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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박스 Oct 07. 2023

시계가 고장날 지라도(장편 소설)

 10 : 온정의 시야

 오늘은 집에서 영화를 봤다. 더 런치박스라는 제목의 인도 영화였다. 세 얼간이같은 흥겨운 발리우드 영화를 예상했는데 전혀 아니었다. 여자는 자신의 남편에게 보내려고 만든 도시락을 줄기차게 엉뚱한 남성에게 보내고 있었다. 그리고 그 남성은 매번 그것을 자신의 아내가 보냈다고 착각한다. 도시락을 맛있게 비우고는 빈 찬합에 손편지를 달아 돌려보낸다. 두 사람 다 어지간히도 눈치가 없었던 모양이다. 적어도 둘 중 한 명 정도는 한 번 쯤 진실을 깨달을 법도 한데 말이다. 하지만 의도치 않은 실수로 시작해서 타인과 소통하게 되는 두 사람이 진실이 어떠했건 일단은 즐거워보였다. 중간에 자신의 실수를 알게 되었다면 오히려 지나간 즐거움은 전부 거품처럼 터져버리고 부끄러움만 남았을 지도 모른다. 그러니 진실을 모르는 편이 좋았던 것도 같다. 어쩌면 실수라 해도 뻔뻔하게 끝까지 밀고 나가면 뭐라도 남게 되는 것이 아닐런지.

문득 옛날 생각이 났다. 언젠가 수업 중에 무심코 농담을 한 적이 있었다. 원래 잘 하지 않는 편인데.


여러분, 밤 하늘에 반짝이는 별이 별똥별처럼 떨어지는 걸 본 적이 있나요?

그거, 사실 인공위성일거에요. 이런 도시에서는 별이 잘 보이지 않거든요.


아이들은 정말 깔깔거리면서 좋아했다. 그래, 초등학교 육학년 정도면 이 정도 농담은 용인하다 못해 즐길 수 있는 나이지.

동심을 파괴한건 아닐까 움찔했는데, 여기가 육학년 교실이라는 점에 진심으로 안도의 한숨을 뱉었다.

의도치 않은 행동이 꽤나 좋은 결과를 부를 때가 있다. 나는 도전적인 사람은 아닌지라 그럴 때마다 조금 놀라고는 한다.

사람들이 주어진 계획을 지키는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 밖의 영역에서 가치를 찾을 수도 있겠지만, 그건 도박의 영역같다. 내가 이따금 하는 실수가 잘 풀리는건 도박에 비유하자면, 초심자의 행운이 아닐까 싶다. 그러니 앞으로도 가능하다면 지금껏 지켜온 태도를 지키고 싶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이런 작은 농담을 그렇게 즐겁게 받아주는 너희가 참 고맙다고 생각한다.

이 드물고 소중한 시간이 너무 빨리 지나가버리면 안될텐데. 나는 처음으로 시간을 붙잡고 싶어졌다. 나는 곧 텔레비전을 끄고, 저녘을 꺼내 먹었다.   오로지 먹는 일에만 집중하면서 아주 느긋하게 밥을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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