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를 읊는다는 건

by 꿈꾸는 담쟁이

어릴 적, 저녁식사를 하시다 반주를 드시던 할아버지가 가끔 시조를 읊으셨다.


술을 취케 먹고 두렷이 앉았으니
억만 시름이 가노라 하직한다 해야
잔 가득 부어라 시름 전송하리라.”


술을 드실 때마다 외우시던 할아버지 덕분에 이 시조는 머릿속에 콕 박혀버렸다. 할아버지가 어릴 적 동네 어르신이 술을 마실 때마다 시조를 읊으시는 모습이 멋있어서 어느 날은 들리던 시조를 적으셨다고 한다. 어른이 되어 술을 마실적마다 그 어르신이 생각나 외운 시조 하나 읊으시고 술을 마셨다고 하셨다. 그 모습이 어린 내 눈에도 멋있어 보였다. 7살이던 나는 할아버지를 따라 사이다를 마실 때마다 이 시조를 읊어서 가족들을 웃게 하였다.


우리 옛 선조는 술을 마실 때 술동무와 함께 시를 읊고 서로 담소를 나누었다. 시를 통해 전하는 마음. 풍성한 언어로 전하는 그 마음은 마음속 언어를 곱게 선물을 포장하여 사랑하는 이에게 선물하듯이 설레게 한다.


중학교 1학년 때 국어선생님께서 교과서에 나오는 시들을 외우게 하셨다. 교탁 앞에 서서 외운 시를 읊고 들어오는 시험이 수행평가여서 국어 시간 전에는 교실에 아이들이 열심히 책을 보며 중얼중얼 거린다. 시를 암기하기 위해서 서로 시를 들어주고 말하고 하는 숨 가쁜 10분의 쉬는 시간은 과거시험 현장과 다름없었다. 처음 교탁 앞에서 읊은 시가 이형기 시인의 <<낙화>>였다.


“가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로 시작하는 이 시를 외우면서도 이 말 뜻을 이해하지 못했다. 이 시를 통해 역설법이라는 걸 처음 배웠고, 이별에 슬퍼하는 시로만 기억하였다.


대학생이 되어 벚꽃구경을 하러 마실을 나갔을 때 벚꽃이 바람에 흩날리는 모습을 하염없이 바라본 적이 있다. 그때 머릿속에서 떠오른 건 <<낙화>>의 시였다. 그 모습을 바라보면서 낙화의 시 전체가 생각이 났다. 그리고 “가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의 아름다움을 알아버렸다.


시를 통해 배우는 삶의 지혜들. 언어의 풍성한 감정을 경험하고 싶을 땐 시를 읊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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