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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꾸는 담쟁이 Oct 21. 2023

정효순_Seattle Story 31

예술에세이 12


 Artist: Hyosoon Jung  Title: Seattle Story 31. it snows  Material: oil with mixed medi

   

내리는 눈을 바라보며  

기온이 떨어져 자다가 뒤척인다. 얼음장 같은 공기에 담요를 뒤덮고 손을 호호 불면서 난롯가에 앉아있다. 추운 겨울을 유난히 싫어한다. 봄에 태어나 따뜻한 기온이 익숙해서인지 겨울만 되면 따뜻한 나라로 이민을 가고 싶은 생각이 든다. 겨울이 빨리 갔으면 하는 바람으로 창문으로 다가간다. 커튼 사이로 들어오는 바람을 막으러 밖을 바라보는데 눈이 휘둥그레 해진다. 


세상이 하얗게 변했다. 저 멀리 보이는 빌딩이 눈 속에 덮여 숨어있다. 창문을 열면 바로 보이는 다리도 눈 속에 파묻혀 잠을 잔다. 나무들은 앙상한 가지만 외로이 서있다가 하얀 옷을 입고 기분이 좋은지 바람에 흔들거린다. 


온 세상이 하얗게 변해버린 모습을 창문을 바라보는 내 시야도 하얗게 변했다. 그 하얀 세상을 눈에 담기 위해 눈을 껌뻑껌뻑이며 빛을 받아들인다. 눈에 비친 햇살에 눈이 부시지만 그 눈부신 세상을 언제 한번 볼 수 있을까? 매일 보는 풍경이 눈 속에 가려져 하얀 도화지가 되었다. 


그런 세상이 유토피아처럼 느껴졌다. 하얗게 변해버린 세상이 눈이 부실정도로 마음이 반짝인다. 마음이 복잡하다. 해야 할 일들은 태산이고, 시간은 없고 마음만 조급하다. 매일매일 할 일들을 체크해 가면서 시간에 쫓겨 지낸다. 아 빨리 주말이 오길 바라며 바쁜 시간들을 보내다 보면 어느새 머릿속은 하얗게 변하고 마음 또한 하얗게 질린다. 


일을 끝마치고 기지개를 켜며 책상을 바라본다. 전쟁을 겪어 폭탄을 맞았다. 노트북 주위로 먹다 남은 테이크 아웃컵들이 쌓여있고, 연필 펜등이 책상을 나뒹군다. 책들도 쌓다 못해 천장을 뚫을 기색이다. 글을 쓰다 남은 노트북 속 화면 또한 글씨로 채워져 있고, 온갖 문구용품들이 책상을 뒤덮었다. 

여백의 미. 나에게 없는 이 아름다움을 그림에서 찾았다 하얗게 뒤덮은 세상은 마치 내가 원하는 책상 위 모습으로, 시간에 쫓기지 않고 여유롭게 이태백과 함께 술 한잔 하며 향유하는 시간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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