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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꾸는 나비 Oct 21. 2024

#6 흔들리는 날, 가장 따뜻하게 위로해 준 엄마

마흔, 나를 찾기 위한 두 번째 여행

다시 혼자가 된 후, 나는 부모님을 비롯한 가족을 온전히 마주할 수 없었다. 어디 가서 자랑까지는 아니더라도, 적어도 당당하게 이야기할 수 있게 해드려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다. 나는 그저 못난 아픈 손가락이 되어버린 것 같았다. 가족들에게 평범하지 않은 나를 들키는 게 가장 힘들었다.


나는 결국 행복을 선택했지만, 그 선택이 조금 이기적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까운 가족에게 추가로 고통을 안겨 준 것 같아서였다. 우리 꼬물이는 아빠를 많이 닮았다. 그래서인지 자연스럽게 주말마다 부모님을 찾아뵙는 횟수도 점점 줄어들었다. 차가워진 공기 속에서 숨 쉬는 것조차 답답했다. 발걸음이 가다 멈추고, 또 가다 멈추곤 했다.


행복을 선택하고 나서야 깨달았다. 나만 아픈 게 아니었다는 것을. 나 혼자 행복해지려고 인생을 바로 잡았더니, 다른 가족들의 인생은 조금 틀어져 버렸다. 미안했다. 남들과 다른 길을 걸으며 가족과 나에게 다가온 상처를 글로 치유할 수 있을까 생각해 봤다. 그러나 내 이야기를 마주하려 할 때마다 마음이 다시 닫히곤 했다.


첫 번째 인생의 여정을 무사히 마친 줄 알았지만, 나는 행복하지 않았다. 한참을 엉망으로 보냈고, 그 과정에서 나를 철저히 내버려 두었다. 혼자가 된 내가 걱정되었는지, 엄마는 시도 때도 없이 전화를 걸어왔다. 멀어져 가는 딸이 불안하셨던 것 같다.


원래 나는 등산이나 자전거를 타며 주말을 야외에서 보내는 것을 좋아했다. 하지만 행복하지 않았기에 더는 좋아하던 것들을 즐길 수 없었다. 내 대답은 언제나 "집이야"였다. 통화 내내 할 말도 없고, 짜증을 부리거나 가만히 침묵했다. 우리 가족은 연락이 뜸해도 잘 지내는 편이었지만, 그때 엄마는 매일 전화를 걸어왔다.


어느 날, 별것 아닌 일로 엄마에게 크게 화를 냈다. 내가 엄마에게 큰소리를 치다니, 엄마도 당황하셨을 것이다. 그러나 엄마는 가만히 내 화를 받아주시며, "네가 얼마나 힘들었으면 그랬겠어"라고 말씀하셨다. 내가 이렇게 마구 소리칠 수 있는 상대가 엄마밖에 없다는 사실이 더 속상했다. 알면서도 며칠을 그렇게 화만 냈다.


"내려놓으면 된다.
구태여 네 마음을 괴롭히지 말거라.
부는 바람이 예뻐,
그 눈부심에 웃던 네가 아니었니.
받아들이면 된다.
지는 해를 깨우려 애쓰지 말거라.
너는 달빛에 더 아름답다."


서혜진의 「너에게」 중에서...



엄마가 해주시는 말 같았다. 가만히 내 이야기를 들어주시고, 다독여 주는 엄마. 그 말에 나는 평생 흘릴 눈물을 다 쏟아냈다. 내가 우니까 엄마도 속상하시다며 함께 펑펑 우셨다. 아무리 모질게 해도 내 손을 놓지 않는 사람, 그분이 바로 '나의 엄마'였다. 그런 엄마를 울린 내가 너무나 속상했다.


너무 힘들어서 그만두고 싶다고 말했을 때도, 엄마는 한 번도 반대하지 않고 내 결정을 받아주셨다. 처음 말을 꺼낼 땐 무조건 반대하실 줄 알고 조심스러웠는데, 의외의 반응에 놀랐다. "힘들면 그만두어도 된다. 참는 게 능사는 아니다"라고 말씀하셨다. 내가 짜증을 부린다고 너만 힘드냐며 다그치지 않으셔서 고맙고, 또 고마웠다. 그렇게 삐뚤어진 나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손을 잡아준 엄마에게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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