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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간휴식] 나의 즐겁지 않은 취미에 대한 고찰

마라톤, 나는 왜 하고 있지?

by 이설

여행 이야기를 주로 쓰던 나에게, 문득 옆길로 새고 싶은 충동이 들었다.

왜?

얼마 전 막 마라톤을 하고 와서의 여운이랄까?


취미라는 건 기본적으로 즐거워야 하는데, 그런 기준에서 보자면 마라톤은 결코 ‘취미’라고 부를 수 없다.

"취미가 뭐예요?"라는 질문을 받으면
"마라톤이요!"
하고 당당히 대답할 자신은... 1도 없다.


그런데 그렇다고 살짝 빼놓기는 아쉽다.

"너 요즘 취미로 하는 거 있어?"

라고 물으면

"나 마라톤 한다!"

라고 말은 하니까.


즐겁지 않으면서도 포기할 수 없는 요상한 나의 취미, 마라톤.

나는 왜 이 마라톤을 하고 있을까?

안 하면 그만인데, 막상 안 하고 싶지는 않은, 그런데 해보면 전혀 즐겁지 않은 그 마라톤을 말이다.



먼저 고백을 하자면,

나는 달리기를 좋아하지 않는다.

혹시라도 나의 글을 읽으신 분이라면 이 비슷한 이야기를 본 적이 있다는 기시감을 느끼실는지도 모르겠다.

그 생각에 혼자 씩 미소를 지어보는 중이다.


등산처럼, 나는 달리기도 좋아하지 않는다.

그런 내가 뛰게 된 건 어쩌면 참 희한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냥, 문득

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빠른 걸음과 뛴다는 건 참 큰 차이가 있다.

뛰어보지 않았던 내가 뛴다는 게 그렇게 어렵더라는.

그래서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을 하던 차에 마라톤대회가 있다며 신청하자는 이야기가 나왔다.

참 겁도 없지.

덜컥 신청을 했는데 그 신청한 대회가 나름 큰 대회다.

서울 하프 마라톤 일명 서하마.

5km는 있지도 않은 10km부터 시작하는 메이저대회.

무슨 생각이었는지 참..

무리에서 우~~ 할 때 휩쓸려 버렸다.

그렇게 신청을 하고 나니 더 걱정이 되는 와 중, 함께 연습하자는 사람들이 생겼고 나는 또 거기에 잽싸게 올라탔다.


그리고 첫 달리기.

그 순간 이거 너무 힘든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5km도 뛰기가 어찌나 벅찬지...

첫 달리기는 두려움과 희망을 동시에 던져주었다.

내가 뛰었다는 희망과 내가 뛸 수 있나 하는 두려움.

이 양자의 감정을 가진 채 나는 혼자 연습을 시작했다.

신기하게도, 한 번 뛰고 나니 혼자 달리는 게 그리 어렵지 않게 느껴졌다.

경험의 힘이란, 참 대단하다.


여튼, 그렇게 멋도 모르고 나는 첫 마라톤을 나갔다.


광화문에서 시작해서 여의도에서 마무리되는 코스.

마포대교로 한강을 가르며 달린다는 이 낭만적으로 보였던 길은 뛰면서 악몽이 되었다.


뛰는 동안,

그 넓은, 그리고 차 하나 달리지 않는 한강 다리를 언제 달려보겠어,

반짝이는 한강을 만끽하며 달리다니 얼마나 멋져!

라는 생각은 정말 고이고이 접혀 어디론가 사라졌다.


내리쬐는 햇빛, 그 햇빛 한 점 가릴 곳 없는 오르막으로 시작되는 대교, 가도 가도 보이지 않던 반환점.


그리고 드디어 결승점!


그 결승점을 통과하자 온몸에 힘이 쪽 빠졌다.

그런 와중에 메달과 간식바구니, 그리고 생명수와 같은 물을 챙겨 받았다.


처음 겁도 없이 시작했던 나의 그 마라톤의 기억은 뇌리에서 잊히지 않는다.

이거 못하겠구나.


그런데, 나는 또 다음 마라톤을 신청하고 있고 많이는 아니라도 그 후에도 몇 번의 마라톤을 나갔다.

그것도 대부분 10km를.


나는 왜 마라톤을 하는 걸까.

하기 전까지 나는 우는 소리를 한다.

나 안 해.

안 할 거야.

그런데 또 마라톤 일정 신청날이 뜨면 눈 빠지게 핸드폰을 바라보고 손가락 아프게 화면을 누르고 있다.

요즘말로 아주 광클을 한다.

이게 뭔가 도대체.


그렇게 한 두어 번의 마라톤을 마치고,

나는 비로소 내가 마라톤을 하는 이유를 찾았다.


아주 하찮은 이유.

바로 완주하고 받는 메달과 간식 때문이다!


다 뛰었다는 성취감.

그 성취감 후에 쥐어지는 이 소소한 물건들이 주는 만족감.

그 순간이 나는 좋다.

이 좋음을 인정했다.


그리고 혼자라면 힘들겠지만, 함께 하는 사람들이 좋다.

비록 그들에 비해 한참 형편없는 실력인지라 뒤처진 나를 완주 후까지 기다려주는 사람들이 좋다.

그리고 다 마친 후에 함께 피곤한 몸으로 커피 한 잔이라도하며 보내는 그 잠깐의 시간.

이 시간이 사랑스럽다.


솔직히 이제 작년에 비해서는 크게 욕심을 내지 않는다.

열심히 신청도 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럼에도 나는 여전히 마라톤 일정이 올라오면 내가 할 수 있을까? 하며 기웃거린다.


참, 희한한 마력의 운동이다.


얼마나 내가 더 뛸 수 있을까?

확실한 건 아직까지 나는 그 소소한 행복이 좋다는 것이다.

뛰는 동안은 너무 힘들고 포기하고 싶지만,

완주 후의 그 작은 선물꾸러미가 아직은 탐이 나니까 말이다.


나의 첫 대회 서하마 2024




혹시나 이번 마라톤은 어땠는지 궁금하신 분들이 계실는지 모르겠다.

이번 나의 마라톤은 나에게 또 다른 기쁨을 주었다.

기록 단축!


형편없는 기록이 그동안 더 형편없어졌는데 이번에는 정말 조금 당겼다!

아~~~~ 주 만족스럽다!

대신, 이번 대회의 선물 꾸러미는 나에게 실망을 주었다는 것은 안 비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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