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 안 하세요?
올해는 꼭 연애하셨으면 좋겠어요.”
그 말은 늘 가벼운 웃음과 함께 찾아온다. 걱정이라기엔 지나치게 가볍고, 간섭이라기엔 묘하게 다정해서 나는 그 질문을 쉽게 흘려보내지도 그렇다고 날 선 태도로 밀어내지도 못한다.
사실 나는 혼자인 삶에 그리 큰 불만이 없다. 누군가의 온기가 없어도 하루는 무탈하게 굴러가고, 지금의 나로도 충분히 괜찮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동안은 굳게 믿어왔다. 연애에 대한 희망도, 갈증도, 어쩌면 타인을 향한 욕구조차 이제 내 안에는 말라버린 지 오래라고.
그런데 자꾸만 누군가는 묻는다. 연애 안 하느냐고, 올해는 꼭 좋은 사람을 만났으면 좋겠다고. 그 질문을 파도처럼 몇 번이고 맞다 보니 문득 의문이 생겼다. 그들이 보고 있는 건 정말 나의 외로움일까 아니면 혼자인 상태가 길어지는 삶에 대한 생경함일까.
어쩌면 누군가 곁에 있어야만 비로소 온전해 보인다는 그들만의 기준이 지금의 나에게서 아직 이름 붙이지 못한 무언가를 ‘아쉬움’이라는 단어로 성급히 치환해버린 건 아닐까.
가만히 돌아보면 나 역시 사랑을 설레고 좋았던 구간까지만으로 한정 지어 생각했던 때가 있었다. 상대의 안쓰럽고 짠한 구석까지는 차마 도착하지 못한 채, 그 문턱에서 서둘러 돌아섰던 관계들. 그 마음 하나가 부족해서 결국 헤어짐을 선택해야 했던 순간들. 그때는 어렴풋했던 이별의 이유가 시간이 흐른 지금에야 선명해진다.
아, 이게 끝맺음의 진짜 이유였구나.
생각은 꼬리를 물고 깊은 곳까지 내려갔다. 어쩌면 나는 진짜 사랑을 해본 적이 없는 게 아닐까. 사랑이라는 매끈한 표상만 쥐고 있을 뿐, 사람 하나를 온전히 내 삶에 들일 깜냥이 되지 않았던 건 아닐까. 이 나이가 되어서야 비로소 나의 밑바닥을 마주하게 된 사실이 조금은 씁쓸하게 다가왔다. 그러다 우연히 만난 드라마의 대사 한 줄이 마음의 빗장을 두드렸다.
‘불안이 숨겨버린 희망을 찾자.
생각하는 내가 안 될지라도 실망하지 말자.
나를 한번 믿어보자.’
-드라마 ‘러브 미’ 서준경(서현진 역) 대사 중에서
대사를 가만히 곱씹는 동안 나는 연애라는 단어 위에 ‘불안’이라는 외투를 가장 먼저 입혀두고 있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설렘보다는 걱정이 앞서고, 기대보다는 손익계산이 먼저 시작됐던 이유를 말이다.
혼자가 괜찮다고 말했던 것은 단순한 포장이 아니라, 불안이라는 강을 건너지 않기 위해 내가 선택한 가장 안전한 요새였을지도 모른다. 내 사람이 정말 괜찮을 수 있을까, 그 관계 안에서 내가 무너지지 않고 버틸 수 있을까. 그 막연한 두려움이 연애라는 가능성 자체를 저 멀리 밀어내고 있었던 것이다.
그 대사는 내 안의 불안을 깨끗이 없애주지는 않았다. 다만 이렇게 속삭이는 듯했다. 불안이 있더라도, 설령 결과가 좋지 않더라도 한 번쯤은 나를 믿어보자고. 그때의 나에게 너무 실망하지는 말자고. 내가 그렇게 오랫동안 망설였던 건 답이 없어서가 아니라, 불안을 대하는 나의 시선이 아직 바뀌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요즘의 나는 마음을 이렇게 정리해본다. 사람이 있으면 좋고, 없어도 나는 충분히 잘 살고 있다고. 연애는 삶을 완성하는 필수 조건이 아니며, 나의 삶은 이미 그 자체로 충만하다고 말이다.
다만 예전과 조금 달라진 점이 있다면 이제는 마음의 문을 완전히 걸어 잠그지는 않기로 했다는 것이다. 문을 살짝 열어두되 서두르지 않고, 기대는 하되 나를 의심하지 않겠다는 조금은 유연한 선택이다.
그들의 질문은 앞으로도 멈추지 않을 것이다. 연애 안 하느냐고, 올해는 꼭 누구를 만났으면 좋겠다고. 그 말이 진심 어린 걱정인지, 빈자리에 대한 아쉬움인지, 아니면 혼자인 삶을 견디지 못하는 그들 자신의 투영인지는 여전히 알 수 없다. 하지만 이제 나는 그 질문 앞에서 나를 구구절절 설명하려 들지 않는다.
불안이 숨겨버린 희망을 억지로 끄집어내지도 그렇다고 다시 깊숙이 덮어버리지도 않은 채 그저 나라는 사람을 믿어보기로 한다. 사람 있으면 좋고, 없어도 괜찮은 삶. 그 유유자적한 사이 어딘가에서 나는 오늘도 충분히 잘 살고 있다.
나비의 끄적임에 머물러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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