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매 순간을 환영하기
추석 연휴 기간 내내 먹구름이 드리워져 비가 올 듯 말듯한 날씨가 계속되었다. 시원하게 비가 올 때도 있었지만 추적추적 내릴 때도 있었고, 가끔씩 햇빛이 따갑게 내릴 쬘 때도 있었으나 대부분은 흐렸기에 청명한 가을 하늘은 전혀 볼 수가 없었다. 이런 일에도 장기적이게 되면 힘들어지려 하는데 삶의 크고 작은 일들을 매번 기쁘고 감사하게 받아들이는 것... 거기다 고통의 순간들조차 환영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게 느껴진다. 좋을 때나 나쁠 때나 슬플 때나 기쁠 때나 어떻게 삶의 매 순간들을 환영하며 살 수 있을까? 꼭 그렇게 살아야 할까? 그냥 고통을 거부하며 최대한 피하고 살면 되지 않을까?
그러나 참 아이러니 하게도 고통을 최대한 피하면서 살아가려 애쓰다 보니 알게 된 것은 그러면 삶은 더더욱 힘들어진다는 사실이다. 마치 세차게 불어오는 비바람을 온몸으로 맞서며 바람을 향해 발을 한 걸음씩 겨우 내딛는 것과 같아진다. 고통에 대해 거부감을 가지면 가질수록 삶에 대한 전체적인 저항감이 커지기 때문에 마치 강을 거슬러 노를 젓는 것 같이 삶은 더더욱 고단해지고 어렵게만 느껴질 것이다. 그러나 불어오는 바람을 인정하고 그 바람에 온몸을 실어 바람이 부는 방향대로 따라가도록 삶을 내맡겨 버린다면? 노를 거두어들이고 흘러가는 강물의 방향대로 배가 흘러가도록 맡겨 버린다면? 그러면 더 캄캄한 어둠 속을 스스로 걸어 들어가는 것 같이 더 큰 고통과 어려움이 다가올 것 같지만 이러한 삶에 대한 기본적인 순응과 수용은 막상 얼마 안 가 외부의 일들이 어떠하든 간에 내면으로는 아무런 영향이 미치지 못하는 고요한 마음의 평화의 세계에 이르게 한다 (이것은 직접 해보지 않으면 결코 맛볼 수 없는 지극히 평화로움 그 자체여서 말로는 어떻게 더 설명할 수가 없다)
이때부터는 고요한 평화로부터 지각을 뛰어넘는 지혜가 나타나 삶의 크고 작은 어려움들이 해결되어 가는 기적들을 경험하기도 한다. 설혹 실질적으로 해결이 안 된다 하더래도 마음의 평화로 인해 고통이 더 이상 고통이 아니게 된다. 고통이 나에게 주는 이러한 '감추인 선물들'을 맛보고 나서는 때로 만나게 되는 삶의 고통을 더 이상 피하지 않게 되었다. 서핑선수들이 큰 파도들을 반기며 그 위에 멋지게 올라타듯 이제는 고통과 저항의 파도들이 몰려오기 시작하면 긴장은 하지만 겁내지 않고 올라탈 준비를 한다. 바다는 결코 잠잠할 수 없다. 이런 인생의 바다를 인정하고 파도들을 능숙하게 탈 줄 아는 자가 되는 것 그것이 바다를 즐기는 삶이다. 끊임없이 계속되는 파도들을 원망하며 파도가 잠잠하기만 바랬던 날들도 있었으나 그것은 삶이 계속되는 한 이루어질 수 없는 나의 헛된 꿈에 불과하였다. 파도를 탈 수 없다면 차라리 스쿠버 다이빙을 배워 깊은 바닷속의 평온을 경험함으로 측량할 수 없을 정도로 넓고 깊은 바다를 마음에 품고 살아가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 바다를 전체로 볼 수 있다면 아무리 큰 파도도 바다의 지극히 작은 일부분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그러면 밖에서 치는 파도 하나하나에 요동하지 않고 평온을 유지할 수 있게 되어 고통의 크기가 훨씬 줄어든다. 그리고 그 속에 감추인 보물들을 기대하게 된다. 어떤 상황에 있든 삶 자체를 기대하게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