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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reamHunter Aug 03. 2023

전치 displacement - 공작왕 孔雀王

정신분석

공작왕 - 오기노 마코토, 週刊ヤングジャンプ, 1986



Glossary

전치 displacement = 본능 에너지가 한 가지 정신 내용에서 다른 곳, 가령 idea, image 등으로 옮겨가는 것으로 특정 사물에 일부분만 비슷해도 전체를 같은 것으로 치부하는 것. 가령 사랑했던 여인이 긴 생머리라는 것만으로 긴 머리를 한 여인만 보면 다른 사람인데도 불구하고 사랑을 느끼는; 논리도 규칙도 없어 보이는 행동. (참고: 이무석, 정신분석에로의 초대, 2006)







공작왕 孔雀王

내 학창 시절은 온통 일본 만화로 도배되었다. 그 당시 한국 만화는 야구 아니면 일상 시답지 않은 이야기 정도만 할 수 있는 때였으니, 주제나 소재가 가히 기발하다 못해 기괴하기까지 한 일본 만화를 보는 것은 엄청난 쾌감이고 일탈이며 원 없이 일본 만화를 보는 것이 내 또래에겐 큰 소원이었다.


그러니 상대가 어떤 일본 만화를 즐기는가를 아는 것은 상대 학생을 가늠하는 나름에 척도였다. 나는 크게 세 가지로 분류했다. 드래곤볼파, 공작왕파 그리고 둘 다 보는 놈. 나는 드래곤볼 파였다. 그 당시 가장 유명했고 소년들 판타지를 모두 담아내는 엄청난 서사를 지닌 만화였다.


물론 이때는 일본 문화가 금지된 시대라 대부분 해적판인 데다, 공작왕은 그런 시류를 늦게 타고 온 후발 주자였고, 내용도 어린 학생들이 보기에는 너무 기괴하고 심오하여 나는 별로 흥미가 생기지 않았다. 하지만 공작왕파 취향은 존중했고 그 독한 취향을 가진 그들이 부럽기도 했다. 마치 지금 라깡을 공부하는 사람을 보는 내 느낌이랑 비슷하다. 마지막으로 만화라면, 지조도 없이, 닥치는 대로 보는 아무런 취향이라곤 없어 보이는 놈들은 경멸했다. 분석 대상으로 분류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내가 아는 공작왕 세계관은 이러하다. 그곳엔 지옥이랑 현세가 있어, 지옥에는 온갖 악귀가 살고 있으나 공작왕이라는 엄청난 존재가 그 놈들을 지옥으로 몰아넣어 놓고 막아서 우리 인류는 현세에서 잘 살고 있다. 하지만 공작왕이 이제는 힘을 다해 지옥문이 뚫리면서 악귀들이 현세에 나오기 시작했고 그런 공작이 남긴 후손인 공작왕 2세 '공작'이 현세에서 퇴마사 역할을 하며 악귀들을 쫓고 잡아 죽여 시달리는 중생을 구한다는 내용이다.



네 가지 꿈해석 기법

이무석  선생님 글을 계속 읽고 있다. 프로이트 선생님 저작뿐 아니라 다른 이론도 소개하고 있으나 큰 줄기에서 프로이트 저작을 따르고 있다. 물론 앞부분만 읽고 있어서 더 지켜봐야 한다.


유명한 프로이트 ‘꿈해석’ (1900) 뿐 아니라 번역이 안 된 것으로 보이는 ‘꿈 해석 이론과 실제’ (1923) 등도 모두 요약해 주시는데 그중 꿈 해석을 하는 기법 네 가지가 나온다. 간략하면:


1 꿈 해석은 말한 순서대로 연상시키고 해석한다;

2 어떤 특별한 부분을 선택해서 작업을 시작한다. 가령 가장 인상에 남는 부분이나 유난히 선명한 부분에 대해서 연상을 시킨다;

3 전날 사건이랑 연결 고리를 찾는다. 이렇게 하면 꿈 내용 자체는 무시하게 되는데, 발현몽을 중시하는 현대 정신분석 기법이랑은 차이가 있다; and

4 분석에 익숙하거나 기법을 숙지한 내담자경우, 어디서 부터 연상을 시작할지 환자에게 맡긴다.

(이무석, 정신분석에로의 초대, 2006, p.92)


‘새 정신분석 입문’(1933)에서도 이 내용이 있다고 한 것으로 보아 '꿈해석' (1900)뿐 아니라 그 뒤에 논문들도 다 읽고 직접 비교를 하신 것으로 보인다. 프로이트 저작 난이도나 분량을 보면 엄청난 일이 아닐 수 없다.



