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 길 돌아 다시 시작하는 젊은 애엄마의 꿈
아이의 진로 지도를 위해서는 10대 초반부터 면밀한 관찰이 필요하다.
뻔한 이야기인 것 같지만 10대 후반, 20대 초반에 전공 선택이나 직업 선택을 두고 아이가 고민한다면, 혹은 본인이 고민 중이라면, 당사자가 10대 초반에 무엇을 하고싶다 했었는지, 담임교사로부터 어떤 부분에서 반복적인 칭찬을 들어왔는지, 어떤 분야에서 주로 상을 받아왔는지를 반드시 상기해야 한다.
서른 둘 먹은, 일명 경단녀인 내가 다시금 새로이 뭔가 해보겠다며 매달리고 있는 것들이 결국 초등학교 3학년때부터 꿈꿨던 작가, 기자와 일맥상통하는걸 보면 왜 이리 먼 길 돌아왔나 싶다.
초등학교 6년 내내 성적표에서 빠지지 않은 멘트가 글쓰기 쪽에 소질이 있다는 것이었고, 중학교 들어가서는 그 분야의 상들은 독후감이며 논술, 백일장 등 교내외에서 두루두루 휩쓸었다고 정말.
그런데도 나는, 내 취미특기보다는 현실, 취업 등을 더 고려하여(아부지의 장기간 진로지도하에) 경제학을 전공했다.
난 언론정보학을 전공하고 싶었는데, 아부지는 "어떤 분야의 전문가가 되어서 그것에 대한 글을 쓰라"고 설득하셨다. "안 되면 공무원이라도 할 수 있게-" 라는 코멘트와 함께...
매우 현실적인 진로지도였다. 원망할 생각은 없다. 내가 내 꿈에 확신을 갖고 능동적으로 움직이지 못 했던 점이 후회스럽고 아쉬울 뿐.
그런데 경제학은 정말ㅋㅋ 너무 생뚱맞았던것.
대학교 다니면서 전공 교수 누구와도 약간의 친분조차 쌓지 못했다. 전공과 교양의 학점차가 심하게 났다. 전공 재수강에 치여서 복수전공은 엄두도 못 냈다. 오히려 글쓰기 교양을 듣는 동안 강사님이 발표도 많이 시켜주시고 칭찬도 많이 해주셨다. 그럼에도 당시의 나는 또 왜 그리 당장의 돈벌이를 중요하다 생각했던건지..
결국 금융계통으로 취업하는 일반적인 상경계 졸업생이 되었다. 그러나 4년 4개월 동안 회사에서 뭔가 잘했다고 포상 비슷하게라도 받아본 것은 어이 없게도 독후감 뿐이었다ㅎㅎ 2천명 넘는 회사에서 4명 독후감이 게시판에 공개되었을 때의 느낌은 참 묘했다.
(다들 그렇게 대충 써낸건가 싶기도 하고..?)
길지 않은 직장생활을 하는 동안, 나의 삶은 참으로 무기력했다. 나에게 일이란 그저 돈벌이 수단이었기 때문에 적당히 살 만큼만 벌면 그만이었다. 인정받고자 하는 욕구도 전혀 없었다. 그렇게 존재감 없는 말단 사원으로 살았다. 지점장님은 내가 너무 낙천적이라 하셨지만 글쎄, 그냥 그 일로 평가를 받는 자체가 나에게는 무의미했다.
자기 직업에 대해 부정적인 태도만 보이는 20대의 딸을 보며, 어느날 아버지는 뜬금 없이 "너 기자 하려고 하지 않았었냐" 하는 말씀을 던지셨다. 오로지 공무원 이야기만 하셨던 아버지가 보기에도 열정 없는 딸이 많이 안타깝고 안쓰러우셨나보다.
