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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꾸는 담쟁이 Oct 11. 2023

한 소녀의 소망

예술에세이 2


에바 알머슨 Un deseo / A wish. 2022

한 소녀가 불꽃을 들고 눈을 감고 있다. 저 뒤에 남산타워가 보이는 한강에서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어릴 적 한강을 바라보며 소원을 빌었다. “꼭 god오빠들의 cd가 대박 나게 해 주세요.” 그 소원은 거짓말이라는 타이틀 곡으로 히트를 쳤고 그 해에 god 오빠들은 대상을 받는 기쁨을 얻었다. 왠지 내가 소원을 빌어서 이루어진 듯 뿌듯했다.

아마 이 소녀도 그런 소원을 빌지 않을까? 자신을 위한 소원이 아닌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들이 행복해할 소원을 빌고 있을지도 모른다. 소녀의 눈감은 미소가 그래서 아름다워 보일지도 모르겠다. 빨간 매니큐어가 칠해진 손에는 불꽃을 튀기며 타들어가는 불꽃을 꼭 쥐고 있다. 불꽃이 반짝이는 빛을 내면서 소녀의 소원을 들어주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다.

내가 만약 이 소녀라면 무슨 소원을 빌까? 지금 당장 떠오르는 소원은 방학을 보내고 있는 아이들이 즐거운 추억을 많이 만드는 시간을 가지길 바라본다. 방학식이 되길 손꼽아 기다리던 어린 시절에 매일 아침 눈을 뜨면 “엄마 방학 며칠 남았어?”를 묻곤 했다. 그러면 엄마는 “3일 밤만 자면 돼!”라는 말에 기분이 좋아져서 춤을 추며 학교를 갔다. 방학식이 되자마자 신이 나서 등굣길에 만나는 친구들이 얼마나 예뻐 보이던지 방학 때 실컷 놀 생각으로 가득 찼다. 방학이 시작되면 아침 일찍 눈이 떠진다. 등교할 때보다 더 부지런하게 아침밥을 챙겨 먹고 놀이터로 향한다. 나처럼 설레는 마음으로 방학을 맞이한 친구들과 놀이터에 만나서 해가 뉘엿뉘엿 질 때까지 실컷 놀다 온다. 며칠을 그렇게 놀다 보면 지루해서 시원한 장소를 찾아 친구들 집을 방문한다. 시원한 주스에 맛있는 과일들을 내주시던 친구부모님들은 시장 간다면 잘 놀고 있으라는 말 한마디 건네곤 외출하신다. 그러면 우리들의 세상이 되어 집안 곳곳을 누비며 다닌다.

그렇게 친구들 집을 전전긍긍하며 다녀보면 또다시 지루한 시간이 온다. 방학이 일주일 밖에 지나지 않아 심심해질 때 엄마 손을 잡고 도서관에 간다. 도서관에는 에어컨이 빵빵하게 틀어져있다. 집에는 선풍기가 돌아가지만 도서관에는 항상 에어컨이 켜져 있어서 에어컨을 구경하러 도서관에 매일 등교했다. 엄마는 “여기서 책 보고 있어 시장 갔다가 볼일 보고 올게.”하곤 나를 도서관에 두고 일을 보고 오셨다. 그때부터 눈이 반짝인다. 도서관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다 어른들에게 혼나기도 하고 궁금한 걸 물어보면서 나만의 도서관 탐방을 다닌다. 도서관에는 다양한 책도 많지만 놀 수 있는 공간과 무언가를 배울 수 있어서 엄마에게 졸라서 미술수업과 동화구연 수업을 신청하기도 했다. 그렇게 도서관에서 며칠 놀다 보면 방학은 다 끝나가고 다시 학교에 가야 할 시간이 온다. 신기하게 방학이 기다려지듯이 얼른 개학식이 오기를 손꼽아 기다린다. 개학날 일주일 전부터 “엄마 언제 학교가?”하고 매일 아침 물으면 엄마의 “7 밤만 자면 돼”라는 대답에 또 신이 나서 춤을 춘다. 밀린 방학 숙제에 눈물 콧물을 흘리며 일주일을 보내지만 친구들을 볼 생각에 손꼽아 기다리던 방학의 즐거운 시간이 떠오른다.

하지만 요즘 아이들은 방학을 싫어한다. 학교를 안 가서 좋지 않아? 하고 물으면 학교 다닐 때보다 더 힘든 스케줄에 숙제할 시간이 없다고 볼멘소리를 한다. 요즘 놀이터에는 아이들이 놀 수 있는 공간이 많이 없다. 아이들이 방학을 기다리지 않는다는 말에 처음엔 충격을 받았다. 방학 때라도 즐겁게 독서토론을 하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다. 이 노력이 헛되지 않도록 나는 이 소녀가 되어서 아이들이 방학을 즐겁게 보낼 수 있기를 불꽃에 내 마음 담아 소원을 빌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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