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 나를 찾기 위한 두 번째 여행
나는 늘 평범한 삶을 꿈꿔왔다. 인생의 순리란 게 있지 않은가? 태어나서 학창 시절을 잘 마치고, 직장 생활을 하며 열심히 일하고,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그 아이가 자라 결혼하고 손주를 보는 것. 그렇게 삶의 끝을 맞이하는 것이 자연스럽고 당연하다고 믿으며 살아왔다.
그러나 어느 순간, 이혼이라는 예상치 못한 일이 내 삶에 찾아왔다. “우리가 이혼을 한다고?” 법원 가는 길에 그가 던진 말이었다. 기세를 선점하려는 듯 가볍게 던진 그의 한마디(너랑은 못 살겠다)가 내 인생의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계기가 될 줄은 미처 몰랐다.
인생의 흐름 중 한 부분이 어긋나기 시작하자 그 틈은 손쓸 수 없을 정도로 커져만 갔다. 내가 꿈꿨던 ‘평범함’에서 멀어질수록 그 틈을 메우려 애썼지만, 흔들리는 요소들이 곳곳에 널려 있었다. 나는 모든 것에 휘둘리며 감정의 파도를 탔고, 끝이 보이지 않는 괴로움 속에서 점점 존재감을 잃어갔다.
어릴 적부터 “참 순하다,” “착하다,” “말 잘 듣는다”는 말을 들으며 자랐다. 착하게 순응하면 평범한 삶이 자연스럽게 따라올 거라 믿었다. 이 믿음은 학창 시절을 지나며 한 번도 흔들린 적이 없었다. 결혼 전까지는 말이다. 나는 내가 평범하게, 보통의 인생을 잘 살아가고 있다고 확신했다.
하지만 결혼 후 어느 날, 나의 선택들이 점점 버겁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무너졌을 때, 제일 먼저 든 생각이 "나는 왜 이리 평범하지 못할까?"였다. 왜 이렇게 어려운 길을 선택해야만 했는지, 왜 그 선택의 순간에 미리 깨닫지 못했는지. 나 자신을 끝없이 몰아세웠다. "넌 그 정도밖에 안 되는 거냐"고.
나는 언제나 바르게, 문제없이 살았다. 그런 내게 왜 이런 고통이 주어졌을까?
나는 보통의 삶을 원했을 뿐, 특별한 욕심은 없었다. 평범하게만 살아가고 싶었는데 내 신념들이 모두 무너져 내렸다. 뒤늦게 깨달은 것은 그런 수동적인 태도가 내가 겪었던 가장 큰 문제라는 사실이었다.
“보통의 삶은 나와는 인연이 없는 걸까?” 그렇게 스스로에게 끊임없이 묻던 어느 날, 나는 떳떳하지 못한 내 삶의 순간들을 털어놓을 기회가 있었다. 거짓말로 가득한 나날들, 그 무게가 견디기 힘들었다. 친구에게 내 이야기를 쏟아내던 그날, 그는 한참 동안 말없이 듣더니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너가 생각하는 평범하다는 기준에서 벗어나도 괜찮아.
너무 좁게 설정한 건 아닌지 돌아봐야 해.”
그 말에 나는 한동안 멍해졌다.
“아무도 너의 삶이 잘못됐다고 말한 적 없어. ‘평범하게 살아라’고 나무란 적도 없지.
네가 스스로 만족하는 삶을 살면, 그게 바로 보통의 인생이야.”
친구는 좁은 틀에 스스로를 가두지 말라고 강조했다.
친구의 말에 나는 처음으로 평범함이라는 기준이 내 가치관과 신념에 맞춰 정정되어야 한다고 깨닫게 되었다. 남들과 비교할수록 내 기준은 끝없이 흔들릴 수밖에 없었다. 다른 사람에게는 당연한 일이 나에게는 늘 어려운 일처럼 여겨졌다. 하지만 이제는 내가 스스로 만족하고 떳떳하게 살면 된다는 것을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다. 그게 결국 진정한 삶이라는 걸 알게 된 것이다.
“오늘 갖고 있는 것에 만족하지 못하면, 내일 더 많은 것을 가져도 만족하지 못할 것이고, 지금 하고 있는 일에 만족하지 못하면 내일 다른 일을 해도 역시 만족하지 못할 것이다.” 이민규 작가의 『생각의 각도』에서 읽은 이 문장은 내게 큰 울림을 주었다.
지금 나는 혼자만의 시간이 많아지면서 글을 쓰고, 다양한 도전에 나설 기회도 많이 생겼다. 돌이켜보면, 나는 새로운 인생을 향해 나아가는 중요한 길목에 서 있는 것 같다. 이 과정에서 내 생각의 각도를 자주 바꾸어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되었다.
평범함의 기준도 내가 정하는 것이고, 생각을 달리하면 만족하지 못할 일이 무엇이 있을까? 결국 현재에 만족하는 것이 긍정적인 자세가 아닐까 싶다. 앞으로는 나만의 기준을 확고히 세우고, 그에 맞춰 스스로 만족할 수 있는 날들이 많아질 것 같다. 그것이 내가 만들어가는 새로운 ‘보통의 삶’일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