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페미니스트 장애인 여성이다. 3월 8일 한국여성대회에도 참가했고 4월 19일 전장연 결의대회에도 참가했다. 그런데 둘 다 가보니 불쾌한 공통점이 눈에 들아왔다. 지나치게 많은 경찰이 정당한 이유 없이 행사에 개입했다.
한국여성대회 마무리 행진에는 경찰 대대 하나가 따라붙어서 참가자들을 둘러쌌다. 폭력이 벌어지는 것도 아니고, 불법행위를 저지르는 참가자도 없었는데 행사가 진행된 청계광장 주변에 참가자보다 경찰이 더 많은 수준이었다. 방패를 들고 나온 경찰들도 있었다.
전장연 시위에서는 경찰이 더 적극적이고 폭력적인 방식으로 개입했다. 시위가 시작하기도 전부터 혜화역 통로에 경찰이 배치되었고, 철제 울타리도 동원되었다. 서울장애인인권영화제와 문화제가 개최된 마로니에공원은 아예 경찰이 모든 출입구를 둘러쌌다. 카메라를 들고 와서 출입하는 시민들을 촬영하기도 했다. 밤에는 경찰이 혜화역에서 휠체어가 진입할 수 있는 모든 출구와 엘리베이터를 봉쇄하고 서울교통공사 관계자들이 휠체어에 탄 뢀동가들을 혜화역 밖으로 끌어냈다. 전장연 대표는 이 시위를 구실로 구속영장 심사까지 받았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4월 30일 경찰청에서는 보도자료를 통해 5월 1일 노동절/근로자의 날에 전국에 경찰 1만 명이 투입, 노동조합 등에서 개최한 시위에 대응할 계획을 공개했다. 보도자료에서 윤희근 경찰청장은 ”불법집회를 할 경우 신속하게 해산처리를 진행하고 공무집행방해 등 불법행위에 대해서는 현장 검거를 원칙으로 엄정하게 대응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경찰청이 밝힌 시위 대응 방침은 불법집회에 신속하게 대응하겠다는 핑계로 국민의 기본권인 집회, 결사의 자유를 침해한다. 불법행위가 일어나기는커녕 시위가 시작하기도 전에 대규모의 경찰력을 동원해서 시위 참가자와 주변 시민의 행동을 감시하고 통제하기 때문이다. 일어나지도 않은 일을 가지고 시위 참가자들을 잠재적 범죄자 취급하는 것이다.
불법행위가 일어날 경우로 한정짓기는 했지만, 경찰청은 보도자료에서 시위를 강제 해산시키거나 참가자를 현장에서 검거할 수도 있다고 밝혔다. 별다른 권력이 없는 시민 입장에서는 시위에 참가하면 자신의 기본권을 제한할 의사가 있다고 밝힌 공권력과 대치하게 된다. 참가하는 내내 경찰이 옆에 붙어서 감시할 것이고, 폭력적인 방법으로 해산당하거나 동의 없이 채증당하거나 체포될 수도 있다. 결국 경찰청이 발표한 강경대응 방침은 시위에 참가하려는 사람들을 상대로 공포감을 조성해서 시위를 조직하고 참가할 자유를 위축시킨다.
경찰을 비롯한 공권력은 시위에서 위험하거나 불법적인 상황이 발생했을 때 최후의 수단으로 투입되어야 한다. 일어나지도 않은 불법행위를 미리 가정하고 엄정 대응하겠다는 경찰청의 방침은 공권력을 동원해 마음에 들지 않는 시위를 합법적으로 방해하겠다는 의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