나는 뒤늦게 정신차리고 용기를 내서 "홍보팀으로 보내달라"는, 금융권 지점 직원으로서는 살짝 개념 상실한 면담을 했다. 상품개발쪽이나 퇴직연금, 업무지원팀도 아닌 홍보팀으로 보내달라고. 나는 홍보팀에서 사내보 제작에 동참하고 싶었다. 그거라면 금융권에 몸담고도 내 일을 하는 느낌일 것 같았다. 또한 그 경력이면 금융권을 벗어나는 다이나믹한 이직이 가능한 부서이기도 했다!
대신 회사나 지점에서 '키워주는' 인재풀에서는 벗어나는 것이지ㅎㅎ.. 그 때 지점장님 표정이 잊혀지지 않는다.
그렇게 용기를 내기 시작했는데... 홍보팀 T.O가 나기도 전에 지점이 문을 닫게 되었다. 나는 다른 지점에 발령이 났다. 그렇게 되면 가서 새로운 지점장에게 그 어려운 이야기를 다시 꺼내야 하는거다. 그보다도 결혼 후 3년간 두번의 유산 후 어렵게 생긴 아이가 또 불안불안했다. 출근만 하면 하혈이었다. 그 상황에서 일 많기로 유명한 새 지점에 가면 결과는 뻔했다.
그 외에도 몇 가지 복잡한 이유로 결국 전업주부의 길을 선택했다.
꿈이나 적성은 옛말이 된 채로 블로그와 SNS에 그날그날의 짤막한 육아 이야기와 일상을 담는 것을 소소한 취미로 여기며 만 4년이 또 지났다.
대신 그렇게 지켜낸 첫째를 포함한 토끼같은 딸 둘을 예쁘게 키우고 있다.(비록 매일매일 사랑과 전쟁을 찍는 중일지언정...오죽하면 내 브런치 육아매거진 이름이 사랑과 전쟁이냐)
아마 내 생애 가장 큰 업적일 나의 분신들.
아이들을 키우면서 나는, 내 아이들이 자라는 동안 아이들의 꿈과 적성을 놓치지 않으리라 다짐한다. 그리고 나 역시, 시간은 걸릴지라도 좀 더 방향성을 가지고 다시 나아가야겠다고 처음으로 새삼스럽게 용기를 내어본다.
아무리 아무리 생각해봐도 내 남은 인생이 너무나도 길고, 20대에 길을 잘못 선택해서 한 번도 뜨거워져본 적 없는 미지근한 인생으로, '엄마'라는 수식어 하나만 달고 늙어버리기엔 너무 억울하므로.(그렇다고 훌륭한 엄마도 아니고ㅠ)
딸들에게 좋은 멘토가 되고싶다는 욕심도 한 몫.
그리고 나름대로 조금씩이나마 행동에 옮기고 있다.
2016년, 나는 서울시 산하 공공기관의 시민 홍보조직에 소속되어 활동을 시작했고, 육아잡지 중 정기구독자 수 1위라는 잡지사의 엄마에디터 30명 중 하나로서도 소소하게 지면에 이름을 비치고 있다. (무지무지 소소하게ㅋ)
전공도, 경력도 없이 하려다보니 참으로 미미한 시작이다. 하지만 그 어느 때보다 나답게 살고있는 기분이다. 꿈이 있는 것만으로 자존감이 높아짐을 느낀다.
20년 후의 내가 돌이켜보면 지금의 나는 얼마나 무한한 가능성을 지닌 존재인가, 얼마나 많은 기회를 가지고 있는가.
모든 청춘들이(꼭 나이가 젊어야 청춘은 아니다) 20년, 30년 후에 후회 없이 과거를 바라볼 수 있도록 용기를 내길 바란다.
그리고 자녀의 진로를 지도하는 데 있어서도 어리다고 넘겨버리기보다는 그 꿈에 귀 기울이고 가능하면 지지하고 응원해주었으면 한다.
나와 남편도 꼭 그런 부모가 되면 좋겠다.
P.S.
나를 지지해주는 남편에게 고맙다.
우리 신랑은 10살 때 무엇을 하고싶었을까?
현실에 치이는 가장이라도 꿈을 생각할 약간의 여유는 줄 수 있는 마누라가 되어야 할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