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량리 정신병원이 철거 중이다. 단단한 안전모를 머리에 쓰고 딱딱한 안전화를 신은 건설노동자가 이 건물의 벽에서 서성거리면서 철거장벽을 설치 중이다. 늘 청량리와 함께 호흡하던 이 병원이 이젠 더 이상 우리와 더불어 살지 못 한다는 아쉬움이 든다. 그래서 이 병원에 대한 짧은 소고를 남기겠다.
내가 이 병원을 알게된 계기는 2008년 함께 아르바이트를 하던 M 양이 알려줬기 때문이다. 내심 나에게 설레이던 마음을 가졌던 이 여성은 나와의 심리적 거리감을 좁히고자 소위 플러팅을 날렸다. 가령 서울 청량리를 언급한 점이다. 내가 이 일대에 자리잡은 서울시립대 재학 중이라는 사실과 자신의 고모 역시 이 지역에서 거주하는 일을 묶어 나와의 공통분모를 형성할려고 시도했다. 이 가운데 이 병원을 언급하면서 "고모 집에 갈 때마다 여기를 지나가는 데 청량리에 살면 거기가 어디인지 알죠?"라고 묻기도 했다. 내 머리 속에 없는 정보인 탓에 어리둥절하면서 "청량리에 정신병원이 있어요? 금시초문인데요?"라며 의아한 목소리도 대답했다.
이러자 말을 이어나가면서 정을 쌓고 나를 탐색할 목적으로 친데레한 말투로 "석현 씨는 머리가 멍청해서 거기에 입원하면 돼요"라고 뚱딴지 같은 질문을 남겼다. 참고로 여자들은 자신의 남자가 될 이성에게 난해한 말과 행동을 전달해 시험을 하는 본능이 있다. 애써 대화에 참여하면 본전도 못 찾을 것 같다는 판단과 함께 그저 이 병원이 청량리에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는 만족감에 만족하면서 자리를 떠났다.
이윽고 나는 아르바이트를 그만두면서 대학교 생활에 정신이 빠져있었다. 이 와중에 미래에 대한 자회상을 그릴 겸 청량리 일대를 가벼운 걸음으로 걷는 시간을 가졌다.이 때 눈 앞에 떡하니 낯선 건물이 나타났다. 무슨 건물인지 궁금해 고개를 하늘을 향해 서서히 들어올렸다. 떡하니 '청량리 정신병원' 글자가 건물 오른쪽 위 부분에서 나를 내려다보이는 게 보여졌다. 망치로 뒷통수를 내리맞아 섬광이 번져이 듯한 느낌이 들면서 저게 그 때 그 여성이 말한 병원이구나 진짜로 있었구나라며 속으로 생각했다.
동공을 확장하면서 이리저리 굴리면서 병원건물을 훑어보니 규모가 꽤 큰 규모였다. 대략 서울 도심지에 소재한 초등학교 규모와 동일하다. "이렇게 큰 병원이 이 일대에 있으면서 눈에 밟힌 적 없는 게 신기하네"를 속으로 말하면서 재차 이 병원에 대한 인지를 더욱 명확히 했다.
이랬던 병원은 대략 2020년쯤 폐원을 결정했고 4년이 흐른 현재 철거 중이다. 이젠 역사 속으로 사라지는 이 병원은 대한민국에서 유의미한 기록들이 존재한다. 우선, 1945년 일제식민지 말기 무렵 설립된 대한민국 최초의 정신병원으로 '청량리뇌병원'으로 발족됐다. 으레 어느 분야건 1호라는 타이틀이 붙은 기관과 조직은 구심점이 되면서 다채로운 이야기들을 보유하기 마련이다. 이는 이 병원도 마찬가지라서 시 '귀천'으로 유명세를 떨친 천재시인 '천상병'과 주옥 같은 그림을 남긴 유능한 화가 '이중섭'이 입원한 이력이 있다. 게다가 1992년 합법한 절차를 걸쳐 한국으로 입국한 찬드라 쿠마리 쿠릉 네팔 여성 이주노동자가 한국어를 못 한다는 사실만으로 이 병원에 강제적으로 약 6년간 입원된 오욕도 안고 있다.
폐원을 둘러싼 말도 설왕설래가 있다. 이 병원 경영진은 늘어나는 정신병원과 줄어드는 입원 환자로 경영에 빨간불이 켜졌고 인근 주민들이 협오시설로 낙인 찍어 더 이상 버틸 재간이 없다고 주장했다.
한데 이 병원 직원들은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 이는 사실이 아니라고 갈파했다. 병원 경영이 과거에 비해 난관에 부딪치는 점은 사실이다. 한데 의사, 급식소, 경비원 등 근로자들이 임금동결에 전적으로 합의했고, 경영상황이 성장하거나 성숙할 만한 상태는 아니지만 꾸준히 횡보할 정도라서 병원을 이어서 운영해도 된다고 단언했다. 게다가 혐오시설도 이젠 낡은 해이해진 말뿐이라는 것이다. 이 시설이 3공~ 5공 시절만 하더라도 이 말이 뭇 백성이 여울 지나가듯 흘러나왔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바래져서다.
그러나 이렇게 주장한들 역사가 뒤바뀌겠는가? 이 병원은 예정대로 폐원이 됐고 건설사들이 군침을 흘리는면서 철거를 하는 신세가 됐다. 이러면서 기사거리를 찾아헤매는 언론은 물을 만난 고기마냥
이 사실을 전하면서 노인복지시설, 오피스텔, 대형마트 등이 건설될 예정이라고 보도했다.
어제 운전을 하면서 이 병원을 지나가면서 건물 일부분이 와르륵 무너지면서 먼지가 스멀스멀 하늘로 올라가는 장면을 보면서 추억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갔다. 아마 나의 남성성을 인정해 준 여성이 건넨 말이기도 하고 한편으로 그런 큰 건물이면 청량리에 2년 거주한 내가 모를 리가 없다는 오만감이 무너지면서 가진 느낌일 터이다.
이와 함께 이젠 이 병원 담장 주변에 불법주차할려고 주민들 간에 아웅거린 기실과 무개념 고등학생들이 폐원으로 자물쇠로 굳건하게 병원문을 걸어 잠긴 현상을 아랑곳 않고 남몰래 들어가 흡연과 유흥을 즐긴 사실을 경고하고자 붙여진 경고문도 추억이 될 전망이다.
이젠 물리적 흔적도 없이 한국 땅에서 사라질 이 병원이 한국 사회에 이바지한 일만큼은 후세에 긍정적 영향을 끼치기를 바란다. 역시 인생은 회자정리이고 제행무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