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에 이끌려가는 건 이제 점점 더 싫다. 누군가 정해놓은 시간표에 맞춰 살고, 남들의 속도에 발을 맞추려 애쓰는 일이 어느 순간부터 견디기 힘들어졌다. 그래서 결심했다. 내 고집을 지키며 살기로. 하고 싶은 것만 즐겁게 하다가 가기로. 그런 마음이 점점 더 분명해지고 있다.
내가 정해둔 고정 루틴은 단출하다. 화요일엔 에세이 정규 과정과 셔플댄스, 매일 하는 정자체 필사, 그리고 브런치 연재. 딱 네 가지다. 손가락으로 셀 수 있을 만큼 간결하게 정리된 이 루틴이 마음에 든다. 그 외에는 흘러가는 대로, 하고 싶은 대로 둔다. SNS 활동은 꼭 필요해서라기보다는 연결을 이어가기 위해 조금은 해둔다. 책을 내보니 알게 된 것이 있다. 홍보할 곳으로 이만한 공간이 없더라. 실질적인 효과가 크지 않다는 걸 알면서도 그래도 없는 것보단 낫다는 생각으로 가볍게 유지 중이다. 무거운 의무감 없이 필요한 만큼만.
글 연재도 조금 숨을 고르려 한다. 매일 쓰다 보니 벅찼다. 의무감이 앞서면 재미가 사라지고, 재미가 사라지면 글이 딱딱해진다. 글이 딱딱해지면 나도, 읽는 사람도 힘들어진다. 악순환이다. 그래서 주 3회로 리듬을 바꿔보려 한다.「답은 없지만 길은 있으니까」에서 자기 성찰을, 「문장을 따라 걷다」에는 필사 후 글쓰기 한 편을,「뜬금없지만 하고 싶은 이야기」에서는 글쓰기, 책 이야기 등의 자유로운 나의 일상을 쓸 예정이다. 일주일에 세 편이면 여전히 적잖은 분량이지만 매일 쓰던 때에 비하면 훨씬 여유롭다. 숨 쉴 틈이 생긴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가치 있는 변화다.
이렇게 나누고 보니 한 주의 흐름이 보인다. 화요일은 온전히 취미와 글쓰기 공부에 집중하고 수요일과 금요일은 글쓰기와 책 읽기, 주말은 딸과 함께 책을 읽는 시간. 실제로 책 읽는 시간이 넉넉하지는 않지만 결국 시간을 어떻게 쓰느냐에 달려 있다는 걸 안다. 하지만 현실은 계획처럼 딱딱 잘라 움직이지 않는다. 하루가 예상대로 흘러가는 날이 오히려 드물다. 그래서 중요한 건 정해진 시간표를 지키는 것보다 틈틈이 적절한 때를 찾아 원하는 만큼을 놓치지 않으려는 마음을 잃지 않는 것이다.
저녁 루틴도 그려뒀다. 평일엔 한 시간 운동으로 몸을 풀고, 샤워와 휴식 후 여덟 시부터 아홉 시까지 글 준비를 한다. 아홉 시 반까지 책을 읽고 잠자리에 든다. 종이 위에 적어둔 루틴은 간결하고 단단해 보인다. 새벽은 나만의 가장 좋은 시간이다. 세상이 아직 깨어나기 전, 고요한 시간 속에서 나는 온전히 나에게 집중할 수 있다. 네 시에 일어나 아침 일기로 몸을 깨우고, 네 시 반부터 다섯 시 사십 분까지는 집중 독서. 충분히 한 시간은 확보된다. 이어서 브런치 글을 읽고 댓글을 남기며 다른 이들의 글을 만나는 시간으로 채운다. 새벽 독서는 낮에 읽는 것과 다르다. 머릿속이 깨끗한 상태에서 책을 읽으면 문장이 더 또렷하게 들어온다. 물론 이것도 계획이다. 매일 이대로 흘러가지는 않을 것이다. 그래도 연말까지 이 리듬을 몸에 익혀보려 한다. 습관은 반복으로 만들어진다고 믿으니까.
북클럽은 과감히 덜어냈다. 여러 모임에 참여하다 보면 독서가 의무가 되어버린다. 그건 내가 원하던 독서가 아니다. 이제는 꼭 읽고 싶은 책만 함께 읽고, 나머지는 스스로 고른 책을 내 호흡대로 읽는다. 연말까지는 더 많은 책을 만나고 싶다. 좋은 문장을 밑줄 긋고, 필사하고, 그 문장이 내 안에 스며들 때까지 곱씹고 싶다. 그리고 언젠가는 닮고 싶은 작가 한 명쯤, 닮고 싶은 문체 하나쯤을 고를 수 있기를 바란다. 누군가의 문장을 따라 쓰다 보면 조금씩 내 문장도 단단해질 거라는 기대를 품고 있다.
물론 이건 어디까지나 계획이다. 당장 추석 연휴가 길게 이어지고 이사 준비로 분주한 시기라 조금은 들쑥날쑥할 수밖에 없다. 계획대로 되지 않는 날도 있을 것이고, 예상치 못한 일로 루틴이 깨지는 날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래도 괜찮다. 계획은 늘 변동 가능한 것이니까. 중요한 건 완벽하게 계획을 지켜내는 게 아니라 늘 내 마음에게 묻고 속도와 방향을 조절해 나가려는 의지를 단단히 세우는 것이다. 계획은 내가 따라가야 할 규칙이 아니라 내가 원하는 방향을 가리키는 나침반 같은 것이니까.
올해 꼭 이루고 싶었던 '사는 곳을 바꾸는 일'이 나에게는 가장 큰 이벤트다. 집을 옮긴다는 건 단순히 공간을 바꾸는 게 아니라 삶의 공기를 바꾸는 일이기도 하다. 새로운 공간에서 새로운 루틴을 만들고 새로운 일상을 쌓아가는 일. 그 시작점에 서 있다는 게 설레면서도 조금 두렵다.
내가 지켜가고 싶은 건 결국 '하고 싶은 것만 하고 살겠다'는 작은 고집이다. 누군가에게는 이기적으로 보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 때, 그때야 비로소 다른 사람에게도 진심으로 다가갈 수 있다. 억지로 지어 보이는 미소보다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웃음을 지을 때의 내가 훨씬 더 나답다.
나는 오늘도, 내일도, 하고 싶은 것을 하며 살 것이다.
천천히, 내 속도로, 내 방식으로.
즐거운 연휴되세요!
나비의 끄적임에 머물러 주셔서 감사합니다.
[사진출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