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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나물 봄동이 Sep 11. 2016

아버지, 들리시나요?

이제 엄마에겐 아버지가 없구나...

제가 이 매거진에서 어떤 얘기를 하고 있냐고요? 엄마와 저의 삶이요, 시시한 삶. 우리의 시시한 삶에 뭐가 있냐고요? 사랑이요, 시시한 사랑들이죠. 그리고 열망, 시시한 열망에 대한 얘기. 저는 알아요, 시시한 사람들이 참 많다는 사실을. 그래서 왜 이 매거진을 별로 읽지 않는지 이해가 되지 않아요. (장 자끄 상뻬의 <풀리지 않는 몇 개의 신비> 속 구절을 제 마음에 맞게 바꿔 써보았습니다.)    




[엄마의 시]


   

아버지, 들리시나요?  


      

아버지

매미껍질 같은 이름 불 속에 벗어 던지고  


경상북도 금릉군 조마면 신암리 뒷산 잔디밭에 머무시는지요?

강원도 영월군 수주면 법흥리 적멸보궁 흰 구름에 계시옵니까?

오빠가 사준 그 보청기 아직도 쌩쌩하나요?

두 달밖에 쓰질 않아 새것이나 다름없었던,

아버지의 두 번째 귀    


사흘에 피죽 한 그릇 못 먹었냐며

핀잔주시던 제 목소리도 잘 들리시나요?       




                                       

                      

[딸의 이야기]        


외할아버지께서 돌아가신 것은 내가 열두 살 때였다. 또래보다 조숙했다고는 하지만, 누군가의 죽음에 대해 깊이 있게 생각하지는 못했다.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사실에 마음 아파 눈물 흘리게 된 것은 그로부터 몇 년이 지났을 때였다. 


무언가를 찾느라고 안방의 책장을 뒤적이다가 엄마의 일기장을 보게 되었다. 엄마가 일기를 쓴다는 것은 짐작하고 있었지만 몰래 보고 싶다고 생각한 적은 없었다. 엄마가 딸들의 삶에 관심 있는 만큼 딸들이 엄마의 삶에 관심 있는 건 아니니까. 


당시 양계장을 했을 때라 관련한 이야기를 비롯하여 우리들이 싸워서 속상한 이야기, 술 마신 아빠 때문에 섭섭한 얘기 들이 있는 가운데, ‘아버지’라는 세 글자가 눈에 들어왔다. 정확히 어떤 단어와 조사들로 어떤 문장이 적혀 있었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그 부분을 읽다가 눈물이 나서 나도 모르게 일기장을 바로 덮어버렸던 것만 생각난다. 


이제 내게는 아버지가 없다, 차마 ‘죽음’이란 표현은 절대 쓰고 싶지 않다…… 이런 말들이 적혀 있었다.

 

아, 그래. 외할아버지는 엄마의 아버지였지. 엄마에겐 이제 이 세상에 아빠가 없는 거구나. 난 아빠가 있는데. 술에 취한 아빠가 말하듯 ‘미우나 고우나 아빠’인 존재가 내게는 있는데. 엄마에게는 없구나. 


엄마에게 미안했다. 엄마에게 아버지를 잃은 상실감이 얼마나 어마어마했을지 전혀 짐작도 하지 못했던 것이 미안했다.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셨어’라는 말을 아무렇지 않게 친구들에게 했던 내가 원망스러웠다. 외할아버지의 떠남을 슬퍼하지 않은 것이, 엄마에게, 너무너무 미안해서 자꾸만 눈물이 났다.


엄마의 일기 속 문장들은 잊었지만 지금도 그 순간만 떠올리면 코끝이 시큰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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