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을 살아 있음의 기념일로 삼는 삶
제가 이 매거진에서 어떤 얘기를 하고 있냐고요? 엄마와 저의 삶이요, 시시한 삶. 우리의 시시한 삶에 뭐가 있냐고요? 사랑이요, 시시한 사랑들이죠. 그리고 열망, 시시한 열망에 대한 얘기. 저는 알아요, 시시한 사람들이 참 많다는 사실을. 그래서 왜 이 매거진을 별로 읽지 않는지 이해가 되지 않아요. (장 자끄 상뻬의 <풀리지 않는 몇 개의 신비> 속 구절을 제 마음에 맞게 바꿔 써보았습니다.)
[엄마의 시]
더 이상
달력에 동그라미를 치지 마라
앞으로 어떤 기념일도 없나니…
있다면 굶주린 늑대가 호시탐탐 노리는
삶의 빈터를 맨손으로
지켜낼 강인한 의지력뿐
민들레의 강인한 흡인력으로
쭈욱 빨아들여야 할
봄햇살을 오드득 깨물어볼 뿐
아무런 감성을 수놓을 더 이상의 기념일은 없나니…
있다면 일초 일초가 쓰라림으로
푸욱 고아내린
뼈다귓국을 팔월 염천에도
후루룩 들이마시며
땀을 뻘뻘 흘려야 한다는 것을
시래기 한 건지 젓가락에 집혀지면
다행이란
돼지고기 한 점 씹으며 힘을 내야 한다는 것을.
더 이상 달력에 동그라미는 치지 마라
일 년 삼백육십오 일을
살아 있음의 황홀한 기념일로 삼아
푸르른 바닷길을 열듯
하얀 달력을 제대로 펄럭거리게 바람벽에 걸어두라.
즉흥시… 다듬어지지 않은 채로 2003년 8월 7일 저녁에 씀
[딸의 이야기]
2003년이라니, 벌써 십여 년도 훌쩍 지났군. 그땐 내가 고등학생 때였다.
난 농담 반 진담 반으로 고등학교 1, 2학년 때는 ‘내 인생의 암울기’였다고 말하고는 한다. 나빠진 가정형편, 카드회사의 독촉 전화, 부모님의 불화…… 그 와중에도 엄마는 웃으며 아무렇지 않은 듯 아무 일이 없다는 듯 행동했었다. 그런 엄마가 나는 더 미웠다. 지금 상황이 어떤 상황인지 뻔히 아는데, 엄마는 어떻게 저런 얼굴일 수 있는 거지. 나는 누구를 무엇을 향한 건지 모를 분노와 서러움을 감추려 이를 악물고 있는데.
“엄마, 내가 알아서 할게. 신경 쓰지 마.” 엄마를 미워하고 싶지 않아서, 엄마에게 화를 내는 딸이 되고 싶지 않아서 저런 말들만 내뱉었다. 실제로도 난 알아서 했다.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말썽 피우는 일 없이 착실했다.
장학금 받으면서 고등학교를 다녔고, 그러면서도 갈빗집 아르바이트를 해서 가정형편에 보탰다. 아르바이트해서 번 돈으로 동생의 공납금을 내기도 하는, 기특한 딸이었다.
기특한 딸의 다른 이름은 모진 딸, 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 건 좀더 시간이 흐른 뒤다. 그러니까 내가 엄마가 되었을 때를 그려보는데, 나는 나 같은 딸은 낳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드는 거다. 아이는 아이답게, 말썽도 피우고, 가끔 가출해도 좋으니 조금은 제멋대로인 아이가 내 아이였음 싶었다
.
‘나같이 어른스러운 딸은 싫다. 그런 딸을 보면 너무 마음이 아플 것 같다.’
그 생각과 함께 내가 엄마에게서 엄마 노릇을 뺏은 모진 딸이기도 했구나 싶었다.
이 시를 보면서 새삼 생각한다.
그 시절, 엄마도 아무렇지 않았던 게 아니었구나.
아무렇지 않은 척이라도 해야 버틸 수 있었던 거구나.
엄마마저 약한 모습 보면 정말 무너질까 봐 애써 웃었던 거구나.
엄마니까, 네 아이의 엄마니까, 겨우 힘을 냈던 거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