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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을 따라 관계를 짓다

결이 맞는다는 것의 의미

by 꿈꾸는 나비




나는 따로 명상의 시간을 갖지 않는다. 하지만 어떤 문장을 마주하며 그것을 천천히 음미하는 시간이 내게는 곧 명상이 된다. 깊이 있는 한 문장이 마음속에 울림을 남기면 그 여운이 파문처럼 퍼지며 내 안에 새로운 사유를 불러일으킨다.


책을 읽다가, 칼럼을 훑다가, 혹은 SNS에서 우연히 마주친 글 한 줄이, 내 생각의 실마리가 될 때가 많다. 타인의 언어를 통해 나의 감정과 기억이 소환되고 그것을 곱씹으며 자연스럽게 사색이 이어진다. 그렇게 머릿속에서 조용한 대화가 시작될 때 문득 글을 쓰고 싶어지는 순간이 찾아온다.


그렇게 깊이 몰입하는 순간이 지나고 나면

비로소 나만의 글이 시작된다.


어떤 문장이 마음 깊숙이 닿아 울림을 주더라도 그것을 글로 풀어내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생각이 머릿속에서 맴돌 뿐 선명한 언어로 자리 잡지 못할 때가 많다.그럴 땐 조용히 펜을 꺼내어 필사를 시작한다.


몇 번이고 문장을 따라 쓰며 글자의 결을 하나하나 눌러 새기다 보면 어느 순간 내 마음과 문장이 하나가 된다. 물이 스며들 듯 타인의 언어 속으로 나의 감정과 사유가 자연스럽게 흘러 들어간다. 손끝에서 이어지는 글자들은 단순한 베껴 쓰기가 아니라 사색의 리듬을 타며 나만의 호흡을 찾아가는 과정이 된다. 타인의 글에서 출발했지만 어느새 내 이야기로 이어지는 순간 그렇게 필사는 마침내 창작이 된다.




가장 아끼는 너에게 주고 싶은 말, 도연화


어쩌다 스친 한 문구가 마음속 깊이 남아 오랜 시간 잔향처럼 머무는 순간이 있다. 처음엔 그저 공감하며 지나쳤지만 시간이 흐른 뒤 문득 떠올랐을 때는 전혀 다른 깊이로 다가오기도 한다. 그 문장이 내 삶의 한 조각이 되어 조용히 자리를 잡고 있었던 것처럼.


예전에 SNS에서 발견하고 무심코 캡처해 두었던 것이라 이미지 출처는 정확하지 않다. 읽는 순간 그때는 "맞아, 그렇지!" 하고 짧게 공감한 후 바쁜 일상 속에 묻어 두었던 것이다. 어느 순간 다시 이 글이 떠올랐다.


최근 자꾸 ‘결’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단순히 취향이나 성향이 비슷한 것이 아니라 나와 자연스럽게 조화를 이루는 사람들, 나와 닮은 결을 지닌 사람들에 대해 자주 생각하고 있었다.


실제로 그 소용돌이의 흐름 속에 몸을 맡기고 있기에 이런 생각이 더욱 짙어진다. 결이 맞는 사람들과 오래도록 삶을 나누는 것이 무엇보다 소중하다는 깨달음이 내 안에 선명히 자리 잡았다. 그제야 오랫동안 잊고 있던 그 문장이 내 안에서 다시 깨어났다.


단순한 공감을 넘어

지금의 나를 비추는 거울처럼 말이다.




‘결이 같다’는 것은 내게 어떤 의미일까?


단순히 취향이나 성향이 비슷한 것을 넘어 더 깊은 조화와 공명 속에서 이해하는 감각이다. 나와 결이 맞는 사람은 억지로 노력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스며들 듯 가까워진다. 같은 리듬을 가진 물결이 서로를 방해하지 않고 부드럽게 어우러지는 것처럼 우리의 존재가 조용히 섞이고 이어진다. 나 또한 그런 사람들을 본능적으로 알아보고 특별한 이유 없이 마음이 닿아 있음을 느끼곤 한다.


결이 맞는 사람과의 대화에서는 불필요한 설명 없이도 서로를 이해하는 순간이 자주 찾아온다. 말로 다 표현하지 않아도 상대가 내 마음을 먼저 읽어주는 것처럼 느껴지고 나 또한 자연스럽게 그 사람의 생각을 헤아리게 된다. 이런 관계에서는 억지로 다가가려는 수고가 필요하지 않다.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도 충분히 통하는 흐름이 형성되기 때문이다.


이런 조화로운 관계는 무엇보다 공감과 존중 바탕으로 한다. 단순히 공통점이 많거나 성격이 비슷한 것과는 다르다.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면서도 조화를 이룰 수 있는 더 깊은 차원의 연결이다. 누군가를 ‘이해한다’는 감각은 그저 머리로 아는 것이 아니다.


누군가를 이해하게 된다는 것은 곧 나도 모르게 애정과 관심이 스며들었음을 의미한다. 단순히 "멋있다"라고 감탄하는 것과는 다르다. 감탄에는 일정한 거리감이 있지만, "결이 맞는다"라고 느낄 때는 서로가 가까워졌다는 느낌이 든다.


"저 사람의 내면과 내 영혼이

같은 주파수로 공명하며,

말로 표현하지 않아도

서로의 마음속을 들여다보는 듯한

깊은 교감을 나누고 있네."


이런 순간이 찾아오면

단순한 감탄을 넘어,

나와 그 사람의 삶이 연결되었다는 감각이 피어난다.




결국, ‘결이 같다’는 것은 단순한 공통점의 나열이 아니라 서로의 내면을 깊이 이해하고 공감하며 천천히 가까워지는 과정이다. 이 과정 속에서 우리는 서로에게 자연스럽게 스며들고 함께 성장할 수 있는 관계로 나아간다.


이런 연결은 단순한 만남이 아닌 사람과 사람 사이를 이어주는 진정한 관계의 고리가 된다.


결이 다른 나무 조각들이 자연스럽게 맞물려 하나의 아름다운 가구를 이루듯 우리 삶에서도 서로의 결을 알아보고 조화롭게 맞춰가는 과정이 깊이 있는 관계를형성하는 본질적인 요소가 아닐까.


겉으로 보기에 완전히 똑같지 않더라도

본질적인 결이 통하는 사람들과 함께할 때,

우리는 더욱 따뜻하고

단단한 연결을 만들어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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