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니의 눈, 그리고 2주의 기록
루피의 미세한 재채기가 겨우 멎는가 싶더니,
마치 질투라도 하듯 바니가 벽에 몸을 퉁퉁 부딪치며 걷기 시작했다.
발을 떼는 움직임이 어딘가 불안정했다.
분명 오전에만 해도 괜찮았는데. 갓 잠에서 깬 몽롱함일까
아니면, 생각지도 못한 야맹증 같은 것일까.
심장이 쿵, 하고 아랫배로 떨어졌다.
핀볼처럼 이리저리 부딪치는 바니를 세게 끌어안고서, 나는 그저 어찌할 바를 몰라 발끝만 동동 굴렀다.
결국 새벽의 병원만이 유일한 선택지가 되었다.
청라의 동물병원까지는 45분 남짓. 담당 의사는 부재중이었고, 당직 야간 의사에게 다급하게 허둥대며 상황을 설명했다.
바니는 그렇게 병원에 남겨졌다.
내일 아침의 출근을 이유로 우리는 잠시 떨어져 있어야 했다.
다음 날 아침, 하필 담당 의사가 쉬는 날이었다.
바니의 눈 상태가 급격히 나빠졌으니 안과 전문 병원에 가보라는 소견.
급한 대로 청라 근처 안과전문의가 있다는 두세 곳의 병원을 돌아다녀봤지만 명쾌한 얘기는 듣지 못한 채 일단 안약 처방만 받고, 그다음 날 나는 바니를 데리고 소문난 안과 전문 병원을 찾아 분당으로 향했다.
이미 녹내장과 백내장이 동시에 깊숙이 진행 중이라는 말. 시력은 돌아올 가능성이 희박하다고 했다. 다만, 아주 미세하게 남아있는 시신경에 작은 희망의 끈을 걸어보자며, 2주간 안약을 넣고 경과를 지켜보기로 했다.
바니를 언제나 내 시야에 두기 위해, 아기 침대까지 샀다. 그 안을 작고 포근하며, 어디에도 부딪치지 않을 안전한 공간으로 만들어 주었다.
그 2주 동안, 나는 절망이라는 벼랑 끝에 바짝 붙어 앉아, 바니의 곁을 떠나지 않았다.
한 줄기 빛이라도 비치기를 기도하는 심정으로, 정해진 시간에 안약을 투여했다.
육아를 한다는 것이 이런 기분일까. 잠에서 깨 눈이 완전히 떠지기도 전에, 습관처럼 안약병을 찾아들고, 아기 침대에 누운 바니의 눈을 먼저 살폈다.
어떻게 이렇게 될 때까지 나는 눈치채지 못했을까. 루피 때도 그랬지만, 매일같이 사랑한다고 속삭이면서도, 아이들의 작은 아픔 하나를 알아차리지 못했다는 무거운 자책감이 나를 가장 짓눌렀다.
2주 후, 병원에서 돌아오던 길.
시력은 완전히 상실한 것 같다는 최종 통보를 들었다. 하늘이 무너진다는 그 흔한 표현은, 이런 순간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겠지. (안압이 올라가면 통증이 심하니, 그 안압을 낮춰주는 것 외에는 달리 해줄 수 있는 것이 없다고 했다.)
이제, 나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아무리 생각해도, 다음 답이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열심히 안약을 넣어주었는데, 왜.
억울함과 화가 치밀어 오르다가도, 그것은 금세 미안함으로 변해 나를 덮쳤다. 하루에도 몇 번씩, 감정의 기복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우리 바니는 얼마나 아플까. 얼마나 불편하고 답답할까. 그 작은 마음속 이야기를 내가 직접 들을 수 없다는 사실이, 나의 마음을 더욱 아프게 했다.
하지만 바니는 나보다 훨씬 강하고 씩씩했다.
안 보이는 것에 나름대로 익숙해진 모양인지, 가끔은 눈이 보이는 친구처럼 사물을 피해 돌아 걷기도 했다. 물론, 그러다가도 겁 없이 직진하여 벽에 '쾅' 하고 부딪치기도 했지만.
나는 집 안의 장애물을 최대한 치웠고, 벽 쪽에는 부드러운 스티커를 붙여주었다. 완벽하게 해 줄 수는 없었지만, 그저 할 수 있는 일들을 했다.
삑삑이를 물고 와 내 머리맡에 휙 던지던 바니의 모습.
트레이드 마크 같던, 그 해맑은 웃음도.
이제는 모두 사라졌다.
엉뚱한 천방지축 말썽도 더는 없다. 산책길에서 비둘기를 보아도, 바니는 더 이상 좇지 않는다.
바니의 빛을 잃은 시선이 괜스레 서글프게 다가올 때면
‘아아, 조금은 얌전해졌구나.’
나는 애써 그렇게 생각하려고 한다.
산책길에서 바니를 보고 귀엽다 다가오던 사람이, 눈을 보고서는 흠칫 놀라 돌아서는 것. 그 모습에도 이제는 점차 익숙해지고 있다.
그래도 바니는 여전히 귀엽다. 눈에 빛이 사라졌지만, 너는 여전히 내 세상의 가장 환한 중심이다.
언젠가 한 친구가 바니의 눈을 보며, ‘어머, 바니 눈에 달이 들어 있네’ 하고 말해주었다. 나는 그 친구의 따뜻한 마음이 정말 보름달과 같았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가끔 바니와 눈을 맞추면, 그 말이 떠올라 마음이 따뜻해진다.
나는 오직 이렇게, 빈틈없는 소망 하나만을 붙들고 산다.
부디 아프지 말고, 아주 오래오래, 내 곁에서 함께 있어주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