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는 생각보다 많은 것을 할 수 있다
나는 첼시FC의 팬이다. 내가 해외 축구를 처음 보게 되었을 때는 대략 2004년쯤이었다. 그즈음 러시아 국적의 부자인 로만 아브라모비치가 첼시FC의 구단주가 되었다. 그는 많은 투자를 통해서 첼시FC을 유럽 최고의 구단 중 하나가 되는 데 기여했다.
로만 아브라모비치가 구단주로 있었던 2003년부터 2022년까지 첼시FC는 유럽 최정상급 클럽으로 발돋움한다. 프리미어리그 다섯 번, 챔피언스리그 두 번, 유로파리그 한 번, FA컵 다섯 번, 리그컵 세 번을 우승했다.
로만이 구단주로 있던 시절, 내가 제일 좋아했던 공격수는 코트디부아르 국적의 디디에 드록바였다. 나는 그에 대해서 잘 몰랐다. 그가 태어났다던 코트디부아르라는 나라 이름도 디디에 드록바 때문에 알게 되었다. 솔직히 첼시 입단 초기에 봤던 디디에 드록바는 뭔가 부족해 보였다. 열심히 뛰긴 하지만, 정작 많은 골을 넣는 선수는 아니었다. 세계 최고 수준의 공격수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래서 2006년 이탈리아 세리에A의 AC밀란에서 당시 최고의 공격수 중 한 명으로 꼽히던 안드레이 세브첸코가 첼시로 팀을 옮겼을 때, 디디에 드록바가 첼시에서 자리를 잃게 될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렇지 않았다. 디디에 드록바는 06-07 시즌에 프리미어리그에서만 20골을 득점하였고, 이를 통해서 아프리카인 최초로 프리미어리그 득점왕이 되었다. 디디에 드록바는 첼시에서 공식 경기를 381번 뛰었고, 164골을 득점했다. 첼시 팬이라면 당시 그의 활약을 절대 잊을 수 없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는 챔피언스리그나 FA컵 과 같은 토너먼트 성격인 대회의 결승전에 12번 출장했고, 그 경기에서 11골을 넣었다. 첼시의 우승과 영광에는 그의 이름이 함께 했다.
그는 누구보다도 그가 태어난 나라인 코트디부아르를 사랑했다. 그는 어릴 때 삼촌을 따라서 프랑스로 왔고, 코트디부아르에서 지낸 시간보다 프랑스에서 지낸 시간이 더 길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뿌리가 있는 코트디부아르에 깊은 애정을 보여 주곤 했다.
코트디부아르는 아프리카 서쪽에 있고, 대서양과 면해있다. 우리나라처럼 삼면이 바다와 면해 있지는 않고, 한 면만 바다와 면해 있다. 근처 국가로 가나와 말리 등이 있다. 근처의 다른 국가들과 비슷하게 프랑스 식민지였으나 1960년에 독립했다. 아프리카 지역이지만, 소득 수준도 높고 무척 잘 사는 나라 중 하나였다. 그러나 오랜 기간 지속된 내전으로 인해서 사람들의 삶은 물론 경제도 파탄이 났다.
드록바가 첼시 선수로써 활동하던 시대에도 전쟁으로 사람들의 삶이 무척 어려웠다. 드록바는 국가대표팀에서 활약하면서 2006년 독일 월드컵 아프리카 지역 예선을 통과하는 데 성공했다. 코트디부아르 최초로 월드컵에 출전하게 된 것이었다. 락커룸에서 동료들과 기쁨을 나누고 있었던 그는 코트디부아르의 공영 방송에서 자신들의 모습을 촬영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는 카메라에게 마이크를 건네받아서 얘기를 시작했다. 그는 월드컵에 진출하게 된 것은 코트디부아르 국민들에게 큰 즐거움이며, 그들이 코트디부아르에 평화를 요청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 말했다. 그는 주변의 모든 동료들에게 잠시만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주라고 얘기했다. 곧 조용해진 락커룸, 모든 사람들이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상황에서 드록바는 말했다.
“북부에 사는, 남부에 사는, 중부에 사는, 서부에 사는 나와 같은 코트디부아르의 모든 국민 여러분. 우리는 오늘 여러분에게 코트디부아르가 함께 같은 목표를 위해 뛰고 나아갈 수 있다는 것을 증명했습니다. 월드컵 진출이라는 목표 말입니다. 우리는 여러분께 그 목표를 달성하는 것이 나라에 평화를 가져다줄 것이라고 말씀드렸죠. 그래서 우리는 지금 여러분께 부탁합니다.”
그는 주변의 모든 동료들에게 무릎을 꿇어 달라고 부탁했고, 그역 시도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다시 얘기했다.
“여러분에게 부탁합니다. 아프리카의 가장 풍족한 나라인 우리가 이렇게 전쟁으로 갈라질 수는 없습니다. 제발 무기를 내려놓으십시오. 투표를 해주십시오. 그러면 모든 것이 점점 나아질 것입니다.”
월드컵 진출을 확정 짓고, 조국으로 돌아온 그는 엄청난 환영 인파를 맞이하였다. 제일 먼저 반겨 준 것은 그의 아버지였다. 그는 드록바가 국가대표 축구대표팀을 월드컵으로 이끈 것보다도 락커룸에서 했던 짧은 연설을 더욱 자랑스러워했다고 한다. 짧은 연설이었지만, 방송을 통해 여러 사람들이 보게 되었다. 실제로 그의 연설 이후, 일주일 동안 정부군과 반란군 사이에서는 총성이 멈추었다고 한다.
축구는 단순히 공놀이라고 할 수 있지만, 단순함을 넘어서 세계에 많은 영향을 준다. 특히 국가 간의 대항전 형태로 벌어지는 국가대표팀 간의 경기라면 더욱 그렇다. 축구 경기 이후, 전쟁이 멈췄다. 그 사건은 단순히 축구 경기 하나가 전쟁을 멈춘 사건이 아니다. 축구 경기를 통해 자신이 전하고자 했던 메시지를 이야기했던 한 사람이 바로 전쟁을 멈추게 했다. 그 사람이 바로 디디에 드록바였다.
2002년 9월, 당시 코트디부아르 대통령이었던 로랑 그바그보에 반대하는 군인들이 반란을 일으키며 시작된 내전은 디디에 드록바의 말 한마디에 잠시 멈췄다. 다시 전쟁이 재개된 후 2007년에 반군 지도자였던 기욤 소로가 총리가 되면서 평화협정이 체결되고 나서야 마무리되었다. 아쉽게도 그 후 2010년~11년에 2차 내전이 발생했고, 이로 인해 3,000여 명이 목숨을 잃고 수십만 명이 피난을 갔다고 한다.
디디에 드록바의 염원대로 전쟁이 곧바로 완전히 끝나지는 않았다. 그러나 그가 자신의 조국에 평화가 찾아오기를 기원하며 카메라 앞에서 보여준 행동은 감동적이었다. 그가 그렇게 용기를 낼 수 있게 한 것은 나라에 대한 ‘사랑’이 있었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아마도 그 역시 알고 있었을 것이다. 축구가 이렇게 정치와 민족 갈등을 초월해 사람들을 하나로 묶을 수 있는 힘이 있다는 것을.
'축구'는 단지 경기에 승리하고, 그 쾌감을 누리는 것에만 의미가 있지는 않다. 드록바는 축구를 통해 보여주었다. 국가에 대한 자신의 '사랑'으로 세상에 보다 선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는 것을 말이다. 그리고 축구는 생각보다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