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존재하라!
지난겨울 내내 아침저녁으로 두 번씩 침묵 기도와 명상을 하며 그와 관련된 책들을 읽는데 시간을 보냈다. 아픈 딸아이로 인한 절박한 마음은 나를 더욱 영적인 수련의 세계로 인도하였다. 침묵기도와 명상을 하면서 나도 모르게 차츰차츰 나의 오랜 상처들과 가면들이 떨어져 나가고 '벌거벗은 나'를 만나게 되었다. 양파껍질 벗기듯 내 안에 깊이 들어가 마주하게 된 '벌거벗은 나'는 아이러니하게도 어린 시절의 '그냥 나'였다. 그래서 그동안 뭔가 '진정한 나'를 찾고자 애써온 지난 시간들이 허망하고 허탈하기까지 하였다. 용기 있게 '진정한 나'를 찾아 나섰지만 살아왔던 시간들이 무색하게도 제자리로 돌아온 느낌이었다. 뭔가 '특별하고 심오한 다른 나'는 없었다. '그냥 나'가 있었다. 어렵게 구불구불한 길을 걸어 찾아 도착한 곳이 바로 출발선이었다. 생각과 감정의 고통체가 사라지고 난 자리에서 마주하게 된 '그냥 나'는 '무심'(無心)의 상태였다. '무심'의 상태가 너무나 낯설어 내가 이상한 길로 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두려움조차 들었다. 내 안에 있었던 과거의 고통체가 떨어져 나간 것은 너무나 홀가분하고 좋았으나 늘 하던 생각하는 마음이 멈추고 나니 마치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더 무능한 존재가 된 것은 아닐까? 하는 걱정이 찾아왔기 때문이었다.
나도 몰랐던 정신질환인 조울증을 30년 가까이 겪으며 경험했던 나의 지난날들은 찬란한 유채색이었다. 모든 감각이 예민하게 작용하여 어떤 상황이든 보통 사람들보다 몇 배나 더 강하게 느끼고 울고 웃었다. 조증의 기간에는 고도의 집중력으로 한 번에 여러 일들을 신속히 처리할 정도로 폭발적인 에너지를 경험하다가 어느 순간 툭 떨어져 깊은 무기력함과 우울감 속에서 긴 시간을 보내야 하는 일상이 반복되었다. 긴 세월 동안 극과 극을 오가며 생활하는 것이 나의 성격인 줄 알았는데 사실은 병증이었다. 그런데 조울증을 치료하는 약을 먹고 나니 유채색이었던 세상이 무채색이 되어 버렸다. 감정의 기복이 없어지고 일정한 기분이 유지되는 것은 좋았지만 조증 기간 경험했던 나의 특별한 능력 또한 없어졌다. '어떻게 이런 무능한 상태로 세상을 살아가야 하지?' 하는 막막함이 밀려왔고 심한 두려움과 불안감으로 이불 속에 꼼짝없이 누워 운전조차 한동안 할 수 없었던 적도 있었다.
의심과 함께 약을 중단하고 예전처럼 살고 싶은 유혹도 들었다. 그런데도 의사는 혈압약을 복용하듯 꾸준히 복용하며 치료를 계속해 나가야 한다고 했다. 조울증 증상이 없어져 건조함마저 드는 밋밋한 일상 속에서 무능해 보이는 '벌거벗은 나'의 상태로 이 세상을 살아가는 것은 나에겐 또 다른 용기와 결단이 필요했다. 그런데 어쩌면 '벌거벗은 나'가 '가장 진실되고 자연스러운 상태의 나'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이전의 나와는 달리 가장 연약하고 무능해 보이는 존재인 '그냥 나'로 살아간다는 것은 어떤 것인지 한번 살아보기로 했다. 인생의 방향키를 180도로 완전히 전환한 선택이었다. 30년 전에 그랬던 것처럼 나는 남은 나의 생을 걸고 모험을 해 보기로 한 것이다. 미래에 대한 걱정은 미래에 완전히 맡기고 무심(無心)의 상태에서 온전히 ' 그냥의 나'로 '그냥 있기'를 일상의 생활에서 실천해 보았다. 그러자 점차 내면이 평온해지고 지극한 고요함이 찾아왔다. 나는 그제야 온 우주와 하나가 된 듯한 내 안에 살아있는 충만한 참생명의 에너지를 강렬하게 느꼈고 '진정한 나'를 찾은 느낌이 들었다.
참 생명인 '진정한 나'는 이미 존재하고 있었다. 모든 특별함과 아름다움은 이미 내 안에- 지극히 평범한 외모와 마음과 생각 너머에 있는 참생명의 모습으로 원래부터 있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겉으로 보이는 형상 안에 이 세상을 창조한 지혜와 생명의 근원을 이미 품고 있었다. 그 생명에 나를 온전히 맡기고 나는 그냥 존재하면 되는 존재였음을, 그리고 좋든 안 좋든 보이는 상황과는 상관없이 온 우주의 사랑을 이미 받고 있음에 눈이 떠졌다. 그래서 가장 연약해 보이는 순수한 나의 모습 그대로 이 세상을 살아가는 데 있어 용감해졌다. 온 우주는 우리 모두를 향해 웃고 있고 우리 모두를 위해 창조되었으며 온 세계는 우리 각자의 놀이터로 주어졌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