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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나물 봄동이 Sep 12. 2016

너의 전 여자친구가 나를 찾아왔다

두 사람이 같은 감정을 느끼고는 서로 다른 결론을 내렸던 어떤 순간

이 매거진 속 이야기들은 제가 혹은 누군가 겪은 일에서 출발합니다. 아, 물론 상상 속에서의 일도 포함합니다. 그렇기에 소설이 아닌 것처럼 보일 때조차도 저는 소설이라고 부를 거예요. 뭐, 그냥 그렇다고요.     




“저 누군지 아시죠?”

너의 여자친구가 아니 너의 여자친구였던 애가 나를 찾아왔다.


네가 내게 썼다는 편지들, 부치지 못하고 서랍에 두었다는 편지들, 일부러 들켜버린 것 같다는 그 편지들을 전해주며 그 애는 말했다.


“이렇게 찾아오는 거 굉장히 자존심 상하는 일이어서 안 오려고 했지만, 그래도 끝맺음은 해야 될 것 같아서요. 진욱이에겐 편지 제가 다 버렸다고 했어요. 진욱이도 별로 화내지 않았고요. 편지만 버리면 진욱이 마음도 정리될 거라 생각했었나 봐요, 바보같이. 하지만 이젠 제가 안 되겠어요.” 


그러면서 그 애는 몇 달 전, 너와의 일을 얘기해주었다.     




-뭐가 그렇게 좋아서 웃어?

-그냥.

-무슨 즐거운 일 있어?

-일은 뭐.

-뭐야, 너. 계속 웃잖아. 진짜 무슨 일인데 그래?

-무슨 일이라기보다는…… 나 여기 점 있다. 여기 왼쪽 귀 앞에. 보여?

-응. 점이 있었네. 완전 까맣다.

-나 여기 점 있는 거 몰랐는데. 지금까지 거울 본 게 수천수만 번은 되었을 텐데도 난 몰랐거든. 너도 몰랐지?

-응, 몰랐어. 근데 그게 뭐?

-그냥, 난 왼쪽 귀 앞에 점 있다고.

-왼쪽 귀 앞에 점 있으면, 뭐 좋대?

-그런 건 아닌데. 난 몰랐는데. 근데 알고 있었어.

-누가?    


“묻고는 멈칫 했어요. 괜히 물었다고 생각했죠. 진욱이 역시 잠시 저를 물끄러미 보았어요. 진짜 듣고 싶어? 하는 듯한. 저는 말을 돌렸어요. 속으로는 ‘그 선생님이 그랬어? 그 선생님이 네 왼쪽 귀 앞에 점 있는 거 알고 있었던 게 그게 그렇게 기분 좋은 일이야?’ 화내고 싶은 마음이었지만 그러면 정말 우리 사이가 끝이 될까 봐 전 무서웠어요. 정말 저란 애 바보 같죠. 결국 이렇게 끝낼 거였으면서. 제가 헤어지자고 하니까 진욱이가 그 점 얘길 하더라구요.”     


-선생님이 내 점 있는 걸 얘기하는데 왜 그렇게 기분이 좋았는지 모르겠어. 느닷없지만 그때 나, 선생님이랑 평생 함께이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 미안해. 헤어지자고 먼저 말한 건 너지만 네가 안 했더라면 내가 했을 말이야. 그러니 넌 나한테 하나도 미안해하지 마.    




기억한다. 오랜만에 너를 만났을 때였다. 내내 마음속에 죽음이란 단어만이 떠다닐 때였는데도 너의 얼굴을 보니 또 좋았다. 어, 너 여기 점이 있었네. 네? 여기, 여기 말이야. 왼쪽 귀 바로 앞에 여기. 되게 진하다. 내가 오른손 검지로 찍으며 말했을 때, 네가 환하게 웃었을 때, 지금의 제스처가 너무 연인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내가 이내 손으로 플라스틱컵을 감쌌을 때, 컵에 묻은 물기에 손이 끈적거렸던 그때, 너는 그 순간 나랑 평생 함께이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구나. 나는 그 순간 너랑 다시는 만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는데.




“진욱이한테, 그러시면 안 되는 거예요. 진욱이가 얼마나 좋은 애인지 누구보다 더 잘 아시잖아요. 그깟 나이 차이가 별건가요. 진욱이 마음 받아주세요. 저 이렇게 오는 거, 쉽지 않았어요. 괜히 저 때문에 두 사람이…… 사실 지난번에 뵈었을 때, 왜 우리 사이에 끼어드나 그런 생각을 했었어요. 근데 이제 알겠어요. ……끼어든 건 저란 걸요.”


그 애는 희미하게 미소 지었다. 옅은 웃음이었지만 약간의 생기가 있는 그런 웃음을 지을 수 있음이 나는 부러웠다. 나는 그 애에게 별다른 대꾸를 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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