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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나물 봄동이 Sep 19. 2016

어떤 통화 1

밤 11시 43분, 다른 여자와의 결혼을 앞둔 전남친에게

이 매거진 속 이야기들은 제가 혹은 누군가 겪은 일에서 출발합니다. 아, 물론 상상 속에서의 일도 포함합니다. 그렇기에 소설이 아닌 것처럼 보일 때조차도 저는 소설이라고 부를 거예요. 뭐, 그냥 그렇다고요.     




끊지 말고 들어. 끝까지 다 들으면 다시는 전화 안 할 거야. 근데 지금 그냥 끊어버리면 계속 전화하고 너네 회사도 찾아가고 너랑 결혼할 그 여자한테도 전화해서 만날 거야. 그러니까 앞으로 편히 지내고 싶으면 들어. 길게 말할 것도 아니니까 끝까지 다 들어.    


야, 넌 내가 착해서 좋다고 했지? 네가 오라면 오고 가라면 가고. 네가 이게 좋다 하면 이거, 저게 좋다 하면 저거. 그래, 네가 좋아서 그랬어. 널 좋아하니까 네가 원하는 건 다 들어주고 싶어서 그랬어. 근데 내가 널 좋아한다고 해서 네가 날 함부로 대해도 되는 건 아니야.      


너랑 헤어져서 정말 잘됐다고 생각해. 네가 나한테 저질렀던 그 치사한 양아치 짓들, 내게도 일정 부분 책임이 있다는 거 알아. 모르면서 속았고 알면서도 속았지, 바보같이. 인정해. 그치만 그렇다고 해서 네 양아치 짓을 정당화하는 꼴은 너무 우습다. 아냐, 됐어. 거기에 대해선 더 언급하고 싶지도 않아. 너한테 사과 듣고 싶은 것도 아니야. 미안하단 말 한 마디에 모든 게 없었던 일이 되는 것도 아니니까.


그냥 너무 분해서 전화했어. 네가 아직도 내가 널 못 잊는다느니 어쩌느니 개소리를 한다는 얘기에 어이가 없어서. 개소리? 이 정도에 뭘 놀라고 그래. 내가 술도 못 마시고 담배도 안 펴서 좋다고 네가 말했을 때, 여자가 어쩌고저쩌고 하는 식의 듣기 싫은 소리 할 때 가만히 있었던 게 분해. 제일 내가 못 견디겠는 게 뭔지 알아? 우리 할머니 만나고 오던 날, 네가 할머니들에게선 특유의 냄새가 난다고 했을 때, 늙음의 냄새라며 넌 할머니가 우리 강아지 하면서 안으려 하면 어렸을 때부터 피했다고 했을 때, 농담처럼 웃으며 말했을 때 같이 웃었던 게 우리 할머니에게 너무 미안해. 


넌 욕하는 여자가 질색이라고 했지? 씨발. 좆같애. 너 같은 새끼 때문에 내가 왜 그렇게 멍청하게 행동했는지. 뭐 미쳤냐고? 술 마셨냐고? 아니 완전 제정신이야. 미쳐야지, 술 취해야지 진심을 말할 수 있는 건 너 같은 찌질이나 그렇지.    


네가 어떻게 살든 관심 없어. 그러니까 너도 앞으로 네 입으로 내 이름 내 얘기 말하고 다니지 마. 한 번만 더 헛소리하고 다니는 거 내 귀에 들어오면 그땐 정말 가만 안 있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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