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남편에게 신장이식 D-day

수술... 그리고 72시간

by 육부인

표지 이미지는 나 입원하던 날, 먼저 입원해있던 남편과 상봉을 기념하며 찍었던 사진.


3시간이 넘는 대수술...이라 생각했지만 신장이식은 이식수술들 중에서는 난이도가 가장 낮다고 한다. 끊었다가 연결할 것도 동맥, 정맥, 요도 세개뿐이고...


10월 30일 오전 7시,
수술 대기실에 걸어 들어갔다.


하얀 천장... 침대 위마다 성경 구절이 하나씩 써 있었다. 덤덤하던 사람들도 약해지는 순간이다.


수술대에 누워보니... 왜 문학작품들에서 수술대가 차갑다고 표현되는지 알 것 같았다. 약간의 긴장 때문인지 유독 차게 느껴졌다. 이어지는 전신마취가스에 기절했다가... 김유진님 일어나세요- 소리를 듣고 회복실에서 어났다.

그리고 그간... 눈앞에 지옥이 펼쳐졌다. 배에 칼이 세개쯤 꽂혀있는 듯... 살려주세요.. 언제까지 이렇게 아파요? 라고 말하고 싶었으나 입 밖으로 신음조차도 뱉지 못할 상태였던 것. 낳을땐 40초 아프고 5분씩 쉬는 시간이라도 있었는데 이건 그것과 비교할 수 없는 고.. 나중에라도 험한 일 당해서 칼에 찔려 죽는 일은 없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더랬다. 때마다 더해지는 아픔에 숨도 제대로 못 쉬었다. 숨가쁘게 약들이 투여되고 진통제가 들어갔다. 몇 개는 이미 꽂혀있었고 새로 뭔가 주사를 하기도 했던 것 같다. 진통제가 들어가도 바로 고통이 줄어드는 것은 아니고, 시간이 지나면서 혼절할 것 같은 상황만 면하는 수준이었다.

옆에서 삑 하는 소리에 한번씩 흘깃 보니 혈압계가 최저 50대에 최고 148을 찍고 있었던걸로 기억한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억만겁처럼 느껴졌다. 옆에 또다른 수술환자가 실려왔고 그분도 말도 못하고 끙끙거리고 있었다.

저 사람도 나만큼 아픈가보다. 여기 정말 징한 곳이네. 그래도 저 사람은 소리가 밖으로 나오나보다. 오십보 백보지만.

삑 -

60에 130쯤...

사람들이 침대를 밀고 나갔다. 회복실 문이 열리고 엄마, 아빠, 시어머니, 시아버지 목소리가 들려왔다. 뭐라고 하는지 모르겠다. 눈 뜨고 괜찮다(?)고 평소처럼 겁대가리 없고 씩씩한 모습 보여드리고 싶은데 눈도 못 뜨겠다. 얼굴이 있는대로 구겨져 있는 것 같지만... 내 얼굴이 어떻든, 에라 모르겠다.


12시,
병실 복귀.


이제 겨우 신음만 내뱉는 상태로 그렇게 지옥체험을 하고 있는 시간...

입에는 축축한 거즈를 문 채 너무 힘들고 아파 눈을 지그시 감고 있으니 옆에서 엄마가 자지 말라고 난리다. 두 시간 동안은 자면 안된다는 소리는 나도 들었고 잘 수 있을 만큼 여유롭지 않아요...

며칠 전에 읽은 신장 공여자 수술 후기에서 '난 힘들어서 눈을 감았을 뿐인데 아버지가 자꾸 자지 말라며 흔들어서 더 아팠다'고 웃으며 써놓은 글을 봤던 기억이 났다. 아... 미리 이야기해둘걸 그랬나... 이 순간을 나도 나중에 웃으며 말할 수 있을까...


진통제는 목에 연결된 주사 바늘로 조금씩 투여되고 있었다. (목에다가는 언제 주사를 꽂아놓으셨나요) 하지만 진통이 심하면 버튼을 누를 때마다 약이 추가로 투여되고 15분만에 한번씩 일정량이 들어갈 것이며 그 이상은 아무리 눌러도 적정 한도 이상은 못 들어가게 되어있다는 소릴 들었다. 하지만 그렇게 확실히 들었는데도 그 버튼 나 달라 해서 한 손에 꼭 붙잡고 1분마다 눌러댔다. 의지할 것이 그 버튼 뿐이었다.


오후 1시경,
고통으로 정신이 혼미한 와중에 간간이 남편 소식이 들려왔다.


박서방은 이제 나왔다.

혈압이 높아서 회복실에 오래 있었다.

나오자마자 너 나왔냐 물어보더란다.


