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여행] 대만, 노을에 스며들다

난리난리 대만여행(12) 단수이, 아름다운 저녁을 향한 여정

by 이설



타이베이 메인 스테이션에서 드디어 우리의 첫 대중교통 여행이 시작됐다.

기차와 지하철이 뒤섞인 거대한 역 안으로 들어서자,

커다란 트리가 한가운데에서 반짝이고 있었다.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는 계절, 낯선 도시의 공기 속에서

그 빛은 이상하게도 따뜻했다.



우리는 자유 일정 중 단수이를 가보기로 마음을

먹고 있었다.

그런 이유로 대만에 도착해 가이드 분들께 단수이 정보를 계속해서 물었다.

어떤 가이드분은 아침이 좋다고, 또 다른 가이드분은

노을 질 무렵이 가장 아름답다고 했다.

노을이라면 언제나 옳다고 믿는 우리는 주저 없이 저녁

시간대를 택했다.

그 결정은 지금 돌이켜봐도 옳았다.




빨간색 라인을 타고 끝까지 가면 된다는 말만 듣고,

이건 쉽겠네 하며 가볍게 발걸음을 옮겼다.

하지만 타이베이 메인 스테이션은 생각보다 복잡했다.

우리나라의 용산역 같았달까.

지하철과 기차, 쇼핑몰이 모두 얽혀 있는 구조라 마치

거대한 미로 같았다.


무인발권기 앞에 서서 표를 끊으려 했지만,

시간과 좌석을 고르라니 이상했다.

역시나 지하철표가 아니라 기차표였다.

고개를 갸웃하다 인포센터로 향했다.

직원이 “지하로 내려가세요”라고 하길래 다시 내려갔다.

그런데 내려가도 발권기가 보이지 않았다.

다시 물어보니 “위층으로 가세요”라는 말이 돌아왔다.

사실, 언어의 장벽덕에 제대로 된 대화를 하고 있는지도 의심스럽긴 했지만,

그래도 그렇게 위로 올라갔더니 역시나 아니란다.

인포센터 직원과 몇 번의 대면을 했던지.


결국, 위아래로 몇 번을 오르내리다 보니

이건 무슨 똥개 훈련인가...?라는 말이 절로 나왔다.

그쯤 되니 이제 인포센터 직원들이 알아보는 지경에 이르렀다.

우릴 보며 웃는 그녀들을 보니, 부끄러움이 몰려왔다.

물론 지나고 나서는 웃긴 이야기가 되었지만,

그 순간은 고개 들고 지나가며 눈이 마주치는 것에 어찌나 얼굴 붉어지던지.

고개를 숙이고 손으로 얼굴을 가리며 인포 주변을 계속 돌았다는...

웃픈 일화가 추가되었다.


단수이행 빨간 라인은 정말로 깊은 지하에 있었다.

에스컬레이터로 세 번쯤은 내려갔을까,

그제야 한국의 지하철역처럼 생긴 곳이 나타났다.

그제야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드디어 찾았다!


표를 끊자 동그란 파란색 토큰이 손에 떨어졌다.

조그마한 그 동전 하나가 어쩐지 소중하게 느껴졌다.

귀여워! 를 연발하며 사진까지 찍었다.

이제 여유가 좀 있었던 거지.



게이트에 토큰을 넣으니 지하철 문이 찰칵 열리며 다시 토큰이 쏙 하고 나온다.

그 소리 하나에도 작은 성취감이 느껴졌다.

지하철 탄다!

지하철 안은 우리나라와는 다른 좌석 배치를 하고 있어 신기했다.

오~ 이렇게 다른 나라에서 대중교통을 이용해 보다니!

현지의 생생한 삶에 들어와 있으니 그 일상 속에 스며드는 기분이 들어 단수이로 가는 길이 더욱 설레었다.


그렇게 신나게 떠들며 가던 중,

어느 순간 종착역이라는 방송이 들렸다.

물론 언어는 다르지만, 그 발음만큼은 어찌나 귀에 쏙! 들어오는지 모른다.

종착역??

잠시 멍하니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다가

아직 단수이 아닌데?

하고 그 종착역을 지났다.

그런데 그다음 역 이름이 익숙하다.

그제야 친구가 휴대폰을 들여다보더니 말했다.

우리, 다시 타이베이로 돌아가고 있어.


순간 모두가 어이없는 웃음이 터져 나왔다.

그리고 급하게 내려 어떻게 해야 하나 하며 눈에 보이는 현지 분께 물으니,

그냥 그 자리에서 다음 열차를 타면 된단다.

어찌나 다행인지.

아, 여기도 같은 빨간 선 기차라도 종착역은 다르구나.

또 하나를 배운 순간이다.

언젠가 다시 온다면 이런 실수는 하지 않겠지?


이번에는 제대로 단수이가 종점인 전철에 올랐다.

다시 문이 닫히고 열차가 움직이자, 우리 모두 동시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40분이면 도착할 거리를 한 시간쯤 달려서야 우리는 드디어 단수이에 도착했다.

지하철 문이 열리고 단수이 역에 내리자 선선한 바람이 느껴졌다.

그 바람에 섞인 바다 냄새가 낯설지 않고 어쩐지 마음이 편안해졌다.





역 밖으로 나오니 하늘은 조금씩 붉게 물들고 있었다.

길가엔 버스킹을 하는 사람덕에 기분 좋은 음악이 잔잔히 흘렀고,

사람들은 느린 걸음으로 강가를 따라 걷고 있었다.

우리고 그 조용한 흐름에 함께 동행을 시작했다.


그리고, 잠시 후

노을이 바다에 드리워지며 아름다움이 내려앉았다.


그 순간, 시간이 조금 느리게 흐르는 것 같았다.

바쁘게 움직이던 하루가 고요히 흐르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공기는 차분했고, 말 한마디 없이 바라만 보고 있어도 충분했던 시간.

그곳에서는 말보다 바람이, 소리보다 색이 이야기를 대신했다.


노을은 점점 주홍빛으로 짙어졌고, 바다 위로 길게 흔적을 남겼다.

바다와 태양, 그리고 음악소리.

그 풍경이 너무 평화로워서, 조금 전까지 헤맸던 일조차 괜찮게 느껴졌다.


그날 단수이에 가기로 한 건 정말 탁월한 선택이었다.

우리가 흘린 땀과 웃음, 엉뚱한 방향으로 달렸던 그 시간까지도

모두 이 장면을 위한 예고편 같았다.

노을이 바다를 덮어가던 그 순간, 그 모든 어수선함이 고요 속으로 녹아들었다.


나는 지금도 그 저녁을 기억한다.

단수이의 공기, 바다의 냄새, 그리고 그 안으로 가라앉는 태양의 빛까지.

그 풍경 속에서 나는 조금 더 천천히 살아도 괜찮다고, 이렇게 고요히 쉬어가기도 하자고 스스로에게

말을 해보았다.

역시 바다는 마음의 돌덩어리를 부수고 다듬어 아름다운 모양으로 빚는 힘이 있다.





헤매도 괜찮다.

조금 늦어져도 괜찮다.

결국엔 아름다운 곳에 닿게 되는 것.

그 안에 내가 녹아들어 가는 것.

그게 여행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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