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영혼의 모양새를 찾아가는 삽질에 대하여

힙해 보이지 않는 시간의 가치

by 꿈꾸는 나비

유튜브 프로그램 <적수다>의 한 회는 ‘힙’이라는 단어를 화두로 시작된다. 힙해지고 싶으면서도 동시에 그 말이 주는 피로감을 외면할 수 없는 애증의 단어, 힙. 대체 힙하다는 건 뭘까. 유행을 선점하는 감각일까, 새로움을 증명하는 능력일까, 아니면 남들이 알아봐 주는 어떤 태도일까.


그 질문 앞에서 뮤지션 선우정아는 의외의 고백을 한다. 자신은 아직도 답 없는 땅을 파고 있는 중이라고. 십수 년을 노래해 왔지만 무엇이 나올지 모른 채 그저 계속 두드리고 파는 느낌이라고 말이다. 어디까지 파야 할지도 모르겠고 과연 죽기 전에 내 영혼의 밑바닥을 다 볼 수 있을지도 모르겠는 막막한 상태라고 한다.

그녀는 이제 그 막막함을 없애려 애쓰기보다 '잘 겪어내고' 싶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브랜딩’에 대한 자신만의 정의를 덧붙인다. 전략이나 포장이 아니라 내 영혼의 모양새를 남들도 알아볼 수 있게 연결시키는 행위 빨리 해치워야 할 과업이 아니라 나의 실체가 언제쯤 드러날지 궁금해하며 떠나는 하나의 모험으로 본다고 한다. 그녀는 파헤쳐야 할 땅을 고된 노동의 현장이 아닌 탐험의 지도처럼 바라보고 있었다.


묵묵히 이야기를 듣던 이적은 전혀 다른 방향에서 위로를 건넨다.


"보통 땅을 판다고 하면 물을 찾거나 금을 캐기 위해서잖아요. 그런데 당신이 지금까지 파서 여기 옆에 쌓아 놓은 흙더미 자체가 이미 큰 작품 같은걸요."


목표를 달성해야만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니라 무언가를 찾기 위해 애쓰며 파낸 그 '과정의 흔적'이 이미 고유한 가치를 지닌다는 말 한마디에 선우정아는 푹 적셔지듯 위로받는다. 그리고 그 장면을 보던 나 역시 한동안 화면 앞에 멈춰 서게 되었다.

나는 요즘 내가 걷는 이 길이 맞는지 자주 자문한다. 열심히 파고는 있는데 이게 혹시 말 그대로 '부질없는 삽질'이면 어쩌나. 아무것도 나오지 않으면 이 모든 시간이 헛수고가 되지는 않을까. 하지만 이 불안은 게으른 마음에서 오지 않는다. 오히려 너무 진지하게 임하고 있기에 생기는 통증이다. 내 시간과 에너지를 실제로 쏟아붓고 있다는 가장 확실한 증거이기도 하다.


우리가 '힙'해 보이고 싶어 하는 마음 저변에는 이미 완성된 상태로만 존재하고 싶다는 욕망이 숨어 있다. 고단한 과정은 생략한 채 근사한 결과 값만 보여주고 싶은 조바심이다. 하지만 무언가 만들어지는 과정은 대개 힙하지 않다. 느리고, 반복적이며, 밖에서 보기엔 지루하리만큼 정적인 장면의 연속이다. 지금의 나 역시 그 둔탁한 과정 한가운데를 지나고 있다. 보여줄 만한 결론도 설명할 성과도 마땅치 않아 이 시간이 그저 흙먼지 날리는 삽질처럼 느껴질 때도 있다.


그러나 다시 생각해 보면 나는 결코 헛된 일을 하는 게 아니다. 결과로 가는 길목에서 나는 나만의 흙을 파내어 곁에 차곡차곡 쌓아 올리고 있다. 파고, 멈추고, 다시 파는 동안 내가 어떤 방식으로 시간을 통과하는 사람인지, 내 영혼의 모양새는 어떠한지 조금씩 세상에 드러내고 있는 중이다.

비록 지금 당장은 힙해 보이지 않을지라도 내가 쌓아 올린 이 흙더미는 결코 사라지지 않을 나의 실체다. 그래서 이 순간들을 헛된 시간이라 부르지 않기로 했다. 아직 완성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지금의 나를 평가절하하지 않기로 했다. 힙해 보이지 않는 이 투박한 시간 속에 분명한 가치가 있다는 사실을 믿어보기로 했다.


어쩌면 훗날 사람들이 '힙하다'라고 우러러보게 될 어떤 것은 아무도 주목하지 않던 시간에 누군가가 묵묵히 퍼 올린 이름 없는 흙더미 위에 세워지는 것일지도 모르니까.


적수다 EP.7[힙] 이적, 선우정아, 원소윤, 성해나, 전우성 (2025.10.9)



나비의 끄적임에 머물러 주셔서 감사합니다.


[사진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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