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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1. 안녕 루피

2022.08.29 비 오는 날 고양이별 여행

by 베리바니


어제 늦게 잔 탓인지

아침이 한참 지난 뒤까지 깊이 잠들어 있었다.


열 시쯤, 전화벨이 울렸다.

동물병원이었다.


“지금 바로 와주셔야 할 것 같아요.”


그 말이 이상하게도

처음엔 잘 들리지 않았다.

잠이 덜 깬 머리가

그 문장을 천천히 이해하는 동안

창밖에는 비가 부슬부슬 내리고 있었다.


차키를 챙겨 뛰어나왔다.

비 냄새가 뺨에 닿았다.

병원에 도착하기 전까지도

나는 크게 겁내지 않았다.

루피는 늘, 씩씩하고 건강한 아이였으니까.


엘리베이터를 타고 2층으로 올라갔다.

문이 열리자마자

내가 본 건

심폐소생술이었다.


루피는 차가운 스틸 침대 위에 누워 있었고

낯선 기계들이 작은 몸에 연결되어 있었다.

자가호흡이 없다고 했다.

약물이 들어가고,

기계가 대신 숨을 만들고 있었다.


나는 그 장면이 왜 지금 내눈 앞에서

펼쳐지고 있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내가 왜 여기 서서

루피를 이렇게 보고 있어야 하지?


언제부터 이런 상태였냐고 묻자,

새벽 6시 정도부터 심박수가 떨어졌다고 했다.


도대체 왜 지금에서야 연락을 했냐고 따지지 못한 채

멍하니 서있던 나에게,

지난주까지 당당하던 젊은 의사는

두 손을 공손하게 모은 채 말했다.


“최선을 다했지만 가망이 없습니다.”


나는 목소리가 커졌다.

“아니에요. 조금만 더 해주세요. 호흡이 돌아오면…”

의사는 고개를 저었다.

기계가 만드는 숨일 뿐이라고 했다.


“마지막 인사를 해주세요. 보호자님…”


그 말을 듣는 순간 다리가 풀렸다.

사랑한다는 말보다는 미안하다는 말이 쏟아졌다.

그동안 말하지 못한 미안함이

끝도 없이 흘러나왔다.


한참을 지켜보던 의사는 조용히 말했다.

“이제… 보내주셔야 해요.”


잠시 정리해 올라오겠다며

의사가 루피를 데리고 내려갔다.


그 사이 나는 신랑에게 전화를 했다.

일이 바쁜지 전화를 받지 않았다.


무얼 해야 할지 허둥대다 1층으로 내려가

입원비를 결제했다.

백팔십만 원이 훌쩍 넘는 금액이었다.


건강이 돌아오기를 바라며 기꺼이 지불하려던 돈이,

작별을 위해 내는 돈이 되어버려 씁쓸함과 슬픔이 더욱 차올랐다.


잠시 후

의사는 상자를 들고 올라왔다.

예쁜 선물을 건네는 사람처럼.


분명 아까까지

루피의 배 쪽에는 축축한 오줌의 흔적이 있었는데

그 사이 씻겼는지

이제 상자 속에서는

루피 냄새 대신

병원 특유의 차가운 향만이 났다.


상자 속 루피는 아직 따뜻했고

눈을 뜨고 있었다.


나는 물었다.

“혹시… 이대로 돌아올 수도 있지 않을까요?”


의사는 잠깐 멈추더니 말했다.

“기적이 일어날지도 모르죠.”


나는 그 말을 붙잡고 싶었다.

빨리 집에 가고 싶었다.

집에 가면 루피가 깨어날 것만 같았다.


방금 전까지의 일은 잠시 나를 놀리는

깜짝 쇼였을 거라고 기대했던 것 같다.

그래서였는지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것도

그때는 전혀 거슬리지 않았다.


집에 돌아와

나는 루피를 품에 안고 오래도록 앉아 있었다.

