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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은한 May 19. 2023

캐나다 이민

배우자 초정 이민




*거저 얻은 것 같은 이민이라 조언이라고 할 것도 없지만 단 한분이라도, 티끌만큼의 도움이라도 될까 싶어 글을 적어 봅니다.

*아주 오래전 일이라 기억도 가물가물하고, 대략적인 이야기만 적었습니다.

이민 관련 정책들은 굉장히 자주 바뀌기 때문에 최신 정보로 직접 찾아보시는 게 좋습니다.



10년 전 캐나다로 이민을 왔다.

한국을 벗어나 살지 않겠다고 다짐까지 했던 소심쟁이 아가씨가 어쩌다 캐나다에 사는 총각을 만나 결혼하고, 캐나다로 이민을 오게 됐다.

이민을 오는 방법이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그중에서 가장 수월하다는 "배우자 초청 이민" 이었다.



서류들은 대부분 한국에서 준비 왔고, 영사관에서 해주는 아주 저렴한 공증서비스를 받아 제출했다.

영주권을 노린 사기결혼도 있기 때문에 그렇지 않다는 것을 다양하게 증명해야 했다.

혼인신고서는 물론이고, 연애 때 사진, 청첩장, 결혼식 사진, 주례와 함께 찍은 사진, 가족들과 함께 찍은 사진, 신혼집에서 찍은 사진 등등 다양한 사진을 첨부했다.

영주권을 최대한 빨리 받기 위해 서류들을 철저히 준비했다. 중간에 한 가지라도 서류가 미흡하거나 잘못된 것이 있어 반송이 된다면 몇 주는 허비되기 때문이다.



신청 8개월 후 1차 서류통과 이메일을 받았다.

그 후 2개월이 지나 랜딩인터뷰 요청편지를 받았다.

나는 그 사이 한국에서 보낸 이삿짐 통관을 받았고, 워크퍼밋을 받았다. 의료보험 카드도 받았고, 기한이 다 되어가는 국제운전면허증을 캐나다운전면허증으로 바꾸었다.



인터뷰는 다행히 가까운 옆 도시의 한 대학교에서 하게 됐다. 실수하지 않기 위해 전 날 필요한 서류들도 꼼꼼히 챙기고, 늦지 않기 위해 일찍 출발했다.

인터뷰를 위해 모인 사람들은 약 8명 정도였다. 다들 긴장된 모습으로 기다리고 있었다.

인터뷰하는 이민국 직원 2명이었고, 대학교의 한 강의실을 빌려 다 같이 기다리다가 호명되면 앞에 테이블로 이동하여 인터뷰하는 방식이었다. 이런저런 기본적인 질문들에 답했고, 통과했다.

우리가 궁금했던 것들도 자유롭게 질문할 수 있었다. 마지막 영주권 증서에 내 싸인과 이민국 직원 싸인을 적으면 모든 일정은 끝이 난다.

이제 우편으로 영주권카드를 받기만 하면 된다.

배우자 초청 이민은 그때 당시 평균 1년 정도면 영주권을 받는다고 했었는데 나 역시 비슷하게 랜딩인터뷰까지 11개월 만에 모든 과정을 마쳤다.



영주권승인이 났으니 이제 캐나다 밖으로 나갈 수 있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그 시간. 한국이 그리웠고, 가족이 너무나 그리웠다.

인터뷰 후에 바로 한국으로 갈 수 있게 비행기표도 미리 예매해 놓았는데 인터뷰가 무사히 끝나 계획한 날짜에 한국도 다녀올 수 있었다.



나는 참 운이 좋았다.

내가 영주권을 받은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영어시험도 추가되었고, 영사관에서 해주던 공증서비스도 더 이상 받을 수 없게 되었다. 말 그대로 막차를 탔던 것이다.

조금만 늦었어도 영어시험에서 점수를 받지 못해 지금껏 영주권 없이 살고 있었을지도... (아니면 반대로 영주권을 받기 위해 영어를 열심히 공부해서 지금은 유창한 영어 실력을 갖고 있던지... )

랜딩 인터뷰도 전에는 큰 도시에 모두 모여 한번에 진행이 됐었다고 했는데, 내가 인터뷰한 그 해부터 지역별로 임시 인터뷰 장소가 마련되어 가까운 곳에서 편하게 인터뷰할 수 있었다.

나를 캐나다에서 살게 하기 위해 온 우주가 도와주는 것만 같은 느낌이었다. 모든 것들이 감사할 따름이다.



내 나라 떠나 새로운 땅에 터를 잡는다는 것은 너무나도 어려운 일이다.

나는 이미 자리 잡은 남편의 울타리 안에 들어오겠다는 허락을 받는 것일 뿐이었지만, 아무 연고도 없는 이 땅에 맨몸으로 와서 자리 잡아야 하는 수많은 이민자들의 맘고생은 상상이상일 것이다.

한국을 떠나 올 때 계획하고 예상해 봤던 많은 상황들은 실제와는 많이 다를 것이고, 좌절할 수밖에 없는 일들의 연속일 것이다.

한국에서 무슨 일을 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대단한 학력도 이곳에서는 그다지 쓸모가 없다.

가지고 있는 기술로 취업이 된다면 가장 좋겠지만, 이민국에서 필요로 하는 분야의 기술들을 새로 배워오는 게 대부분이고, 그마저도 뜻대로 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가지고 온 재산과 시간을 모두 써버릴 때까지도 취업이 되지 않아 다시 한국으로 돌아가는 분들도 보았고, 영주권이 계획대로 나오지 않아 계속 비자를 연장하고 직장을 몇 번씩 옮기며 이사를 다니시는 분들도 보았다. 어떤 경우는 영주권을 받았는데도 불구하고 생활이 안정되지 않아 한국으로 가신 분들도 있었다.

정말 안타까웠다.



조금 더 나은 삶과 행복을 위해 찾아온 이곳은 누구에게나 기회를 주지만, 누구에게나 가혹하다.

좋은 점을 모두 누리고 사는 것도 아니고, 나쁜 점을 모두 겪고 사는 것도 아니다.

이 넓은 땅덩이는 어느 것 하나 한마디로 정의 내릴 수 있는 게 없어 보인다. 수많은 이야기를 듣고 왔어도 내가 직접 느끼는 감동 혹은 충격은 너무나도 크다.


이민을 오고자 하는 계획도, 꿈도, 사연도 각자  다르겠지만 진심으로 진심으로 이곳에 오는 많은 분들이 꼭 행복하셨으면 좋겠다.

속상한 일 없이 무탈하게 하루하루 잘 지내시길, 이곳의 파란 하늘과 반짝이는 별을 바라볼 수 있는 여유를 느껴보시길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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