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리난리 대만여행(13) 져물어가는 마지막 밤, 그대들이 있어 행복했다.
여행에서 빠질 수 없는 건 언제나 먹거리다.
대만이라면 더 말할 것도 없다.
우리 여행의 모토는 뭐?
배부른 여행!
단수이를 간다고 하니, 가이드분이 꼭 대왕 카스텔라를 먹어보라 했다.
우리나라에서도 한때 유행했다가 사라진 그 카스텔라의 원조가 바로 이곳이라며, “비슷해 보여도 다르다”는 설명까지 덧붙였다.
그 말 한마디에 궁금함이 일어났다.
과연 어떤 맛이기에?
조용하던 거리 끝자락을 따라 걷다 뒤로 돌아 나가니,
갑자기 사람들로 북적이는 골목이 나왔다.
기름 냄새, 달콤한 냄새, 바다 냄새가 뒤섞인 그곳은
먹거리들이 즐비했다.
또 눈이 휘리릭 돌아간다.
그중 유난히 줄이 긴 카스텔라 가게 둘이 보였다.
하나는 노란 간판, 하나는 빨간 간판.
둘 다 대왕 카스텔라를 판다는데, 어디가 원조인지
처음엔 몰랐다.
가까이 가보니 노란 간판에는 이런 문구가 붙어 있었다.
“저희는 원조는 아니지만…”
아 아니구나!
"건너편 가게가~' 요렇게 쓰인 빨간 간판이 원조라는 걸 한글로 쓰인 글씨를 보고 알 수 있었다.
그래서 우리는 줄을 옮겼다.
이왕이면 원조를 먹어야 하지 않겠나, 하는 원조병이 슬쩍 들어왔다.
카스텔라는 계속해서 구워져 나오고 있었지만, 번갯불에 콩 볶아 먹는 작업이 아니다 보니 시간이 꽤 소요된다.
일반적인,
언제나 먹는 건 만드는 것보다 빠르다는 것 같은,
원리처럼
주문으로 나가는 카스텔라는 금세 사라지지만, 기다림의 시간은 천천히 흘렀다.
그렇게 기다리다 드디어 우리 차례인가 했더니,
앞에서 막 자르던 한 판이 딱 끝나버리는 게 아닌가.
아...
줄에서 기다리는 동안 미리 계산을 마치고, 마침 새 판의 첫 순서이니 모서리 쪽을 달라고 부탁했다.
카스텔라는 모서리가 진리라며 친구가 단호하게 말했다.
먹어본 사람의 말은 믿는 게 좋다.
모든 일은 안 좋은 것 같아도 좋은 점은
반드시 있는 법이다.
우리 앞에서 다 팔린 덕분에 가장 맛있는 부분을
얻을 수 있었으니 말이다.
잠시 후, 따끈한 카스텔라가 구워져 나왔다.
직원분이 자를 들고 일정한 간격으로 정확하게 자르는
모습이 하나의 묘기 같았다.
오차 없이 잘리는 카스텔라를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대왕 카스텔라라는 이름이 괜히 붙은 게 아니었다.
결이 부드럽고, 두께도 묵직했다.
갓 구운 온기에 모락모락 김이 피어오른다.
저녁을 아직 먹지 않은 터라, 한입 베어 물고 싶어 손이 근질거렸다.
그래도 커피 한 잔쯤은 있어야지.
하지만 카페가 보이지 않아 근처 세븐일레븐에서 커피를 사 들었다.
대만 사람들은 편의점 커피를 자주 마신다고 했다.
가성비 좋고 맛도 괜찮다며.
직접 마셔보니, 납득.
우리는 다시 단수이 바다가 보이는 벤치를 찾았다.
그곳에 앉아 이미 깜깜해진 바다를 배경 삼아 먹거리를 즐기기 시작했다.
커피와 카스텔라.
이 단순한 조합 거기에 해 진 후 바다 풍경이 어우러지니 부러울 것이 없다.
폭신한 카스텔라가 입안에서 녹아내리고, 따뜻한 커피가 속까지 따습게 데워주었다.
사실 나는 우리나라에서 먹어본 적이 없으니
비교할 수 없지만
이미 경험자인 친구들이 말했다.
훨씬 부드럽고 촉촉하다고.
따뜻한 커피와 카스텔라를 먹는 일이 이렇게 근사할
일인가.
그 순간은 호사가 따로 없는 기분이었다.
바람이 살짝 차가워졌지만, 손 안의 온기가 모든 걸 덮어주는 느낌이었다.
그 시간은 그렇게 달콤하게 흘러갔다.
단수이는 진리대학 쪽으로 더 걸어가면 예쁜 거리가 이어진다고 했지만 다음 일정을 위해 아쉬운
발걸음을 돌렸다.
여행의 끝에는 언제나 약간의 아쉬움이 남는다.
다음엔 꼭 저기까지 가보자, 하는 마음을 남긴 채로.
단수이를 떠나 도착한 곳은 대만의 상징, 101 타워였다.
선택관광으로 이곳이 있었지만, 우리는 선택보다는 자유를 선택했다.
전망대는 롯데타워에서 즐기지 뭐 하면서.
밤의 타워는 크리스마스 시즌과 맞물려 화려한 빛으로 가득했다.
아기자기 귀여운 조형물들이 사진을 부르니, 이 어찌 그냥 지나치리오.
우리의 여행은 먹거리와 사진으로 남았다.
물론 젤 중요한 지우펀은 눈물이 나지만.. 말이다.
카스텔라를 먹었지만, 우리는 아직 배고프다!
그래서 뭔가 포장을 해가자고 하고 다니다 보니, 어딘가 익숙한 간판이 보인다.
바로 교. 촌. 치. 킨.
한국에서도 잘 먹지 않는 이곳을 대만에서 먹게 될 줄이야!
그러나 타국이라 그랬나?
더 반가운 마음도 있었다.
그동안 대만의 음식을 즐겼다면 마지막날 밤은 한국의 치킨으로 마무리하는 것도 훌륭한 선택지다.
먹거리를 들고 호텔로 들어은 늦은 시간.
피곤했지만, 이상하리만큼 마음이 들떴다.
지친 하루가 오히려 우리를 더 가까이 묶어준 것 같았다.
생각해 보면, 여행에서 여유롭게 다니자는 말은 약간은 공약 같다.
힘들지 않은 여행이야.
편하니까 즐기기만 하면 돼.
그러나 결국엔 여행은 바쁘게, 정신없이, 그리고 그만큼 즐겁게 흘러가는 법이다.
단수이의 카스텔라처럼,
잠깐의 기다림 끝에 찾아오는 달콤함이 있다면 즐거움은
배가 된다.
돌아와서도 우리는 그날의 이야기를 자주 꺼냈다.
줄을 잘못 서서 옮겨가던 일, 모서리 달라며 진지하게 부탁하던 우리,
그리고 바다를 배경으로 카스텔라를 나눠 먹던 그 순간.
물론, 종착역의 이야기까지.
헤매던 시간마저도 웃으며 이야기할 수 있다는 건 좋은 여행을 했다는 뜻일 것이다.
함께 나눈 기억이 있다는 건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지 새삼 느꼈다.
그대들이 있어 즐거운 여행이었다.
지금 이 글을 쓰며 다시 그날의 우리를 떠올린다.
부드럽게 녹아내리던 카스텔라와 마음까지 데워주었던 커피 한잔의 시간, 그 몰랑몰랑했던 마지막 날의 온기가 여전히 남아있는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