여섯 가지 무의식 특성

그 다음으로 주목하는 것이 무의식 기능 특징 여섯 가지이다. 무의식은 1차Primary process 과정만 있다. 즉 논리나 윤리 따위는 없는 순수 욕망으로 가히 악마 그 자체이다. 하지만 우리 의식은 2차 과정 secondary process으로 합리/논리/윤리 등이 존재하는 장소이며 우리가 사는 현실 세계에 꼭 필요한 것이니 현실 그 자체라고 본다. 무의식이라는 욕망 덩어리는 다음 여섯 가지 특징을 가진다.


1 - No 시간: 무의식 과정은 시간 순서가 없다. 시간 개념 자체가 2차 사고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과거 경험으로 인한 상처가 지금 어떤 특정 사건에 전치되어 불쑥 튀어나와 마치 지금 일인 것처럼 느끼게 한다;

2 – No 실현: 욕망을 느끼게 되면 그것이 현실에서 실현 가능한지 따위는 따지지 않는다;

3 – No 현실: 내가 욕망하는 것이 실제로 경험한 것인지 상상에 의한 것인지 따위 구분을 하지 않는다;

4 -  No 모순: 모순된 감정 따위가 아무렇지도 않게 꿈에서는 나온다;

5 – No 부정: 특정 개념에 반대하거나 부정하는 판단 역시 2차 기능으로 성장하면서 생기는 것이다;

6 – No 언어: 꿈은 이미지로만 되어 있다. 언어라는 상징체계 역시 2차 기능으로 성장하면서 생긴다. 


결국 꿈 해석이란 의식에서 이해하기 힘든 이미지로만 된 편지를 우리 언어로 해석하는 작업이다. 가히 상형문자를 해독하는 작업이랑 비슷하겠다. (이무석, 정신분석에로의 초대, 2006, p.103)


문제는 이런 무의식 속 악마 같은 1차 욕구들이 전치나 파생물로 변화해서 공작이 지키는 무의식 관문을 몰래 빠져 나와, 우리 현실 사회에 올라 옴으로서 혼란을 일으킨다. 그러니 우리는 욕망에만 따르는 이상한 행동을 하는 사람(종종 자신을 포함)을 이해하지 못할 뿐더러, 미쳤다던가 악마가 씌웠다고 규정하여 버리기도 한다.


하지만 정신분석을 공부하는 우리는 안다. 그 불쌍한 자는 악마가 씌워서 퇴마사를 필요로 하는 것도 아니요 그냥 미쳐서 우연히 저러고 있는 것도 아니고 단지 지난 시절 어떤 사건에 의한, 다분히 인과론에 따라 지금 저런 행동을 하고 있는 것이라는 것을.



다시 공작왕

공작은 세상에서 알아주지 않는 퇴마사라는 직업을 가진 남자인데, 악귀랑 싸워야 하는 지독하게도 힘든 일로 가난에 시달리며 사명감 하나로 살고 있다. (퇴마 중에 다쳐도 의료보험 적용 안 된다).


하지만 그 세계관 안에 있는 이들은 안다. 공작이 얼마나 훌륭한 사람이고, 어떤 대단한 능력을 지니고 있으며, 그만이 이 세계를 구원할 유일한 사람이라는 것을.


만화 공작왕이 전에 없는 스토리로 세상에 나왔다고는 하지만 많은 이들이 그 기괴한 세계관에 바로 수긍할 수 있던 배경은, 그 이야기에 우리 무의식 구조를 그대로 '전치'해 볼 수 있기 때문이다.  


현세 = 의식

지옥 = 무의식

악귀들 = 히스테리, 신경증상

폄범한 인간들 = 내담자/환자들

공작왕 = 정신분석가


공작왕 파는 아니지만, 지금 내 곁에 있는 몇몇 공작들(분석가)에게 정신분석 공부를 받고 있기에 이 글을 통해 고맙다고 이야기하고 싶다. 정신분석은 아직 심리상담처럼 의료 행위로 분류되지 않아서 정부 지원이나 의료보험 혜택을 받을 수 없으니 분석가들이 가는 거친 길은 가히 공작이랑 비유할만 하겠다.


공작같은 사명감으로, 열악한 환경에서도, 고통받는 이들 마음속 지옥으로 함께 손잡고 걸어 들어가 그 지독한 악귀들이랑 싸우고 있을 이 시대 모든 분석가들에게 경의를 표합니다.



겨울이 가는 시드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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