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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나물 봄동이 Sep 27. 2016

주말만 기다리는 삶이 싫었다

이제는 시간이 천천히 흘렀으면 싶다

이 매거진 속 이야기들은 제가 혹은 누군가 겪은 일에서 출발합니다. 아, 물론 상상 속에서의 일도 포함합니다. 그렇기에 소설이 아닌 것처럼 보일 때조차도 저는 소설이라고 부를 거예요. 뭐, 그냥 그렇다고요. 



   

-회사 관뒀다며? 왜?


-매일 주말만 기다리는 삶이 너무 슬퍼져서.


-뭐?


-그렇잖아, 내 나이 이제 겨우 스물여덟인데. 아직 어린데. 서른도 안 된 애가 매일 시간이 빨리 갔으면, 시간이 빨리빨리 흘러서 얼른 주말이 되었으면, 하는 거. 뭔가 슬픈 일 아니야? 그렇게 기다린 주말은 또 금방 가버려. 그럼 난 또 빨리 주말 되길 기다렸다가 또 금방 주말은 가버리고... 이런 삶을 살려고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난 건가? 설마 그건 아닐 것 같은 거지. 그래서 그냥 퇴.사.


-그래서. 백수 되니까 조아? 이제 매일이 주말이야?


-처음엔 좋았지. 평일 오전에 느지막이 일어나 사람들 별로 없어서 앉아서 갈 수 있는 지하철을 타고 영화를 보러 가. 영화를 보고 나와 아침 겸 점심을 먹고 도서관에 가. 책을 빌려서 공원을 산책하다 벤치에 앉아 읽어. 하루를 이렇게 알차게 보내고 있는데도 아직 해가 떠 있어. 해 지는 하늘 보면서 집으로 오는데... 아 좋다... 그냥 나도 모르게 입에서 나오더라. 근데. 그랬는데.


-그랬는데?


-보름이더라.


-응?


-보름 지나니까 주말은 티브이에 재밌는 것도 안 하고 밖에 나가도 사람들만 많고... 프리랜서로 일하기 시작하니까 이건 뭐... 


-왜. 프리랜서로 일하면 그래도 더 자유롭지 않아?


-전혀. 매일이 평일이야. 그러니까 주말도 평일화가 된 거지. 금요일 저녁에 넘겨주고 월요일 오전까지 꼭 부탁한대. 하아...    


수화기 너머 친구의 웃음소리가 들렸다. 야 난 장난 아니라니까 그냥 다시 회사 알아봐야겠어 주말은 진짜 직장인들한테 고마워해야 돼 직장인들이니까 주말 기다려주고 좋아해주지 백수들만 가득했으면 주말이 이렇게까지 사랑받을 수 있었겠냐고... 이어지는 나의 헛소리에 친구의 웃음소리가 겹쳤다.    




그 통화가 벌써 10년 전이라니. 그 후 몇 개월 지나 나는 다시 회사원이 되었고 몇 년 후 결혼을 하며 회사를 옮겼고 그러다 임신을 했고 결국 퇴사를 했다. 첫 애를 어린이집에 보내면서 다시 직장생활을 시작할까 둘째를 낳을까 할 때 둘째가 생겼고 결국 아직 육아에 몰두하는 시간을 보내고 있다. 


주말을 기다리며 보냈던 회사생활이 쉬웠다는 걸 이제는 안다. 엄마는 두 아이가 잠들어야 퇴근할 수 있다. 주말이라고 더 쉬운 것도 아니다.  주말을, 주말만 기다리며 시간 빨리 가는 걸 바라는 게 싫어 회사를 관두었던 스물여덟 살의 내가 새삼스럽다.


평일이든 주말이든 지치는 건 마찬가지인 서른여덟 살의 나는 그래도 시간이 더 천천히 흘렀음 싶다. 아이가 금방금방 크는 게 아쉽고 부모님과 시부모님이 더 힘없어지는 것도 쓸쓸하고 나와 남편이 늙어가는 것도 슬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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