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 나를 찾기 위한 두 번째 여행
결혼 생활의 이른 종료는 나의 삼십 대를 크게 흔들어 놓았다. 겉으로는 드러내지 않았지만 마음속에는 불만만 가득했다. 나는 결혼 생활의 시작부터 어딘가 잘못되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첫 단추를 잘못 꿴 것처럼 모든 것이 어긋나 보였다. 인생의 새로운 출발점이었던 결혼의 문턱에서 나 자신을 제대로 돌아보지 않은 것이 큰 실수였다. 그래서 이별을 빨리 결정했다. 내 인생을 바로잡고 싶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가 내린 결정이 주변 사람들, 특히 아이와 부모님의 인생까지 흔들리게 할 줄은 미처 알지 못했다. 한참이 지나서야 그 사실을 깨닫고 미안함이 밀려왔다. 이별 자체보다 그들에게 상처를 준 것이 더 괴로웠다. 그 죄책감에서 벗어나기 위해 하루빨리 '행복한 모습을 보여주자' 다짐했다. 행복해지면 그 미안함을 조금이나마 덜어 낼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마침표를 찍으면 후련할 줄 알았는데 시간이 갈수록 내 마음은 검게 타들어가고 있었다. 인생은 사십부터 라며 스스로 수백 번 위로했지만 그것은 희망고문에 불과했다. 힘든 시기마다 철학관을 드나들었다. "사십 대가 되면 풀릴 겁니다"라는 예언 같은 말에 기대어 살아갔다. 그럼에도 여전히 초조하고 절박한 마음은 가라앉지 않았다. 지금 돌아보면 그때의 나는 무척이나 나약하고 어리석었다. 무너져가는 나를 감당할 자신이 없어서 누군가에게 의지하려 했던 것이다.
이제는 안다. 나를 바로 세우지 않으면 아무도 나를 대신할 수 없다는 것을. 내가 온전히 서지 않으면 다른 사람도 제대로 볼 수 없다는 것을. 그때 글쓰기를 알았더라면 훨씬 빠르게 나 자신을 찾는 데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여전히 철학관의 말에 의존하고 있다. 이제 서서히 인생이 풀릴 거라고 믿고 있지만 내 삶은 여전히 흔들리고 불안하기만 하다. 친구들과도 웃으며 말한다. “누가 사십 되면 인생이 편해진다고 했는지 따져 묻고 싶다”라고.
100세 시대에 사십 대는 아직 인생의 초반일 뿐이다. 조금 더 시련이 오더라도 그것이 나를 더 단단하게 만드는 과정일지도 모른다. 나는 여전히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른다. 하지만 확실한 건 지금 이 순간이라는 것이다.
길을 잃은 것처럼 보일지라도, 나는 나를 찾기 위한 새로운 여정을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