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 소풍으로 만나다
한강.
너무나 익숙한 공간이었다.
나에게는.
여의도로 갈 때마다 스쳐 지나던 다리 아래의 반짝이는
강물,
그저 무심히 바라볼 뿐,
크게 의미를 두지 않았다.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어나는 봄에도,
여름이면 수영장이 열리고,
겨울에는 눈썰매장이 들어서도,
나에게 한강, 특히 한강공원은
그저 사람들이 붐비는 곳일 뿐,
굳이 찾아갈 이유가 없는 곳이었다.
그런 한강에서,
나는 뜻밖의 낯선 경험을 만났다.
참, 한번이 어렵다.
모임이라는 것이.
사람들 사이에 있는 게 어색하고 부담스러우면서도,
그 떠들썩한 분위기에 어느새 휩쓸리고 만다.
혼자 있으면 느끼지 못하는 것들을 경험하고,
갓 부화한 병아리처럼
세상을 배우는 기분이 들었다.
내가 만나보지 못한 사람들,
겪어보지 못한 세상을 부딪히며 나아가는 일이,
생각보다 꽤 흥미로웠다.
나이만 먹었지,
사회생활을 오래 해보지 않아
어딘가 결여된 듯한 나에게,
이 모임은 새로운 세상이 되었다.
그러다 알게 되었다.
익숙한 한강에서의,
익숙하지 않은 소풍.
한강으로 소풍이라니?
세상에.
한 번도 상상해 본 적이 없었다.
물론, 가끔 한강에 앉아
흐르는 강물을 바라보며 감상에 젖어본 적은 있다.
하지만 이렇게,
본격적인 소풍이라니.
소풍 준비도 참 그럴듯했다.
장소를 정하고,
무엇을 먹을지 고민하고,
돗자리를 챙기고.
그 과정마저 얼마나 설레던지.
내 나이에 이런 경험을 하게 될 줄이야.
내 소임은 친구들과 함께 홍대에서
떡볶이와 튀김, 순대를 잔뜩 챙겨가는 것이었다.
바리바리 들고,
버스를 타고,
한강으로 향하는 길이
쉽지만은 않았지만,
함께 한다는 사실이 마냥 즐거웠다.
수다를 나누며 한강에 도착하니
벌써 많은 사람들이 돗자리를 펴고 있었다.
자리를 어디로 할지 고민하는 동안,
한강 곳곳에서 소풍을 즐기는 사람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아, 나만 여태 이런 걸 안 하고 살았나 보다.
돗자리를 펴고,
좁지만 다닥다닥 붙어 앉았다.
사람들이 가져온 음식들을 펼치고,
배달을 시키고,
(한강 배달이라니! 이 촌뜨기를 어쩌지?)
집에서 정성껏 준비한 과일을 꺼내며,
우리는 마냥 깔깔거렸다.
그 아무것도 아닌 과정들이,
어쩌면 이렇게 재미있을까.
왁자지껄한 분위기에 취해,
나도 모르게 들뜨고 있었다.
배부르게 먹고,
수다 삼매경에 빠져 있다 보니,
어느덧 해가 뉘엿뉘엿 저물었다.
그 광경을 보니,
문득 마음이 센티해졌다.
사람들 틈에서 슬쩍 빠져나와,
조용히 걸으며
어둑해진 한강을 바라보았다.
불빛을 머금은 물결이 살짝 흔들리며
더욱 찬란하게 빛나고 있었다.
밤의 한강.
얼마나 오랜만인가.
나는,
참 많은 것을 모르고 살아왔구나.
이렇게 가까운 곳에서,
이토록 즐길 낭만을,
나는 몰랐구나.
괜한 감상에 젖어든다.
나의 세상이 넓어질수록,
놓쳐온 것들에 대한 미련이 자꾸만 밀려든다.
좀 더 일찍 알았다면 좋았을 것을.
이런 후회의 말들이 툭툭 튀어나올 때면,
그 감정은 어느새 슬픔이 되어 흘러넘쳤다.
하지만,
지나간 것은 어쩔 수 없다.
이제야 알게 된 것들에 감사하자.
조금 더 많은 세상을 보자.
내 세상이 좁아지지 않게,
조금은 더 넓은 곳을 바라볼 수 있게.
후회에 사로잡혀
또 다른 기회를 놓치지 않도록.
그날 한강을 바라보던 내 모습이,
마치 제3자의 시선으로 내 안에 담겨 있다.
시끌벅적한 그곳에서,
모든 것이 잠시 멈춘 듯했던 시간.
익숙하지만 낯설었던,
즐거웠던 소풍의 밤.
나는,
또 하나의 세상을 배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