대체적으로 수혜자보다 공여자의 고통이 더 심하다는 말이 있다. 수술부위의 차이인지, 붙이는 것보다 떼는게 데미지가 커서인지, 아니면 주는 자와 받는 자의 여유에서 오는 정신력의 문제인지는 확인할 길이 없다. 그런데 수술 D+3일인 오늘 같이 후기를 나누다 보니 이 사람은 회복실에서도 간호사에게 어디가 아프니 진통제를 놔달라 구체적으로 말을 했고, 병실 침대로 갈아 탈 때 자기가 스스로 좀 움직이기도 했다는 것이다. (나는 남자 둘이 이불 통째로 들어 옮겨주는데도 식겁했는데)


오후 5시쯤 되고 조금은 의사표현이 가능해졌을 무렵...(손은 여전히 1분에 한 번씩 진통제 버튼을 누르고) 친정엄마가 "박서방 전화 걸어줄까?"하는데 그러겠다는 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TV도 핸드폰도 다 싫고 그냥 누워있었다.


남편은 지금 어떤 상태일까 하는 궁금함은 의식이 깨어나는 그 순간부터 계속 있었다. 수술은 잘 된건지, 출혈이 심하다거나, 혈관 갯수가 달라 어려움이 있지는 않았는지 등... 실제로 남녀 혈관에 차이가 있어 혈관이 조금 짧아 다소 어려움이 있긴 했지만! 수술은 잘 끝났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그리고 D+3일,
내 신장은 지금 열일 중


신장병 환자들이 수년간 병원을 들락거리다 보면 본인과 가족들이 신장에 관한 한은 돌팔이 의사쯤은 되는데(ㅋ) 나도 수술 다다음날 내 크레아티닌 수치를 물었더니 의료계 종사하시냐는 물음을 받았다. 그랬다가도 "아~ 남편분 때문에 아시겠구나~" 하시던 담당의.


약간씩 차이는 있지만 보통 0.5~1.2 정도를 정상 범위로 보는 크레아티닌 수치.

나는 수술 전 0.6에서 0.77이 되었고, 남편은 11 가까이도 간 적 있었던 크레아티닌이 둘째날 2.2로 뚝, 셋째날 1.5, 넷째날 1.2를 기록했다.

이렇게 보람찰 수가 있나..ㅎㅎㅎ

내 몸은 곰탱이같아도 몸 속은 참 부지런히 움직이고 있었구나 생각하며 저기 옆 병동에 가 있는 내 신장에게 계속해서 응원의 박수를 보낸다.


어제 아침, 수술 3일차에 휠체어를 타고 남편 병실을 다녀왔는데 오늘은 엄마 팔짱만 살짝 끼고 어정어정 걸어서 또 다녀왔다. 저녁에는 선물받은 비타500을 시부모님께 드리러 또 가볼까 한다.


나는 건강해서 받은 수술이었지만,
남편은...


수술 후 정신력도 대단했고 워낙 부지런한 타입의 사람이라 그런지 남편의 움직임도 좋다.

나보다 먼저 앉고, 나보다 먼저 걷고, 먼저 옆으로 누워 자고, 또 폐활량도 수술 전으로 복귀 시켰다.

폐활량 측정 기구

내 신장을 적으로 인식하고 공격하지 못하도록 면역 억제제를 복용하며 면역 기능을 뚝 떨어뜨려 놓은 탓에 1인실에서 마스크를 쓰고 생활하고 있다. 백혈구 수치도 고의적으로 떨어뜨려 수술 상처나 주사 바늘 멍 자국이 쉽게 낫지 않는다.

얼핏 나보다 움직임이 좋아 괜찮아 보이지만, 가만 보면 나는 다 떼어버린 수액, 소변줄, 피 주머니를 모두 주렁주렁 달고 있다. 많이 안쓰럽지만 이것도 일주일만 더... 곧 예전 생활로 돌아갈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기쁨인지... 그러지 못하는 수많은 사연이 있는 이 곳에서, '행복'의 의미에 대한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누군가 했던 말씀처럼, 행복이 별거 있나.

먹고싶은 것 먹고, 가고싶은 곳 가고, 만나고싶은 사람 만나고... 그런게 행복이지.


잃기 전엔 그 소중함을 절대 알 수 없는 것, 건강.


남은 날이 더 긴, 30대 부부인 우리. 이제 건강 하나 꼭 붙들고 알콩달콩 백년해로합시다.

행복하게 살자.



자식들 간병하고 손주들 돌봐주시느라 고생하시는 부모님들 정말 사랑합니다.

진심으로 고맙게 여겨주셔서 저도 감사합니다.

또 이해하고 지지해주셔서 감사했습니다.

상황 이해하고 엄마 아빠 보고싶어도 잘 참고, 엄마 몸은 괜찮냐고... 집에 오면 휴지 한 장이 두 장으로 변하는 마술 보여주겠다는 우리 여섯살 큰 딸, 천지분간 못하는 네살 작은 딸도 고맙고...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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