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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을 사랑하는 방법

by 꿈꾸는 나비

일상을 어린아이의 눈으로 바라보며 호들갑을 떨어야 한다. 호들갑을 떠는 만큼 반짝이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호들갑을 떠는 사람은 남들보다 크게 감동할 줄 아는 사람이다.


-별게다영감, 양승희



일상을 어린아이의 눈으로 바라본다는 건 조금은 호들갑스러워지는 일이다. 작은 설렘에도 마음을 크게 여는 일이고, 그 호들갑 속에서 세상의 반짝임을 놓치지 않는 일이다. 요즘 내 곁엔 그 일을 아주 잘하는 사람이 있다. 바로 우리 딸이다.


"놀이공원 가고 싶어!! 진짜! 제대로!"

그 말 끝에는 늘 느낌표가 서너 개씩 붙어 있었고 눈빛엔 기대가 가득했다.


솔직히 나는 놀이공원이 부담스러웠다. 놀이기구도 잘 못 타고, 북적한 인파를 떠올리면 벌써부터 지친다. 그래서 빙빙 돌며 말했다.


"엄마랑 가면 재미없지 않아?"
"너 혼자 타게 되면 어떡해?"
"주말엔 사람 너무 많아서... 기다리는 시간이 엄청 길잖아?"


갖은 핑계를 다 동원했다.


거절하고 또 거절했는데 딸은 매번 묻고 또 실망했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았다. 호들갑이 끈기와 집요함을 만날 때 그건 정말 대단한 힘이 된다. 결국 나는 백기를 들었다.





(6개월 전)


"좋아. 가자. 근데 서로 좋아하는 거 존중하자. 엄마는 무서운 거 안 타도 괜찮지?"


그 약속 아래 놀이공원에 갔던 날, 딸은 후룸라이드 앞에서 잠시 머뭇거리더니 혼자 타겠다고 나섰다.


"엄마, 나 혼자 탈 수 있어. 괜찮아."


작은 등이 꼿꼿하게 줄을 서 있었다. 혼자 해내려는 용기와 '엄마가 무서워하니까 내가 가볼게' 같은 의젓함이 그 뒷모습에 겹쳐 보였다.


애틋함과 대견함이 한꺼번에 밀려왔다.


저 작은 아이가 이렇게 자라고 있구나. 내가 해줄 수 없는 것들을 스스로 해내려 하고 있구나.


두 번이나 타고 돌아온 딸이 씩 웃으며 말했다.


"엄마, 안 타길 잘했어. 거기서 확! 떨어질 때 조금 무섭더라. 엄마는 울었을 거야."


그 말투가 얼마나 의젓하고 또 귀엽던지. 마치 누군가를 다독이는 어른 같은 톤이었다. 나의 모든 케어에서 못 벗어날 것 같던 딸이 조금씩 세상을 향해 나아가고 있었다. 두려움을 넘어서, 자기만의 용기로 가득 차서.





요 며칠동안 딸의 소원은 변함이 없다. 딸은 계속 놀이공원 노래를 불렀다. 안 해보면 두려운 거지만 혼자 도전한 뒤로 물러서는 법이 없다.


식탁에서도, 잠자리에서도.


"엄마 우리 또 가면 안 돼? 나 혼자 잘 타잖아!! 나 진짜 잘하잖아!"


나는 투덜댔지만 속으로는 생각했다. 나 아니면 누가 저 아이의 호들갑을 함께 받아줄까. 그 마음 때문에 결국 또 약속을 했다.


"너 혼자 타는 건 그렇고, 친구랑 가고 싶으면 엄마가 예약해 줄게."


평소엔 내가 "딸, 뱃살 좀 관리해야겠는걸?" 하고 말하면 눈 동그랗게 뜨고 뾰로통해하던 아이. 오동통 귀여운 배지만 최근 산 옷이 안 잠길 정도라 슬쩍슬쩍 자극을 주는 중이었는데 그날만큼은 달랐다.


"놀이공원 가면 많이 걸어야 하니까 운동된다는 마음으로 열심히 움직이자?"


"옛썰!!"


두 옥타브는 훌쩍 넘긴 쾌활한 목소리다. 전화기 너머로 손을 불끈 쥐고 파이팅을 외치는 모습이 떠올라 웃음이 터졌다. 그 순간 내 하루의 피로가 눈 녹듯 사라졌다.


한껏 들뜬 웃음을 듣는데 문득 내 어린 날이 그리워졌다.


골목에서 뛰어놀고, 아무 이유도 없이 깔깔거리던 때. 친구 집에 놀러 가는 게 세상에서 제일 신나던 그때. 비 온 다음 날 물웅덩이를 보면 그냥 뛰어들고 싶던 그 마음.


그 호들갑, 그 반짝임, 그 순도 높은 기쁨.


어른이 되며 잃었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지금 내 곁 작은 몸 안에서 다시 반짝이고 있었다. 어쩌면 잃은 게 아니라 어딘가에 조용히 접어두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딸이 그걸 다시 펼쳐 보여주고 있는 것 같았다.


어른이 되면서 나는 많은 것을 '예상'하고 '대비'하고 '걱정'하는 법을 배웠다. 그게 현명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러다 보니 어느새 작은 기쁨에도 마음을 여는 법을 잊어버렸던 것 같다. 놀이공원이 '피곤한 일'이 되고, 약속이 '부담'이 되고, 즐거움마저 '계획'이 되어버렸다.


하지만 딸은 달랐다.


놀이공원 하나에 온 세상을 다 얻은 듯 기뻐했고, 후룸라이드 두 번에 모험가가 된 것처럼 당당했고, 친구와의 약속 하나에 우주를 날 것처럼 환호했다.


그 모든 순간이 그 아이에겐 '진짜'였다. 조금도 덜하지 않은 온전한 기쁨이었다.


아이의 호들갑은 감동의 크기만큼 말랑말랑한 것이었다. 그리고 그건 곧, 마음이 살아 숨 쉰다는 뜻이었다.


일상의 작은 것들에도 진심으로 감동할 수 있는 능력, 지금 이 순간을 만끽하는 것. 그것이 진짜 삶을 사랑하는 방법인데 어느새 나는 그걸 잊고 지내왔던 것 같다.


나도 다시 호들갑을 떨어야겠다.


어린아이의 눈으로 일상을 바라보며 세상을 더 크게 감탄하고 아이처럼 반짝이며 걸어가야겠다.



나비의 끄적임에 머물러 주셔서 감사합니다.


[사진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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