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피의 몸이 보내던 말
시작은 링웜이었다.
이름조차 낯선 곰팡이가 루피의 뒤통수 쪽에 조그만 구멍을 내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새끼손톱만큼의 크기가 며칠 지나지 않아 점점 넓어지는 것 같았다.
곰팡이성 피부염이라 사람이나 다른 동물에게 전염된다기에, 나는 연고를 바르고 최소한의 격리 조치만을 취했다.
이 정도면 금세 좋아질 것이라고 가볍게 생각했다.
삼일쯤 지났을까 먹던 약을 자주 게워 내는가 싶더니, 이제는 밥을 먹지 않고 곁으로 다가와 애교만 부린다.
좋아하는 츄르도, 정성껏 구워준 장어도, 모두 입 끝에서 고개를 돌렸다.
먹고 싶지만 속에서 받지 않는 듯한 절망적인 몸짓. 다시 한번 집 근처 병원을 찾았다. 황달 수치가 올랐으니 억지로라도 음식을 먹여야 한다고 했다.
하루 입원 후 루피는 다시 내 품으로 돌아왔다.
집으로 돌아온 루피는 이제 주사기로 강급을 하는 상태가 되었다.
움직임은 많지 않았고, 그저 누울 곳만을 찾아다녔다.
주사기를 들고 옆으로 가면 ‘야옹—’ 하고 고개를 돌렸지만, 큰 저항 없이 받아먹는 착한 반항아였다.
그렇게 밥과 약을 먹인 지 이틀째. 먹은 것을 게워내기 시작하더니, 부쩍 나의 손길을 귀찮아하는 것이 느껴졌다. 어느새 루피의 초록색 눈동자는 황갈색처럼 변해 있었다.
나는 근처 24시간 동물병원을 찾았다.
다시 진행한 검사 소견은 작은 병원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집에서 관리하기 어려울 테니 입원을 권한다는 내용.
나름 여러 지점을 운영하고 있는 큰 병원에 속한 수의사라 그런지 나이가 제법 어려 보였음에도 루피의 병세에 대해 ’ 1~2주일이면 수치는 정상화될 것이지만, 혹시 모르니 경과를 지켜보는 기간까지 총 3주를 입원 기간으로 생각하라 ‘며 아주 당차게 호언장담했다.
루피보다 더 심한 친구들도 2주 안으로 정상화되었다면서.
너무도 자신 있게 말하는 그 태도가 되려 건방져 보이기까지 해서 믿음이 가지 않았지만 멀리 인천까지 루피를 데려가기도 어려운 상황이었기에 그냥 그 말을 믿어보기로 하고 루피를 맡겼다.
그렇게 일요일 밤 루피를 병원에 두고 나오는 길, 마음이 너무 내키지 않아 구시렁거렸지만, 신랑은 그래도 24시간 의료진이 있으니 잘 돌보아주지 않겠냐며 나를 달랬다.
나는 다음날부터 매일 면회를 갔다. 담당 수의사가 조금씩 좋아지고 있다고 말했음에도, 루피는 하루가 지날수록 수척해지는 것 같았다.
그래도 밥도 잘 먹고 배변 활동도 괜찮다는 말에, 나는 유리문 밖에서 짧은 인사만 나누었다.
빨리 나아 집에 가자며, 걱정을 끼치는 말썽쟁이인 양 장난스러운 푸념도 던져보았다.
괜히 유리문을 열어 안기라도 하면 루피가 더 불편해질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토요일 밤, 간만의 주말을 즐기고 난 뒤 술병이 났다. 일요일 면회를 하루 쉴까 잠시 고민했지만, 무거운 몸을 이끌고 느지막한 오후 동물병원을 향했다.
혹시 조금 더 빠른 호전으로 오늘이나 내일쯤이면 루피가 괜찮아져서 퇴원 후 집에서 돌볼 수 있을 거라는 기대를 안고말이다.
병원에 도착해 면회를 간 후, 루피가 소변 실수를 했다는 황당한 이야기를 들었다. 입원실에 깔아 둔 패드 위에 루피가 그대로 엎드려 있는 것이 보였다.
아이를 좀 봐야겠다며 유리문을 열고 루피를 안았다. 이대로 데리고 집에 가고 싶다는 충동이 일었지만, 혹시 상황이 더 나빠지면 나의 섣부른 선택을 평생 후회하며 나 자신을 원망할 것 같았다.
나는 의료진에게 루피가 오줌 위에 누워있다며, "이건 안 치워주시는 거냐"라고 소심하게 항의했다. 너무 강성이면 우리 루피가 혹시라도 피해를 볼까 봐 애써 참았으나, 속으로는 울화통이 터졌다.
루피는 입원 내내 콧줄을 끼고 있었다. 그 모습이 너무나 마음 아팠다. 우리 깔끔쟁이 루피가 오줌 범벅이 된 채 배를 깔고 누워있다니.
나는 배도 좀 닦아달라고 요청했다. “치료 중인 친구가 있어 그 처치만 끝나면 할 참이었다”는 답변에 나는 머쓱해졌다.
매일 유리문을 사이에 두고 눈만 맞추다가 유리문 밖에서 보는 게 일주일 만이라 그런지, 루피는 나를 원망의 눈으로 보는 것 같기도 하고, 그저 멍한 것 같기도 했다. 힘없이 추욱 쳐진 몸을 안고 있으려니 우리 루피가 아닌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살짝 눈물이 나려 했지만 괜스레 센 척을 하며,
"나에게 삐쳤어도 할 수 없어. 다 너를 위해 그런 거라고." 나는 핀잔주듯 루피에게 속삭였다. "이 돈덩어리, 빨리 나아야 같이 집에 가지! 누나 내일 또 올게."
미안하고 속상한 마음에 핀잔을 건네고는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 온 나는 신랑에게 또 이런저런 말을 쏟아냈다.
걱정인지, 분노인지, 미안함인지
스스로도 구분하기 어려운 마음들이
뒤죽박죽 얽혀 있었다.
그날은 병실 유리창 너머로 잠깐동안 루피를 안아본 탓인지 집에 도착한 뒤에도 한동안 마음이 가라앉지 않았다.
병원에서조차 한 번 고집을 부리지 못한 나 자신이 못내 분하기도 했다.
그래도, 나아지기만 한다면…
7일째 밤.
그리고 앞으로의 7일.
이제 곧 루피가 다시 내 품으로 돌아오는 그날을 기다리며 나를 조금 더 다독거리다 새벽 늦게서야 느릿하게 잠에 들었다.
루피는
오늘 나보다 조금 더 편안하게
잠들었기를 바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