내가 기억하는 한

가장 오래 안아본 시간이었을 것이다.


루피는 너무 왜소해져

오래 안고 있어도 팔이 아프지 않았다.

나는 부드럽게 달래기도 하고

다그치기도 했다.


“이제 그만… 일어나.

나 속상하게 하지 말고.”


바니와 심바는

알아차린 듯, 못 알아차린 듯

주변을 맴돌기만 했다.


내 배에 닿던 온기가

서서히 사라질 때

나는 알았다.

루피는 차가워지고 있었다.


그때 또 생각했다.

상자에 더 눕혀두었으면 어땠을까.

조금 덜 안아줬으면 어땠을까.

내가 너무 귀찮게 안고 있었던 탓이었을까.


분명 깨어날 것 같았는데,

모든 게 내 탓인 것만 같았다.


루피의 눈은 끝까지 감기지 않았다.

나는 손가락으로 조심스레 눈을 감겨주려 했지만

눈꺼풀은 감기지 않았다.

그게 원망처럼 느껴져

마음이 더 아파왔다.


며칠 더 두고 볼까도 생각했지만

그건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살아 있을 때 오고 싶었을 집을

이렇게 데려왔다는 사실이

너무 미안해서 나는 빠르게 장례를 결정했다.


장례식장으로 가는 길에는

비가 더 세차게 내렸다.

나는 루피와 뒷좌석에 앉았다.

루피의 얼굴과 털의 감촉을

잊지 않으려고 오래도록 쓰다듬고 쓰다듬었다.

병원 냄새까지도.


장례식장에 도착하자

모든 준비가 너무 빨랐다.

사진과 꽃과 장식.

그 속도가 현실을 더 비현실로 만들었다.


루피는 마치 모든 걸 받아들인 아이처럼

눈을 감았다.

내 마음이 아직 따라가지 못했는데

루피는 먼저 준비를 끝낸 것 같았다.


나는 “잠시만요”를 열 번 넘게 외치며

마지막 인사를 몇 번이나 되돌렸다.


루피의 관이 화로로 들어갔다.

그렇게 진짜 작별의 순간,

루피의 감촉이 갑자기 희미해졌다.

손끝에서 무언가 빠져나가는 것처럼.


장례식장은 비교적 고요했다.

어쩌면 내 울음이 너무 커서

다른 방의 울음소리까지 잠시 멎는 것 같았다.


어느 한쪽에서는

토끼인지 햄스터인지의 장례가 진행되고 있었고

주인은 오지 못했는지

핸드폰으로 모든 걸 중계하고 있었다.


그때 나는 알았다.

슬픔은 반려 동물 크기에 비례하지 않는다는 걸.


루피는 작은 항아리로 돌아왔다.

올 때는 분명 셋이었는데

갈 때는 사람 둘과 항아리 하나뿐이었다.

그 사실이

또다시 나를 무너뜨렸다.


집에 오는 길 내내 숨이 가빠졌다.

머리가 흐릿해졌다.

호흡곤란이 왔다.


나는 집 근처 응급실에 갔다.

진정제를 맞고 돌아온 후,


다시 미친 사람처럼 울다가

잠깐 진정되었다가 또다시 무너지기를 여러 번.

그걸 몇 시간쯤 반복한 뒤

나는 두 번째 응급실로 향했다.


루피를 보낸 날,

나는 난생처음 응급실을 두 번이나 갔다.






밤이 깊어

집 안의 불을 모두 끄고 한참을 가만히 앉아 있었다.


루피가 자주 식빵을 굽던 자리에는

아직 루피의 체온이 남아 있는 것 같았다.


그 자리에 여전히 루피가 머물고 있는 것만 같아서

나는 아무 말도,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루피야,

나의 가장 불안하고 외로웠던 시절을 함께 해준

사랑하는 나의 첫 고양이 루피야.


사랑한다는 말로도

미안하다는 말로도

한참 모자라

아직은

너를 안고만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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