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끝에서 피어나는 문장들
나는 필사를 즐긴다.
좋은 문장을 손으로 천천히 옮기다 보면 펜 끝을 따라 흐르는 잉크처럼 그 의미가 내 안으로 스며든다. 하루에도 하나쯤 마음 한구석에 오래 머무는 여운이 생긴다. 그래서 마음에 닿는 문장은 몇 번이고 다시 새겨 쓴다. 같은 문장을 반복해서 쓰는데도 매번 다른 감각으로 다가온다. 어제는 보이지 않던 의미가 오늘은 선명해지고, 그렇게 손끝에서 피어난 문장들이 또 다른 글쓰기로 이어지곤 한다.
세상엔 정말 많은 명문장이 있다. 수많은 작가들이 남긴 빛나는 문장들, 시인들이 빚어낸 아름다운 시구들. 수많은 문장 속에서 정작 내가 품고 사는 문장은 무엇일까.
블로그에는 오래전부터 "꿈꾸는 대로 이루어진다"라는 문장을 걸어두었다. '꿈꾸는'은 언제나 진행형이고, 희망적이고, 행동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 그래서 지금도 나는 '꿈꾸는 나비'로 살고 있다. 요즘은 "You become what you live"라는 말을 붙잡고 있다. 산다는 것과 된다는 것 사이의 필연적 연결. 그 문장이 주는 단단함이 좋다. 스레드에는 "하쿠나 마타타", X에는 "이겨야 할 것은 남이 아니라 과거의 나"라는 말을 남겨 두었다.
각각의 공간에 다른 문장을 품은 것은 우연이 아니다. 그곳에서 만나는 사람들이 다르고, 내가 보여주고 싶은 모습이 다르고, 무엇보다 그 순간 내게 필요했던 말이 달랐기 때문이다. 문장은 그렇게 나의 여러 얼굴을 대신해 말해준다.
그런데 어디에도 적어 두진 않았지만 늘 속으로 품고 사는 문장이 있다.
'나는 매일, 모든 면에서 조금씩 더 나아지고 있다.'
이 문장은 공개된 곳에 붙여두기엔 너무 사적이고 너무 절실하다. 아침에 눈을 뜰 때, 일이 잘 풀리지 않을 때, 스스로에게 실망할 때, 나는 이 문장을 품는다. 주문처럼, 기도처럼.
어제는 글쓰기 메이트들과 '왜 쓰는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10년 후 후회하지 않으려고 쓴다", "성장하려고 쓴다"라고 이야기하는데, 그들도 나처럼 점점 나아질 것을 믿기에 쓰는 것 같다. 글쓰기가 드라마틱하게 삶을 바꾸진 못하더라도 최소한 나 자신의 태도와 마음가짐은 바꿔 갈 수 있으리라 믿는다. 태도와 마음가짐을 바꾼다는 것, 결국 그것은 성찰이다.
쓰다 보면 자연스레 나를 돌아보게 되고, 쓰다듬게 되고, 다독이게 된다. 그 과정에서 나는 결국 지금보다 조금은 더 괜찮은 사람으로 다듬어진다. 거창한 변화가 아니어도 좋다. 어제보다 오늘, 오늘보다 내일, 조금씩 나아지는 것.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
나는 문장을 수집하듯 글을 쓴다. 좋은 문장을 옮겨 쓰며 마음에 담아두듯 내 생각과 감각도 문장으로 빚어 어딘가에 남겨둔다. 그렇게 모인 문장들이 나를 이루고 나를 지탱한다.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는 한 문장을 품고 사는 것처럼 나는 쓰는 일을 통해 나를 수집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책을 내어 큰 성공을 거두거나, 글쓰기가 주 수입이 되지는 못할 수도 있다. 사실 그럴 가능성이 더 높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글을 쓰며 문장을 품고 사는 일은 분명 다른 길로 이어진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무언가가 자라고 있다는 확신이 있다. 중요한 건 멈추지 않고 품고 가는 마음이다.
'일단 쓰다 보면 무언가는 일어난다.'
나는 그렇게 믿는다. 그 믿음이 있기에 오늘도 문장을 옮겨 쓰고, 내 문장을 만들고, 또 내일을 기약할 수 있다. 손끝에서 피어난 문장들이 마음속에 자리 잡고 그 문장들이 다시 나를 빚어간다.
다른 이들은 어떤 문장을 품고 살아가고 있을까.
문득 궁금해진다.
나비의 끄적임에 머물러 주셔서 감사합니다.
[사진출처]
저는 [산책과 문장]
열번째 작가입니다.
[산책과 문장]으로 함께 걸어요!
자세한 내용은 여기를참고해 주세요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