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의 건강이 때린 첫번째 뒷통수
2011년 봄, 우리는 결혼 3년차 신혼을 즐기고 있었던 평범한 회사원 부부였다. 에너지 넘치는 사람들은 아니었어도 공원 산책도 자주 하고, 맛있는 것도 먹으러 다니고, 재미있게 살았다.
둘 다 스트레스 많은 동종업계에 종사하고 있었기 때문에 서로의 일에 대한 이해도도 높았고, 그만큼 힘든 것에 대해 다독여주며 알콩달콩 열심히 지내고 있었다. 단 하나 아쉬운 게 있었다면 2년 넘게 아이가 생기지 않는다는 것 정도였을까...
어느 직장인이나 그렇듯 둘다 항상 심신이 피로했다. 하지만 어느 순간 부터인가 남편의 피로가 점점 심해져갔다. 아마도 연초에 장염을 한 차례 앓고 응급실까지 다녀온 다음부터 부쩍 심해졌던 것으로 기억한다.
다른 이야기는 없이 피곤함만 호소하는 남편을 위해 나는 보약을 한 첩, 통 크게 쐈다. 물론 남편 회사 근처인 강남의 잘 나간다는 한의원들 중 한 곳에서 직접 진맥을 보고 적지 않은 금액을 지불해서 받은 약이었다. 신장이 약해져 있다, 독소를 빼야 한다며 받았던 그 약을 복용하고 일주일 넘게 설사를 해대던 남편. 단순히 독소가 빠지는 과정이라고 하기엔 뭔가 석연찮았다. 체중이 급속도로 줄고 안색이 나빠졌다.
며칠 후, 남편은 회사에 있던 내게 메신저로 어지러움과 토할 것 같은 느낌을 호소하더니 자기 지금 응급실에 가봐야겠다고 했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이지만 자기가 운전해서 가다가 신호대기 중에 정신을 잠깐 잃기도 했었단다.
회사에서 일을 대강 정리하고 한 시간쯤 일찍 퇴근해서 응급실로 달려갔다. 또 장염인가? 뭔 장염이 이렇게 잘 걸려? 한약이 안 받나? 너무 세게 지은거 아니야? 자리만 잘 차지한 돌팔이 아니야? 몸보신좀 해주려고 마음 써서 해준 약이 남편을 힘들게 한 것 같아 마음이 어지러웠다.
그날 따라 만원이었던 응급실... 남편은 침대에 눕지도 못하고 얼굴이 하얗게 질려 사색이 되어 의자에 앉아 있었다. 의식도 오락가락 하는 것 같아 보였다. 생각보다 훨씬 심각한 상태에 소스라치게 놀란건 당시 스물일곱, 이런 비슷한 상황을 한 번도 겪어본 적 없는(저번 장염 때 응급실 처음 와보고 이번이 두번째인) 나였다. 병원을 뛰어다니며 상태가 너무 안 좋은데 좀 눕게 해달라고 부탁하고 돌아다녔던 기억이 난다.
침대에 자리잡고 눕기 전에 했던 혈액검사부터 결과가 나왔다. 지금 장염이 문제가 아니란다. 적혈구, 백혈구, 혈소판 모두 정상 기준치의 반도 안되게 떨어져 있었다. 혈소판은 반의 반 밖에 안 남은 지금은 넘어지기만 해도 지혈이 안되어 응급상황이 올 수 있다고 했다. 병실이 없어 응급실에서 지새웠던 첫 날, 밤 사이에 수많은 검사를 했다. 소변줄을 꽂아 소변을 받고 있는 주머니에... 시뻘건 소변이, 소변이라기보다는 핏물이 밤새 모였다. 기가 막혔다.
담당 레지던트? 인턴? 한 분이 날 조용히 불러 조심스레 이런 저런 수치에 대해 설명했다. 지금에 와서는 앞 뒤 설명은 기억 안 나고 자칫하면 돌아가실 수도 있다고 했던 그 말만 기억난다.
정신 없는 응급실 안에서 구급차에 실려온 누군가가 심장충격기를 이용해 심폐소생술을 받다가 목숨이 다하는 과정이 저 너머에서 생생하게 들려왔다.
새벽 3시 경, 검사가 어느 정도 끝나고 남편도 안정이 되었을 무렵, 나는 택시를 타고 집에 와서 정장을 갈아입고 씻고 다시 병원으로 갔다. 아침이 되어 달려오신 시부모님께 남편의 입원 수속을 맡기고 나는 또 출근을 했고, 며칠간 휴가를 내서 다시 병실로 갔다.
"보호자가 옆에 꼭 붙어 있으셔야돼요. 빈혈이 심해서 넘어지기 쉽고, 그랬다가 다치기라도 하면 지혈 안돼서 큰 일 나요."
열흘간 신장조직검사를 비롯해서 엑스레이며 CT 등등 말로만 들었던 검사들이 이어졌다.
피는 수시로 채혈해 갔던 것 같다.
만성신부전증.
이미 석 달 전에 장염으로 응급실 왔을 때에도 신장 수치가 나쁘다고 정밀검사 권유를 받았다는 사실이 뒤늦게 드러났다. 남편은 무슨 강심장이었는지 장염으로 인한 일시적인 문제일거라고 단정 짓고 본인 책임 각서까지 쓰고 퇴원을 강행했다고 한다. 그럼 대체 언제부터인거지? 남편 입원 중에 집에 왔다갔다 했던 나는 책장에서 1년 전인 2010년 건강검진표를 꺼내보았다. 정상 수치를 넘어섰다.
"재검사가 필요합니다."
그러나 그 말에는 꼭 미묘한 말이 붙어서 사람을 안일하게 만든다.
"피로에 의한 일시적인 현상일 수 있습니다."
이 말 한마디 때문에 이 무신경한 인간이 재검사를 안 받고 신경도 안 썼던 것이리라.
피곤하면 수치가 나쁘게 나오기도 하지만, 수치가 정상이 아니기 때문에 피곤한 것이라는 생각을 전혀 못 했던 것이리라. 이해는 하지만 답답하기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재검 뜨면 무조건 시키는대로 재검하는 나와는 너무 다른 이 남자. 진작에 내가 건강검진표를 직접 챙겨서 잔소리를 해줘야 하는 사람이었구나.
그리고 2009년, 결혼 직후의 건강검진표를 펼쳤다. 역시 정상 범위를 약간 넘어섰다.
간사하게도...
'나 때문은 아니구나, 건강했던 사람이 나랑 결혼하고 나빠진건 아니구나.'하는 생각에 안도했다. 시부모님 뵐 낯이 없었는데... 조금은 고개를 들 수 있겠다 생각했다.
남편을 혼낼 준비를 하고, 남편의 건강에 대한 무신경함을 시부모님께 일러바칠 준비를 하고, 나는 다시 병원으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