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아빠 감사합니다.
OO 예고 입시를 치르고 아이는 약을 먹겠다는 약속을 새해가 되었을 때부터 지켰다. 다시 가기로 한 학교를 잘 다니고 싶은 마음도 있었고 자기가 아픈 상태라는 것을 인지하고 받아들이기 시작했기에 약의 도움을 받기로 한 것이다. 마침 내가 다니고 있던 정신과 의원에 여자 선생님이 새로 부임하셨는데 아이가 좋아해서 그 선생님께 약을 타서 먹게 되었다. 개인적으로는 나의 조울증을 진단하고 약을 잘 조절해 주셨던 원장님께 진료를 받게 하고 싶었으나 아이가 느끼기에 환자와 따뜻하게 소통하는 다정한 여자 선생님을 딸아이는 선택했다. 엄마인 나는 하루라도 빨리 아이에게 맞는 약을 찾아 아이가 안정을 찾고 평범하게 일상을 잘 사는 것이 소원이었기에 사실 친절한 의사 선생님보다는 실력이 좋은 의사 선생님이 더 간절했다. 새로 부임하신 선생님이 실력도 좋아 아이의 상태에 따라 약을 잘 조절하실 수 있기만을 바랄 수밖에 없었다. 아이는 여기 병원에서는 '조울증'이라 진단을 받았기 때문에 조울증에 도움이 되는 약부터 먹기 시작했다. 다행히 아이는 약을 먹으면서 새 학기가 되기 전까지는 한동안 안정적인 생활을 하였다.
한 가지 작은 소동이 있었는데 OO 예고를 합격하고 그 학교를 진학하려던 아이의 생각이 예비 소집을 다녀오고 나서 바뀌었다. 교복도 이미 다 맞추었고 새 학기를 대비하여 곡도 여러 개를 준비하고 있었는데 아이는 OO 예고는 진학하지 않겠다는 뜻을 밝혔다. 자기에게 아무리 음악적 재능이 있어도 그렇게 많은 비용을 지불하면서까지 음악인의 길을 가고 싶은 것은 아닌 것 같다고 했다. 대신 일반고로 전학을 가서 공부를 해서 진로를 정해서 가겠다고 했다. 이렇게 결정하게 된 것은 장차 직업을 갖게 되었을 경우 그 직업을 갖게 되기까지의 비용과 효용성을 아이 스스로 집안형편과 대비하여 고려한 점도 있었지만 아이가 발레와 클라리넷을 하면서 겪었던 우리나라의 전문 예술인이 되는 과정이 다소 마음에 들지 않았던 점도 있었던 것 같다. (아이는 클라리넷을 하기 전에 엄마의 권유로 운동삼아 시작한 발레에 몇 년간 진심이었으나 노력만으로는 넘을 수 없는 체형의 한계로 발레를 포기했던 일이 있었다) 그리고 입시와 경쟁 중심인 명문 학교의 타이트한 학업 스케줄과 입학 전이었지만 지방 출신인 아이를 제외하고 이미 형성되어 있는 관현악 아이들 끼리끼리의 분위기에도 적응하기 힘들다고 판단한 점도 있었으리라 본다.
우리 부부와 지도 선생님은 클라리넷을 완전히 내려놓기엔 소질이 너무 아까워 취미로라도 계속하기를 바랐지만 아이는 이번에도 단호했다. 일반고로 가기로 한 이상 공부에만 전념을 하겠다고 했고 자기는 공부와 클라리넷 두 가지를 모두 동시에 할 수는 없다고 했다. 아이와 전에 입시를 치를 때에 약속한 것이 있었기에 우리 부부는 OO 예고를 가지 않겠다는 아이의 뜻을 일단 받아들였다. 아이는 나중에 클라리넷을 다시 하겠다는 말을 하지 않겠다고 하였지만 지도 선생님과 우리 부부는 그 말을 완전히 받아들이지는 않았다. 입시 준비를 하면서 보여주었던 아이의 음악적 기량이 아이 인생에 있어 쉽사리 묻힐 부분이 아니라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단지 지금은 아이가 생각이 깊어 여러 가지 현실을 고려해서 공부를 하겠다고 완강히 말하지만 나중에 클라리넷을 또다시 하겠다고 하면 그때 가서 하도록 우리 부부는 지켜볼 생각이었다. 사실 클라리넷을 다시 하느냐의 여부는 크게 중요하지는 않았다. 단지 엄마가 보기에 딸아이는 공부보다는 손기술과 예체능에 소질이 있는 편이었는데 자신의 강점을 자기도 알게 되기까지는 전심으로 공부를 직접 해 보면서 스스로 깨닫는 편이 나아 보였다. 십 대인 아이와 실랑이를 하는 것보다 아이에게 시간을 주는 편이 아이가 앞으로 자신의 인생을 설계해 가는데 더 도움이 될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클라리넷을 하기 전 발레를 하면서 체중관리가 몸에 밴 딸아이는 날마다 팔 굽혀 펴기, 자전거 타기 , 계단 오르내리기 등 스스로를 트레이닝하는데 열심히였고 공부는 학원이나 과외 대신에 EBS 무료강의를 이용해 자기 주도하에 선행학습을 하면서 일상을 알차게 살았다. 단지 영어 문법은 아이가 엄마의 도움을 요청했기에 시중의 교재를 이용해 처음부터 끝까지 같이 풀었다. 반면에 아이가 정서적으로 불안감이 커서 여전히 엄마를 필요로 했기에 날마다 일상을 아이와 함께했다. 밤에도 딸아이 옆에서 힘든 점들을 들어주고 다시 다독이며 아이를 재우는 나의 일과는 그대로 유지되고 있었다. 그러는 사이 나는 정신적으로 점점 지쳐가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가 죽고 싶다는 말을 하거나 심하게 강박적인 행동을 보이거나 혼자 밖을 못 나가거나 하지는 않았기에 학교가 시작되기 전까지 우리 가정은 한동안 평화를 누렸다.
다음의 시는 아이가 어느 날 밤에 문득 떠올랐다고 하면서 스케치북을 꺼내더니 배경으로 큰 나무를 그리고 그 안에 시를 써서 우리 부부에게 준 것이다. 그동안 고생이 되었지만 아이에게 부모의 인내 어린 사랑이 전해지고 있었구나 하는 마음에 한동안 감동이 되었다. (사랑 = 오래 참고*100...ㅠㅠ)
꽃씨 속에 숨어 있어도
나를 기다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한여름 소나기 같이 쏟아져도
나를 사랑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 같아도
나를 믿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겨울 눈보라 같이 몰아쳐도
나를 응원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사계절을 굳세게 버틴 나무처럼
나를 키워주셔서 감사합니다.
엄마, 아빠 늘 건강하시고 우리 오래오래 같이 살아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