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에게도 딸에게도... 우리에겐 혁명이 필요하다
제가 이 매거진에서 어떤 얘기를 하고 있냐고요? 엄마와 저의 삶이요, 시시한 삶. 우리의 시시한 삶에 뭐가 있냐고요? 사랑이요, 시시한 사랑들이죠. 그리고 열망, 시시한 열망에 대한 얘기. 저는 알아요, 시시한 사람들이 참 많다는 사실을. 그래서 왜 이 매거진을 별로 읽지 않는지 이해가 되지 않아요. (장 자끄 상뻬의 <풀리지 않는 몇 개의 신비> 속 구절을 제 마음에 맞게 바꿔 써보았습니다.)
[엄마의 시]
모닝콜이 울기 전
희미한 빛 한 줄기가
슬그머니 나의 창을 뚫고 들어왔나 보다.
낯익은 자리에 모든 것이 다 있는데
TV도 책꽂이도 옷장도
딸애가 그린 풍경화만이
액자 안에서 울고 있다.
한 줄기 두 줄기
마침내 많은 빛의 무리들이 떼를 지어
방 안에 들이닥치고
어둠의 뭉텅이를
성큼성큼 잘라 먹는데
곤히 잠든 내 얼굴을 애무하다가
빛이 헹구어 낸
어둠의 조각들이 여기저기 굴러다닌다.
히히히 징그러운 웃음을 뿜어대는 어두움이 참 밉다.
빛은 아침마다 분주하게 어두움을 몰아내보지만
빛의 기다란 손가락엔
어찌할 수 없는 슬픔 같은 고드름이 열리고.
모닝콜이 울기 전
액자에 갇힌 빛의 노래가
초록의 나뭇잎이
하얀 실뿌리의 아픔을 알고 있다는 듯 고개를 주억거린다.
당신의 혁명이 필요해.
[딸의 이야기]
두서없는 이 시에서 나는 엄마의 아침을 읽는다.
아니 아침의 빛을 맞이하는, 엄마의 어두운 마음을 읽는다.
당신의 혁명이 필요해.
엄마의 혁명은 엄마가 아니라 ‘김경혜’란 이름으로 시를 쓰는 데에서 시작되었던 게 아닐까?
그리고 나의 혁명은 이렇게 엄마의 시를 읽으며 나의 이야기를 내보이는 데서 시작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