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Ep22. 마지막 이야기 : 남겨진 우리들

by 베리바니


루피가 떠난 집은, 마치 누군가 소리만 골라내어 사라지게 만든 풍경 같았다.


바니의 행동은 평소와 다름없었지만, 심바는 소리 없이 집안 구석구석을 유령처럼 배회했다.


루피가 남긴 빈자리를 확인하는 것 같기도 했고, 더 이상 만져지지 않는 흔적을 수집하는 것 같기도 했다.


나는 불을 켜지 않은 저녁 거실에 자주 앉아 있었다.

어둠이 거실 끝단부터 차오르는 것을 멍하니 바라보는 것이 유일한 일과였다.


나사가 빠진 시계처럼, 혹은 필름이 끊긴 영사기처럼

그렇게 1년이라는 시간을 흘려보냈었다.


눈을 감으면 2022년 8월 29일의 공기가 만져질 듯 선명하다.


그날의 공기는 유독 무겁고 눅눅했으며, 루피의 부드러운 털의 감촉 사이로 서늘한 병원 냄새 같은 것이 섞여 있었다.

세상은 아무 일 없었다는 듯 흘러갔지만, 나의 시간만은 여전히 그 여름날의 끝자락에 멈춰 서 있었다.


야속하게도 꿈에 한 번을 나타나지 않던 루피는, 나의 볼멘소리를 듣기라도 한 듯 딱 한 번 나를 찾아와 주었다.

특별한 말은 없었다. 다만 이제 그만 편해져도 괜찮다는 듯, 잠시 머물다 다정하게 흩어졌다.


여전히 나는 마음속으로 루피를 안고 산다.


가끔 나도 모르게 루피를 부를 때면 심장이 덜컥 내려앉고 숨이 멎을 것 같기도 하다.


그럼에도 나는, 우리는, 제법 잘 살아가고 있다.


눈이 흐릿해지고 뒷다리에 힘이 빠졌어도 먹는 것만큼은 늘 진심인 바니. 그리고 좀처럼 곁을 내어주지 않던 까칠한 심바는 요즘 부쩍 루피를 닮아간다.

가만히 나를 빤히 쳐다보다가, 짧은 울음소리를 내며 내 옆으로 올라와 앉는다. 루피가 늘 그러했던 것처럼.


그 온기를 느끼며 생각한다.

우리는 여전히 같은 하루 안에 머물러 있다고.

루피가 남긴 다정한 습관들 속에서, 우리는 매일 소리 없이 연결되고 있다고.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