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4학년때 밖에서 친구들과 오재미놀이(제기를 피구처럼 하던놀이)를 신나게 하였다. 이 재미에 학교에 가던 기억이 난다. 그러다 친구가 내 눈을 제기로 쳐서 눈이 부어올랐다. 양호실에서 1시간을 누워있었는데도 나아질 기미가 안보여 선생님과 안과로 갔다. 의사선생님께서는 안약몇개를 주며 며칠 있으면 낫는다고 괜찮아질거라고 토닥여주었다. 그 말을 듣고 며칠동안 눈이 아팠지만 점점 나아졌다.
그런일이 언제있었냐는 듯 다시 즐겁게 학교에서 뛰어다녔다. 그러고 3개월 뒤 눈이 아팠다. 눈동자를 굴릴때도 아프고 글을 읽을때도 아팠다. 엄마는 매일 TV와 책만 보느라고 눈이 나빠졌다고 생각하여 안경을 맞추어야 하나 하였다. 아빠는 그래도 혹시 모르니 안과에 가서 검사를 받기를 원하셨다. 부모님과 안과에 갔는데 충격적인 말을 의사선생님이 해주셨다. 녹내장 증상이 보인다며 수술을 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어린나이에 그게 무슨 병인지 몰라 어리둥절하였다. 녹내장은 눈의 안압이 높아서 안압을 낮추는 수술을 해야 한단다. 그러나 어린나이이고 성장하는 나이라서 수술을 조금 미루기로 하였다. 그 뒤로 3년동안 매일 3시간마다 안약을 넣었다.
중학생이 되어서 대구에서 큰 병원인 제일안과에 가서 검진을 하였다. 녹내장 전문의가 서울에서 일주일에 3번 내려오신다는 말을 듣고 부모님과 병원을 찾아갔다. 1시간정도 검사를 마친 뒤 의사선생님께서 웃으시면서 말하였다.
"녹내장은 아닌것 같아요. 사진을 찍어보니 안구의 크기가 커서 일반기계로는 안압이 높게 측정되네요. 안약은 안넣으셔도 되고, 정기적으로 몇년에 한 번씩만 검사를 받으시면 됩니다."
부모님과 나는 엄청 기뻤다. 지긋지긋한 안약을 안넣어도 된다니 꿈만 같았다. 그 고통의 3년의 시간은 악몽이었다. 어린마음에 인터넷으로 녹내장도 많이 찾아보고 시력이 잃어버린 녹내장 환자들의 사진도 보았다. 나의 미래를 보는것 같아서 슬픈마음도 가지고 있었다. 이제 그런 미래는 나에게 사라졌다고 생각하니 기뻤다. 이제 두 눈으로 평생 밝게 세상을 보면서 살 수있음에 감사함을 느꼈다.
그런 일이 있은 후로는 동네 안과를 기피하게 되었다. 안과만 가면 안압검사기계로 측정한 의사선생님께서 꼭 녹내장 수술해야한다고 겁을 주었기 때문이다. 반의사가 된 나는 검사결과를 들고다니며 "제 눈은 괜찮으니까 인공눈물만 주세요." 이걸 매번 반복해야 했다.
어쩌면 그 3년동안 안약을 열심히 넣고 눈에 피로하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했었다. 두 눈은 그때처럼 관리해줘 하며 나에게 가끔 두통을 보낸다. 지금은 눈을 혹사하는 습관들인 책을 가까이보거나 스마트폰을자주 들어다본다. 그 때 악몽같은 시절로 돌아가기 싫으면 소중한 두눈에게 감사하며 관리를 하여야겠다고 반성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