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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여행] 푸르게 물든 마음

창릉, 유채의 흔적과 함께 한 봄날

by 이설


봄이 오고 있다.


어느덧 벚꽃이 고개를 내미는 계절.

여린 분홍빛이 나무 가지마다 스며들며, 봄은 조용히 다가오고 있다.


봄이면 괜히 마음이 들뜬다.

그 설렘은 엉덩이를 들썩이게 만드는 은근한 힘이 있다.

어디론가 가고 싶다는 들뜬 마음을 부여잡기가 참 힘들 만큼.


작년, 꽃놀이라고는 한 번도 가지 못한 봄.

그 아쉬움을 달래주듯, 조금 늦게 찾아온 아름다움이 있었다.

다 져가는 유채꽃의 흔적을 따라간 어느 날,

눈부시도록 파란 하늘이 나를 맞이해 주었다.




그날은 내 마음과는 참 다르게, 하늘이 유난히 맑았다.

하얀 뭉게 구름이 펼쳐진 하늘을 본 게 얼마나 오랜만이던가.

나는 그 푸름에 홀려, 조용히 마음을 빼앗기고 말았다.


“이렇게 좋은 날을 그냥 보낼 수는 없죠!

꽃 보러 가요!”


밝고 환한 목소리가 나를 일으켜 세웠다.

서울 근교 창릉.

유채꽃 축제는 하루 전에 끝났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찾아간 그곳.


기대한 만큼의 노란 물결은 아니었지만,

간간이 남은 유채꽃의 흔적들이 바람에 살랑이고 있었다.

조금은 아쉬웠지만, 하늘이 너무도 아름다워 그 아쉬움조차 금세 잊혔다.


따뜻한 햇살, 그 햇살이 비추는 곧게 뻗은 길, 그 위에 펼쳐진 피어나기 시작하는 푸르름.

그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참 좋았다.



이 시기의 나는 지쳐 있었다.

체력도 마음도 한계에 다다라 모든 것이 버겁고,

사람들 사이에서도 붕 떠 있는 듯한 나란 존재가 점점 자신을 잃어가고 있었고,

마음의 지침은 몸의 균형마저 무너뜨리고 있었다.


무너진 마음 속에서도 봄의 설렘은 찾아왔지만

그때의 나는 그 설렘을 조용히 묻어야만 했다.

그런 나에게 찾아온 건 무기력함이었다.

무기력함으로 입혀진 나에게 그때의 세상은 그저 회색과도 같았다.

모든 색이 있지만, 모든 색이 사라진 것 같은 그런 마음의 나였으니까.


그랬던 날 중에 만난 그날,

문득 보게된 이 눈부신 풍경이 내 마음 한편에 조용히 색을입혔다.


꽃이 피어있는 봄날의 정경.

큰 의미를 두지 않았던 꽃놀이가 그날 이후로 새롭게 다가왔다.

자연이 주는 위로의 힘을 강렬하게 느꼈기 때문일까.


한없이 푸르른 하늘 아래,

나도 모르게 그 푸름에 물들어 갔던 그 하루가

지금도 문득문득 떠오른다.


같은 장소라해도 똑같은 풍경을 없다.

자연은 언제나 변화무쌍하다.


그렇기에

내 마음이 조용히 푸르게 물들였던, 그 하루는

아직도 나에게 특별한 봄의 풍경으로 기억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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