. 아니 아예 다시 써야 한다는 표현이 맞겠네요. 행여 제 글이 영상제작 제안을 받는다면 곧바로 더 큰 문제가 생기는 것입니다.  


일어나지도 않은 일을 미리 앞당겨 고민하고 괴로워하는 것이 주특기인 저로서는 큰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누가 머리에 칼대고 강요하지 않았어도 그 일을 어떻게 해야 할지 밥을 먹으면서도 세금 계산을 하면서도 마음이 무겁습니다. 그러다 제 페르소나인 문감독에게 부탁을 해보았습니다. 


문감독: 내년 부턴 영화 시나리오 공모전에 적극 글을 보내봐.

드림: 그런 곳은 아무래도 완성도가 있는 영화 시나리오를 찾지 않을까? 내 글은 사실 이도 저도 아니거덩. 소설도 아니고 수기도 아니고 그렇다고 시나리오는 더욱 아니고.

문감독: 그러니까 그런 양식 공부를 좀 하고 응모해야겠지.

드림: 또 공부... 내가 공부 싫어하는 거 몰라? 아니면 시나리오 변환은 자네가 해줘.

문감독: 아이고, 내 작품 쓸 시간도 없는데 그걸 어찌 하니, 네가 해야지! 양식 익히는 것은 금방이야. 결국 스토리가 중요하지. 너도 이미 글을 쓸 때 머릿속에 장면을 구상하고 쓰는 것 같으니 그걸 지문과 대사로 분리시키는 것만 하면 돼. 어렵지도 않아. 시나리오 보면서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는 단어가 보이면 내가 답은 해줄께. 영화기법도 뻔해서 몇 개만 익히면 금방 쓸꺼야.

드림: 아, 그래? 내가 좋아하는 영화는 장면을 대부분 기억하고 있어서 역으로 추론하면서 보면 큰 공부가 될 것 같네! 앞으로 이것이 내 공부 방향이되겠어.


이렇게 하여 시나리오 쓰기를 다음 목표로 삼았습니다. 내가 무슨 이문열도 아닌데 누가 대신 제 글을 시나리오로 바꿔준다는 것도 현실성이 없고요. 만약 그런 기회가 있다고 해도 표현이나 제가 원했던 장면이 시나리오에 그대로 반영될 수 없을 터이니 또 마찰이 생길 것입니다. 결국 이 일을 할 사람도 저뿐입니다. 인생에 누가 대신 해주는 것 별로 없습니다.


하지만 힘들거나 슬퍼할 일은 아닙니다. 제가 좋아해서 여러번 보았던 영화들, 내가 늘 그리워하고 사랑하며 작은 대사나 미세한 배우들 표정까지 기억하는 그 영화 시나리오를 찾아 보는 일은 언젠가 꿈꿨던 인생 과제입니다. 이준익 감독은 영화를 틀어놓고 대사 받아쓰기 하며 시나리오 쓰는 법을 독학으로 익혔다고 했는데 그것도 해보고 싶었지만 이렇게 시나리오를 보면서 그 장면을 반대로 복기하는 연습도 큰 공부가 될 것입니다.


우선 영화를 정하고 시나리오를 구해 책으로 만들고는 한 줄 한 줄 읽어 내려가는 동안 제 머릿속에 저장된 화면이랑 맞추어 봅니다. 책에 써진 대사는 내 기억속 각인된 배우 목소리로 재생되어 들리는 환상 극장이 만들어집니다.


계속 업데이트 중입니다.

그리고 시나리오랑 실제 영화 장면이 다른 부분도 비교하면서 왜 바뀌었을지 어떤 이유가 있는지 흔히 이야기하는 배우들 애드립이 독인지 약인지도 생각해 봅니다.


유학 시절 가끔 허공을 보며 따라 하던 배우들 연기랑 대사를 이렇게 시나리오로 보면서 추적해 가는 기쁨은 이루 말로 할 수 없이 새롭고 즐겁습니다. 


다만 학벌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시는 아버지에게는 죄송합니다. 이런 것도 공부랍시고 시간을 투자하는 제 인생은 아버지가 보시기에는 실패한 것이고 또 쓸데없는 짓거리나 하는 한심한 낭비이기 때문입니다. 


이 짓거리 끝에, 누가 학위를 주는 것도 아니요. 이걸 10년 한다고 서울대학에서 입학제의가 올리도 만무하지만 밤을 새워 시나리오를 읽습니다. 이 연습으로 앞으로 제 글이 조금 변할 것만 같습니다. 좋은 쪽으로요. 그리고 언젠가는 저도 시나리오를 쓸 수 있는 능력을 가지게 될지도 모른다는 예상은 대학 졸업장 보다도 기특하고 자랑스럽습니다.




다시, 브런치를 쓴다는 이야기로 돌아와 글을 마치겠습니다. 뭐가 되었던 저는 브런치 작가로 시작해서 브런치 작가로 끝이날 듯합니다. 브런치에 마구 써 갈기는 제 무의식 파편들이 조금씩 세련된 감을 느낍니다. 


이러다 나중에는 브런치에 신나서 쓴 글들이 제가 원하는 모든 글 형태랑 합일치가 되어서 마치 사도 바울이 득도하여 자기하고 싶은 모든 욕망대로 살아도 율법에도 어긋나지 않고, 주님이 가르치신 산상수훈 안에 늘 거하는 것처럼, 제 브런치는 존재 그대로 출판 가능하며 시나리오 형식으로도 브런치를 올리는 날이 오지 않을까 기대 해봅니다. 브런치에 글쓰는 것이 인생 목표라니 웃깁니다. 이것이 과연 삶에 의미있는 일인지도 모르겠지만 이렇게 살다가 여기까지 왔으니 계속 이렇게 가보겠습니다.


제 머릿속에 장면을 그대로 시나리오로 표현할 수 있는 그날을 기대해 봅니다. 


모두들 사랑하며

시드니에서





추신 1

저는 시드니에 있어서 아직 제 책을 받아 들지는 못하였습니다. 대신 감사했던 분들에게 출판사를 통해 보내드렸습니다. 박영스토리에게도 감사드리고 제 책을 들고 기뻐해주신 분들 사진으로 그 모습을 상상해보니 저도 마음이 따듯해집니다.


추신 2

이상 쎔이 친히 제 책에 서평을 주셨습니다. 예전에 영화 Goodwill Hunting을 리뷰한 글이 각자 브런치에 있는 것을 발견하고 서로 읽으며 기뻐했던 추억도 다시 새김질했습니다. 여러 가지로 감사했습니다. 아래 그 글을 첨부합니다. 

사랑이라는 착각 (brunch.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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