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춘기가 끝나고, 수년 후 사춘기를 앞두고
힘들다, 어렵다, 오늘도 내 화를 다스리지 못 했다, 난 왜 이렇게 무능한 엄마이고, 넌 왜 이렇게 예민한 것인지...
온통 고민과 원망, 반성과 다짐으로 가득했던 나의 일기장.
그런데 나름의 고비를 넘고 관계를 회복하면서 사이가 좋아진다 싶더니, 아이는 금방 다른 사람이 되었다.
아직 여전히 고집 있고, 예민한 것은 그대로이지만 여섯 살이 되고나서 동네 사람들도 나한테 살짝
"딸내미 요즘 부쩍 순해진 것 같다. 많이 유해졌지?"
하고 묻곤 했다.
눈빛에서 독기가 없어지고 생글생글 잘 웃는다. 착해졌다.
덕분에 육아에세이에 늘어놓던, 아이에 대한 오만가지 상념이 쑥 들어간 한 해였다. 글감 가뭄이었다.
여섯 살의 개과천선.
"착해졌다"라는 말에는 많은 의미가 내포되어있다.
1. 자신의 감정 및 요구사항을 상세히 표현한다.
2. 논리적으로 정성들여 설득하면 수긍한다.(대충하면 오히려 화를 부르지만)
3. 상대방의 입장을 이해한다.
4. 적당한 타협이 가능하다.
5. 약속을 이행하고자 노력한다.
이 다섯가지를 간단히 줄여서 "대화가 통한다"고도 할 수 있겠다.
저 모든 것이 하나도 안 되면서 머리만 큰 다섯 살 초반까지는 사사건건 트러블이고 전쟁이었는데 이렇게 하나의 인격이 만들어져가는게 보인다.
그저 시간이 답이었나 하는 의문도 여러번 들었지만 역시 그 대답은 항상 'No'. 절대 아니지.
그렇다고 하기엔 그 동안 내가 아이와 부딪히며 고민하고 이것저것 시도하고 노력해본 시간들이 너무 억울하다. 분명 그 시간 동안 나도 아이아빠도 부쩍 자란 것이다. 부모로서 노하우를 습득하고, 아이를 인격체로 존중하는 법을 익힌 인고의 시간. 그게 괜한 수고는 아니었다.
일곱살이 된 지금은 엄청 공들여서 설득하지 않아도 어렵지 않게 수긍하고 스스로 타협안을 제시하는 모습에 항상 내가 깜짝깜짝 놀란다. 아직도 이러면 안 되는데 여전히 놀랍다.
"이해해줘서 고마워."
하면 아이가 싱긋 웃으며 화답할 때마다 어제보다 또 더 큰 오늘의 아이를 보는 것 같아 마음이 흐뭇하다.
언니만큼은 아니지만 역시 말이 안 통하고 고집불통 통제불능인 다섯 살 초반의 둘째를 보며, 넌 또 다르구나, 너랑 또 이 시간을 어떻게 헤쳐나가야 할까 마음이 무겁다.
하지만 첫째때와는 달리 끝이 보이는 레이싱이라 두 어깨가 훨씬 가볍다.
아자아자! 또 사람 하나 만들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